[취재일기] 오키나와 `일본의 이중 잣대` [중앙일보]
#1. 2005년 4월 7일 일본의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마주 앉은 반기문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았다. 당시 후소샤의 중학교 역사.공민교과서의 독도 관련 부분이 검정 결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竹島)”란 표현으로 기술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종군위안부’ 표기는 모든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마치무라 외상은 반 장관의 추궁에 “일본의 교과서 검정 과정은 한국과 다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개별적 기술에 대해선 정부가 삭제나 수정을 요구하거나 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맞섰다.
며칠 후 일본을 찾은 한국 국회의원단에도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수정이) 안 되게 돼 있는 시스템”이라고 잘라 말했다. 나아가 일 외무성 홈페이지에 ‘일본 교과서 검정제도’란 코너를 마련해 친절하게도 영어.한글.중국어 번역판까지 붙여 놨다. 전문가들로 이뤄진 교과서 검정 조사심의회가 내린 판단에 정치는 개입할 수 없다는 게 큰 골자였다. 결국 한국의 수정 요구는 한 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 2007년 10월 1일. 일본 정부의 대변인 마치무라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장에 섰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이 주민에게 집단 자살을 강요했다는 내용이 고교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삭제된 데 대해 지난달 29일 오키나와 현민 11만 명이 항의대회를 열어 분노를 폭발한 직후였다. 그는 “오키나와 현민의 입장을 헤아려 수정할 수 있을지 관계자의 연구와 노력, 지혜가 있을 수 있다”며 “(수정)검토를 문부과학성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문부과학상도 “오키나와 현민들이 들고 일어났으니 뭔가 대응 방안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거들었다. 일 정부는 각 교과서 출판사로 하여금 정정 신청을 하게 해 이를 받아들이는 편법으로 ‘일본군이 집단 자살 강요’ 표기를 부활시킬 방침이다.
일본 정부가 2005년 교과서 파동 당시 ‘방패’로 삼았던 검정제도는 그동안 단 한 줄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럼에도 일 정부가 이번 오키나와 건에는 스스로 금기시하던 정치 개입을 저지르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오키나와의 ‘표’가 중요한 건 안다. 하지만 일 정부는 한국에 더 이상 ‘일본 고유의 검정제도’ 운운하는 얄팍한 핑계가 통하지 못하게 됐음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과서 검정제도 관련 영어.중국어판 설명을 읽은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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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오키나와 `일본의 이중 잣대`-‘중앙'(0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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