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내각의 아베 반면교사
후쿠다(福田康夫) 일본 총리가 25일 중의원에서 선출됐다.
온건외교 노선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후쿠다 총리는 전임 아베 정권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민은 지난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정권의 국정목표였던 ‘전후 체제의 탈각(脫殼)’이라는 정치노선을 명백하게 거부했다.
전후 체제의 탈각은 보수우익의 정치이념을 내세워서 일본을 보다 국가주의적으로 변혁시키려는 노선이었다.
아베 정권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반대되는 온건외교 노선을 표방한 후쿠다 정권을 자민당은 선택했다.
후쿠다 정권의 외교노선은 첫째 전후체제의 탈각보다는 전후 체제를 존중할 것이다.
아베 정권에 대해서 일본 국민들이 위화감을 느낀 가장 심층적 이유는 일본의 전후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던 체제를 탈각의 대상,즉 정리 대상으로 삼았던 점이다.
전후 체제는 태평양 전쟁이 잘못된 전쟁이라는 역사인식 하에서 긴밀한 미·일 관계를 일본 외교의 중심으로 삼은 체제다.
전후 체제의 탈각 노선에 대해서 미국은 ‘종군위안부 비난 결의안’을 하원에서 채택함으로써 우려를 표명했다.
후쿠다 정권은 전후 체제의 중요 요소인 현행 평화헌법을 존중하며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 피해를 본 주변국가 국민 감정을 존중하는 외교를 수행할 것이다.
즉 신임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명언했으며,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보다는 전쟁의 희생자 모두를 추모할 수 있는 국립시설의 설립에 긍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후쿠다 정권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최고 지도자 스스로가 역사문제를 발생시켜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후쿠다 정권이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두 번째 정책은 일본의 새로운 대북 정책 모색이다.
일본의 대북 정책은 ‘대화와 압박’이라는 양면을 내용으로 하지만 아베 총리는 압박을 강조했다.
“납치문제 진전 없는 북·일 관계 개선 없다”는 대북 강경 정책을 유지한 아베 정권은 외교적 유연성을 잃었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13 합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아베 정권은 이번 10월에 기간이 만료되는 대북(對北) 경제제재를 6개월간 재연장했으며, 대북 수해지원도 거부했다.
9월 초 몽골에서 개최된 2차 북·일 수교에 관한 실무그룹회의에서 과거청산에 관해 논의했으나,납치문제와 관련해 진전없이 종료됐다.
신임 총리는 북한과 대화를 추구하겠다고 천명했으며 납치문제를 “내 손에서 해결하고 싶다”고 총리 선거 유세에서 발언했다.
북한에 대한 유연한 대응은 일본 국내적으로 납치문제의 정치적 중요성이 최근 현저하게 저하된 것을 배경으로 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선거에서 대북 강경정책과 납치문제가 일본 유권자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자민당의 정치적 자산으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했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북한 방문 시 관방장관이었던 후쿠다 총리는 당시부터 납치문제에 대해 보다 유연한 대응을 추구했다.
물론 후쿠다 정권의 유화 노선도 북한 당국이 납치문제에 관해서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성의를 보여야 현실화될 것이다.
납치문제는 주권침해에 해당하는 문제로서 일본 여론은 여전히 납치피해자에 대해 동정적이며 지금까지 일본 외교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던 문제를 새로운 내각이 구성됐다고 해서 일본 정부가 없었던 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정국을 관찰하면 후쿠다 정권은 총선거까지 선거관리 내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참의원을 장악한 야당이 중의원 해산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에는 여야 정권 교체 혹은 자민당의 새로운 내각에 의해서 일본 외교정책의 우선 순위에 관한 재조정이 이뤄질 것이다.
그 내용에는 납치문제를 최우선시했던 외교노선에서부터 북한 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미·일 협력 및 한·일 협력 체제의 재구축이 포함될 것이다.
북·일 양국 간 문제인 납치문제에 진전을 보이면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의 길을 찾는 것이 일본 차기 지도자의 외교적 과제가 될 것이다.
–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