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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문화재, 이대로 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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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과학국가박사)


 


과거는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현실 속에 다시 나타난다. 무단 정복, 강제 합병 등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중에 일어났던 수많은 폐해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피식민국의 상황 변화에 따라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약탈 문화재이다.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가 모두 약탈된 것은 아니지만 강대국이 식민지나 약소국에서 방대한 유산을 약탈해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약탈 문화재는 제국주의 학자들에 의해 지식의 축적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되면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은 다시 식민지 또는 약소국을 지배하기 위한 무기로 이용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강대국이 약탈한 문화재가 지배자들에게 통치기술을 제공한 후에도 그들이 구가했던 과거의 영광을 지속케 해준다는 점이다.


<약탈국의 오만>

문화재 약탈국은 피약탈국들이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해도 교묘한 논리로 이를 회피한다. 그들은 약탈 문화재를 본국으로 가져가 이를 과학적으로 연구를 하고 또 최선의 방법으로 보존해 왔으므로 오히려 피식민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면서 과(過)보다는 공(功)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특히 문화 발전의 대리인격인 박물관 등에서는 유물에 대한 지속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지식생산을 독려해 왔을 뿐만 아니라 문화재는 어떤 한 나라가 만들었더라도 그 나라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 예술에 대한 현대인들의 찬탄은 영국 및 프랑스 등이 그리스 문화재를 가져가서 연구해 이룩한 학문적 성과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그들에 따르면 이러한 유물이 그 생산국에 남아 있었다면 무지와 무관심속에서 더욱 파괴되었을 것이라면서 보다 우수한 연구와 보관 능력을 가진 나라에 잘 보존돼 있음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피식민국들의 문화재 반환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약탈국들이 이와 같이 교묘한 논리로 문화재 반환을 거부하는 이면에는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문화재를 일단 돌려주기 시작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반환 요구에 직면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 등 대부분의 대형박물관에 소장된 유물들이 약탈문화재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외국 문화재를 반환하라는 요구는 결국 그들 박물관을 문 닫으라는소리와 마찬가지라고 이해한다. 비록 약탈해 온 유물들이기는 하지만 이들을 반환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억지를 쓰면서 사안에 따라 장기 임대 등은 고려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문화재를 빼앗긴 것이 피해국들에게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조상의 얼을 빼앗긴 크나큰 상처로 생생하게 살아 남아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유산을 만들어 낸 사회는 과거 한 때 유산을 약탈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역사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유물들이 자신들 품 안에 있기를 원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1907년 헤이그 협약이 ‘습격에 의한 경우라도 도시나 기타 지역의 약탈은 금지 된다’라고 규정한 이유이다. 또한 1987년 유엔이 채택한 결의안 42-7은 ‘원 국가에 중요한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는 문화재의 반환은 자신들 문화유산의 대표적인 컬렉션을 구성하려는 해당 국민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명시했다.


약탈 문화재의 반환은 식민시대를 포함하여 과거의 모든 문제를 적극적으로 소화하고 정리해 나가는 불가결한 주제라는 것을 인식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탈 전리품 반환 요구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해 츠베탕 토도로프는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했다.


“약탈 전리품의 반환이야말로 ‘식민주의가 정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몽주의라는 싸구려 옷으로 치장한 하나의 착란이었다’는 변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증명이 될 수 있다.”


<반환운동과 반환된 유물들>


강대국의 이런 안하무인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1980년부터 불고 있는 약탈문화재의 복원과 반환 운동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1993년 4월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아부자 선언>으로 ‘노예무역,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에 참여한 나라들이 아프리카에 지고 있는 ‘도덕적 채무’와 ‘보상적 성격의 부채’에 대해 언급하면서 ‘약탈된 재산’과 전통적인 보물들의 반환을 요구했다. 즉, 아프리카 인들이 감수했던 손해가‘과거의 일’이 아니며 약탈재산을 합법적인 소유주에게 반환하여 전례 없는 도덕적 부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는 ‘에도 왕국(현 나이지리아)’의 역사를 상기시켜주는 청동메달의 반환을 영국에 요구했고 에티오피아도 마그달라 함락 당시 약탈당한 유물을 돌려달라고 역시 영국에 요청했다. 멕시코는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500년 전에 약탈한 아즈텍의 유물을 내놓으라고 오스트리아에, 이집트는 유명한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을 반환하라고 독일에 요구했다. 뿐만 아이라 중국은 1860년 아편 전쟁 당시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약탈한 문화재의 반환을 각각 당사국에 촉구하고 있다. 한국 또한 1866년 프랑스 군대가 규장각에서 약탈한 의궤와 옥책문(玉冊文), 1922년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오대산 사고에서 일본으로 보내 현재 궁내청에서 보관하고 있는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의 반환을 각각 프랑스와 일본에 요청하고 있는 중이다.  


약탈된 문화재가 각국의 법률상의 어려움 때문에 반환이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약탈 문화재의 반환이 이미 여러 차례 이루어진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1830년 알제리 함락 당시 프랑스 군대가 약탈한 알제리 태수 도장이 2003년 반환되었고, 1898년 독일 군대에 저항한 음콰카의 두개골이 1954년 탄자니아로 돌아갔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서 1893년에 약탈된 보물의 일부를 1977년 돌려보냈다. 1905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러일전쟁 당시 일본인들이 가져간 북관대첩비가 남한을 거쳐 2005년 북한에 반환되었고, 일본 동경대학교에 보관 중이던 『조선왕조실록』 일부는 반환이 아니라 기증형식으로 2006년 돌아왔다.


<반출된 국가 유물 시급히 공개돼야>


한국의 경우는 다른 피식민가들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식민국들은 아직도 아프리카 나라들의 유산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자기 나라 학자들의 연구가 아프리카 나라들의 유산 홍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설명이 적용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외규장각 문서를 약탈해갔지만 그 문서를 공개하여 연구 자료로 삼은 적도 없으며 일본은 한국에서 약탈해간 유물들을 공개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했다. 한국의 유산을 한국에 돌려줘야 하는 당위성은 그 어느 나라의 경우에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크다. 현재 한국의 세계적인 위상은 과거와 아주 다르다. 한국은 일본은 물론 프랑스와 문화 및 경제적인 면에서 대단히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마당에 약탈된 유산이 상호협력 관계에 장애가 된다면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양측에 모두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약탈 유산을 무턱대고 갖고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이 2006년에 반환한 『조선왕조실록』이 약탈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반환이 아니라 ‘기증’이라는 형식을 취했음은 결국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도외시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 정부는 약탈당한 문화재를 포함하여 해외로 나간 우리 유산이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조처를 취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반출된 유산이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되 돌려받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나 해외에 반출된 유산을 빠짐없이 모두 찾아오자고 고집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반환협상이 어렵다면 일차적으로 유물 연구와 조사의 적극 참여를 전제로 유물에 따라 공동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토록 유도하는 것도 약탈유산을 보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해당 유산이 우리 것이라는 사실을 두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인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우리 『직지심경』이 프랑스에 보관돼 있지만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한국 옛 인쇄술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좋은 예이다. 이는 걷잡을 수 없는 비난과 질시를 받는 강대국들이 배상에 관련된 도덕적 원칙도 지키면서 화해의 정신에 기초한 건설적 토론으로 지금까지 그들에 의해 숨겨진 유물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일일 것이다. 끝. (<인물과 사상>, 07.12>


참고문헌 :
베르나르 뮐러, 「식민지시대의 전리품들을 반환해야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8월호 문만기, 「문화재 환수의 역사적 의의」, 《한겨레》, 2006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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