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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과거사위 통폐합은 진실소명 시늉만 내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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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박임근 기자

 


» ‘36년’ 교직 은퇴한 민족문제연 전북지부장 최재흔씨

체육교사로 12년째 ‘민족문제’ 투신
소식지 ‘무텅이’ 내며 친일청산 매진
“역사 바로 알리는 시민교육 펼칠 터”



“국가만난근원, 민족정기상실”(나라의 고통 근원은 친일파 청산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는 곧 민족 정통성을 잃는 것이다.)


전북 익산 남성여중을 끝으로 지난 16일 교직에서 물러난 최재흔(62·사진)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의 신조다. 그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 노송119안전센터(옛 소방파출소) 맞은편에 위치한 전북지부 사무실에 이 문구를 8년째 걸어 놓고 있다.


체육교사였던 그는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로 2001년 11월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가 태동하면서 살림을 맡아오고 있다.


그동안 전북지부는 2002년 친일문인 미당 서정주의 기념행사 반대, 2003년 친일문인 백릉 채만식의 문학상 반대, 2004년 미당시문학관에 서정주의 친일작품 8점 상설 전시, 2005년 친일행적이 있는 김연수의 아호를 따서 만든 전주종합운동장 수당문 현판 철거, 친일파 박기순이 자신의 환갑을 기념하려고 세웠다는 전주덕진공원 취향정에 그의 친일행적 안내판 설치, 2006년 전주초등학교안의 일제잔재물 표지석 4개 철거, 2007년 알기 쉬운 캐리커처로 본 항일·친일 인물 전시행사 등을 추진했다.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영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전북지부 소식지 ‘무텅이’를 해마다 1~2번씩 발행해 오고 있다. 무텅이는 ‘거친 땅에 논밭을 일구어 곡식을 심는 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무너진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뜻이다.


최 지부장이 처음부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72년 교사를 시작했으나, 당시의 체육교사는 독재정권의 하수인, 꼭두각시 구실을 많이 했다고 한다. 지난달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된 김형근(49) 교사가 익산에서 황토서점을 운영할 때 이곳에 출입을 하면서 다른 세상에 눈을 떴고, 무지를 깨달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다가 96년 후배의 권유로 우연히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 됐다.

그는 지금도 서정주와 채만식 기념사업을 반대한다. 그는 “지방자치단체가 ‘현대문학의 산맥’ 등의 수식어를 쓰며 친일문인들을 관광상품화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며 “역사를 잘 모르는 후손들에게 그들을 추앙받는 인물로 가르치는 것은 또다른 역사왜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 독립운동가 김직수,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었던 조문기 선생 등이 오는 8월 나올 예정인 친일인명사전의 완성을 못 보고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며 “이명박 정부가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한 개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진실소명을 묻어둔 채 수박겉핥기식으로 시늉만 내려는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친일행위자를 밝히는 일에 힘을 쏟았으나, 앞으로는 자라나는 세대가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시민 문화교육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해방된 것이 아니라, 친일파가 해방된 것이다. 일제하에서 친일파는 떡고물만 챙겼으나, 해방공간에서는 아예 떡판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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