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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드러낸 신일본제철 징용자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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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지난 4월 3일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됐던 여운택 씨(85) 등 5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정이 내려졌다(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 재판장 윤준 부장판사).


연구소가 지원하고 있는 이 소송은 우리나라 법원에 제기된 ‘대일과거청산소송’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00년 5월 부산에서 제소된 일본 미쯔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재판에 이어 두 번째이다. 다만 신일본제철의 경우, 포스코와 서로 상호주식을 보유하고 합작법인을 설립할 정도로 국내기업과 자본제휴, 기술제휴가 활발한 기업을 상대로 일제 강점기의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배상을 청구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아 왔다.


원고인 여운택 씨 등은 1940년대 초 “2년 뒤 기술자가 될 수 있다”는 일본제철의 광고를 보고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후 일체의 자유를 빼앗긴 채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지난 1997년 일본에서 “신일본제철이 미지급 임금과 강제 노동에 대한 위자료 등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임금 미지급과 강제 노동의 사실 여부는 인정하면서도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대일 청구권이 소멸됐고, 불법행위가 발생한 지 60여년의 세월이 경과하여 시효가 소멸했으며,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의 법적 연속성을 인정할 수 없다(법인격이 다르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2명과 새로이 3명이 추가로 참여하면서 우리나라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던 것이다.


이번 재판부는 여러 쟁점들 가운데 한 가지였던 재판 관할권 문제에 관해 ‘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에게 배상 청구권이 있으며 일본 기업을 상대로 국내에서 재판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제철소에 인력을 강제 동원하고 옛 일본제철도 일본 정부의 동원 정책에 가담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원고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기망에 의해 동원된데다 어린 나이에 구체적 임금도 모른 채 강제 노동에 종사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또 “불법 행위는 강제동원 포섭지인 대한민국 내 원고들의 각 거주 지역에서 비롯돼 강제노동이 실시된 일본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계속된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불법행위지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법원에 재판 관할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의 전 취지를 고려해 볼 때 유사 소송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재판의 결정적인 한계는 우리 재판부가 일본 법원의 ‘기판력(旣判力)’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일본 재판소가 이미 원고들에 대해 패소 판결한 내용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될 수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확정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그 효력이 인정된다”고 한 것이다.


피고의 적격성 부분에 대해서도 일본 법원의 판결과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신일본제철이 옛 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다르고 채무를 승계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일본제철에 대해 위자료 지급을 청구할 수는 없다”며 “일본 재판소가 이를 이유로 원고들에 대해 패소 판결한 내용은 우리나라에서도 효력이 인정된다”고 패소 판결 이유를 밝혔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사무국장(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판결이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책임을 면하려는 피고 쪽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법원에서 재판할 수 있다는 권리를 인정받은 점은 평가하지만 일본의 재판 결과에 의거해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은 사법적 종속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신일본제철 징용자 재판 원고들을 지원하고 있는 나카타 미쓰노부 씨(왼쪽)와 우에다 케이시 씨가 1심판결 직후 연구소를 찾았다.


 


신일본제철 징용자 재판 원고들을 지원하고 있는 일본인 나카타 미쓰노부 씨도 “강제 징용은 60년 전의 피해 사실이 아니라 60년 간 진행된 피해 사실이다”며 판결에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이번 재판에서 신일본제철의 변호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이 맡았다. ‘김앤장’은 원고측과 합의하라는 재판부의 적극적인 권유에 대해 피고 기업과 아무런 협의도 진행하지 않아 여론의 빈축을 사고 있다. 김은식사무국장은 “이번 소송은 강제동원 피해자 전체와 관련된 소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자칭 토종 로펌이라고 하는 김앤장이 시종일관 철저하게 신일본제철을 옹호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재판 자료 공개 등의 대응을 취하겠다는 자세다.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 원고 측은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대응 방침을 수립할 계획이다. 항소는 물론 김앤장의 변론도 비판하는 뜻에서 시민 배심원들을 모아 재판의 진행과정과 이번 판결의 정당성을 따져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원하고 있는 대일과거청산소송




























재 판 명


내    용


비   고


신일본제철재판
(서울중앙지방법원)


2005년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피고 신일본제철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제소. 2008년 4월 3일 1심 기각 판결


여운택 외
4명


재한군인군속재판
(도쿄지방재판소)


2001년과 2003년 2차례에 걸쳐 일본정부를 상대로 생사확인, 유골송환, 미불임금 지급, 손해배상청구, 야스쿠니신사합사 철폐 등을 청구하는 재판 제소. 2006년 5월 25일 1심 기각판결 이후 항소심 재판진행 중


이희자 외
415명


미쯔비시중공 피폭징용자
부산재판
(부산지방법원)


2000년 5월 피고 미쯔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제소. 2007년 2월 2일 1심재판 기각 판결 이후 2008년 4월 15일 항소심 예정


이근목 외
5명


도야마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재판
(가나자와고등재판소)


2003년 4월 1일 후지코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제소. 2007년 9월 19일 1심에서 기각판결. 현재 항소심 준비 중


이복실 외
21명


야스쿠니신사 합사취하소송
(동경지방재판소)


2007년 2월 26일 일본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제소 후 1심재판 진행 중


이희자 외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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