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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세계시민사회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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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 사무국장


 


“우리는 일본의 헌법 9조를 구조(救助)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일동 와하하~. 일본어로 9조와 구조는 같은 발음이다.)

통상의 국제심포지엄은 딱딱한 분위기에서 어려운 내용들을 쏟아내기 마련이다. 특히,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개최되는 심포지엄은 마치 눈꺼풀에 무거운 추를 달아 놓은 듯이 청취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중력의 법칙을 실감케 한다. 더군다나 아침부터 계속되는 토론회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해서 한마디 해달라는 사회자의 권유를 받고 내 뱉은 첫마디이다.

“한국의 구호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선창하면 따라해 주세요..”

      간바레 규죠!(カンバレ9)
      힘내라 9조!

      아이스루 규죠!(愛する9)
      사랑한다 9조!

      마모레 규죠!(守れ9)
      지키자 9조!


 



 


전날 한국에서 참가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면서 뭔가 일본사회에 메시지를 전하자면서 짜낸 구호이다. 일본어와 한국어로 구호를 다함께 하면서 참가자들의 표정은 밝아졌고,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지난 5월 5일 한일 양국이 공히 어린이날로 지정한 공휴일인데도 불구하고 9조 세계대회가 개최되는 치바현 마쿠하리 멧세 국제회의장에는 당초 예상한 7천명을 넘어서 약 1만 5천여명이 참가하여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나중에는 아예 출입을 통제하여 발걸음을 돌린 사람도 상당했다고 한다. 유사법제 철폐를 주장하며 메이지공원에 5만여명이 모인 이래 최대규모가 아닐까.


일본국 헌법 9조를 지키자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해당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국 헌법 9조는 이상적인 평화국가의 모델을 보여준다. 군대도 없애고, 전쟁도 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의 항복문서에 조인한 후 제정한 헌법의 핵심조항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는 헌법 9조를 개헌하자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다. 즉, 일본국 헌법 9조는 승전국이 패전국에게 채운 멍에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개정하여 보통국가로 나가자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를 거부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결집도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이번 대회는 세계시민사회에 각인시켜 주었다. 한국에서도 인권운동, 평화운동, 대일과거청산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사회 활동가 약 4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일본국 헌법 9조를 지키자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 대만, 일본, 오키나와의 목소리

야스쿠니 분과회에서 전 민변 회장인 이석태 변호사는 “평화 헌법 60년과 과거사”라는 주제의 기조발제에서 “최악의 화해가 최선의 판결보다 낫다”는 법률격언을 예로 들면서 화해는 비록 문제의 시비를 확실히 가려 주지는 못하지만 양 측이 일정한 양보를 함으로써 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만 원주민과 야스쿠니 합사”라는 주제로 발표한 재일중국인 모멘(墨面)씨는 “광복은 대만 민중의 해방을 의미하지 않았으며, 장개석 국민당은 대만에서 약 40년간 계엄령으로 다스렸고, 2.28사건과 50년대의 백색테러로 인해 항일세력들이 총살되면서 항일의 전통이 단절되었다”고 전제하면서, “대만의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친일계층의 복권이 정착된 반면, 독재상황이 타파되고 민주인사들이 석방되면서 비로소 대만 원주민운동이 촉발되었고, 그 정점에 가오친 수메이(高金素梅, 원주민명 치와스 아리)가 원주민 대표로 입법위원에 당선되게 되었다”고 대만 야스쿠니 신사 합사운동의 배경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오키나와 야스쿠니 합사 취하소송의 대리인인 니와 마사오(丹羽雅雄)변호사는 “오키나와인들에게 원호법제가 적용되면서 ‘야스쿠니 사상화’가 실현되게 되었으며, 전쟁책임전후책임은 봉인되었다”고 주장했다.

와세다대학 대학원 객원교수인 우쯔미 아이코(海愛子)교수는 “포츠담선언 제11조에서 공정한 실물배상을 가능하도록 하여 아시아 4개국에 생산물과 역무에 의한 배상이 결국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배상을 가로막았다”고 주장했다.

도쿄에서 한국인 야스쿠니 신사 합사취하소송의 대리인인 우찌다 마사토시(田雅敏)변호사는 “2001년 독일국방군개혁위원회 보고서에서 독일은 역사상 처음으로 근린국가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하고 있지만, 야스쿠니 문제는 동북아시아 공동체건설의 장애물”이라고 일갈했다.


또다시 전쟁을 하자는 것인가

일본에서 헌법 9조 개헌의 논란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헌법 9조를 사수하자는 목소리에서부터 헌법 9조 2항만 삭제하여 자위를 위한 전력만 보유하고 교전권은 행사할 수 없도록 개헌해야 한다는 주장과 아예 헌법 9조를 완전히 개정하여 보통국가로 탈바꿈시키자는 주장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일본국 헌법 9조의 개헌논의는 전쟁국가로 가든지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든지 언제든 전쟁 가능한 국가로 전환시키자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동북아 평화에 검은 먹구름이 밀려오는 듯하여 한편 착잡하면서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일본인들이 있는 한 개헌 움직임도 그리 만만치는 않겠다는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 대회였다.

관련 사이트 http://whynot9.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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