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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주창한다면 과거청산 계속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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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변호사전북대 교수, 법과대학)


 










이 글은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소식지 [타래꽃] 최신호에 실린 글이다. 글 싣기를 허락해주신 위원회와 김희수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편집자 주>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안창호씨’, ‘5ㆍ18사태’, ‘부마사태’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구사해 구설에 오르곤 했다. 역사인식이 빈약하다는 비판이었다.
 










대통령에 당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규명위원회, 진실ㆍ화해를 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등 5개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폐지키로 했다. 이에 각 시민ㆍ사회단체와 유가족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반발이 잇따르자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에서 일단 과거청산 관련 위원회 등은 2월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고 유보했으나, 최근 다시 행정안전부에서 이를 추진 중이다.

애초 각종 과거청산 관련 기구의 통폐합 문제는 논의되었던 사안이다.  하지


▲ 김희수 변호사


만 근ㆍ현대사에서 발생한 불행 사건들의 역사적 조건, 성격, 시기, 조사방법, 내용 등이 각각 달라 고유한 특성에 따라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따라 관련 시민ㆍ사회단체와 피해자 단체는 물론 국회의 합의아래 현재의 위원회들이 출범한 것이다.

더욱이 각 위원회들은 한결같이 조사권의 미약함, 조사기한의 한시성, 조사 인력의 부족, 사건의 방대함, 과거기록의 폐기 유실 등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군의문사위원회의 실정도 비슷하다. 특히 군의문사위원회 관련 법 제정 과정에서 관련 시민ㆍ사회단체와 국회에서 예측한 진정 접수 건수를 300건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정확히 2배에 해당하는 600건이 접수됐다. 활동 시한인 올해 말까지 최선을 다하더라도 약 200건 정도의 사건은 손도 못 댈 처지다.


아직 진실 규명도 못한 상태


그런데 각 위원회들이 아직 진실규명 작업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현 정부가 기구를 통폐합 하려는 것은 사실상 과거청산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과거청산 관련 작업에 무한정으로 국력을 낭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과거청산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잘 인식하고 있는 문제다. 오늘날 과거청산이 문제되고 있는 것은 과거청산이 과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과거청산 작업이 부재했던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진실규명은 하지 않은채 과거의 온갖 인권유린과 조작, 의혹 사건들을 덮어 버리자는 것은 과거청산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과도 거리가 먼 일이다. 또한 바람직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데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분명하다.

지난 4월 21일 일본을 방문한 대통령은 “과거에 마음 상한 일”이 있었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고, 정상회담 의제에서 단골 메뉴이던 과거사 문제는 제외했다.

그런데 과거청산 문제는 단순히 대통령의 말처럼 “과거에 마음 상한 일”로 끝나는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ㆍ일 관계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되었던 영토문제,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이 어찌 과거 한 때의 단순하게 마음 상한 일로 끝날 일인가. 이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고통과 분노로 나타나고 있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며, 매듭짓지 못한 역사와 정의의 문제이다. 결코 그냥 덮어 버릴 수는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다.


불행한 과거 방치는 직무유기


과거청산은 새로운 역사의 집을 짓는데 필요한 기초공사요, 터파기 공사와 같은 것이다. 이 공사가 첫 단추부터 잘못되어서 오늘날까지도 숱한 역사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비록 미흡하고 문제는 많지만 분명하게 역사의 매듭을 지을 의무가 현 세대에 있다. 과거의 불행한 사건들에 대한 진실규명도 못한 상태로 적당히 방치하는 행위는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직무유기와도 같은 것이다.

현 정부는 대통령 선거 때부터 실용정부를 전면에 내세우고 출범한 정권이다.원래 실용주의라고 하는 것도 관념이나 사상을 행위와의 관련에서 파악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행위 및 결과에서 사상이나 관념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현 정부의 실용주의라는 구호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고, 이는 여러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인 것이다.

실용주의가 사회적인 제반 가치의 통합과 절차적 정당성 등을 무시하고 오로지 경제적 이익, 돈의 가치만을 의미하는 협소한 의미로 빠져선 안된다. 그러한 실용주의는 도태되어야 할 독단적인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미국에서의 실용주의 탄생도 원래 다른 사상에 대한 개방적인 열린 자세, 비판적인 수용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본래 실용주의가 주창한 변화와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은 진정한 프래그머티즘이 아니라 사이비 프래그머티즘일 뿐이다. 대다수의 실용주의자들은 프래그머티즘의 목적은 도덕적인 가치, 휴머니즘 가치라고 주장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현 정부의 실용주의가 절차적 정의를 통해 우리사회를 재통합하고,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휴머니즘 가치관을 강조하는 과거청산을 부정한다면 이는 금단의 이데올로기요, 사이비 프로그머티즘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진정한 실용주의를 주창한다면 과거청산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실용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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