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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법, 현실을 바꾸는 수단으로서-아사히신문(08.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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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법, 현실을 바꾸는 수단으로서
(일본 아사히, 5. 3, 3면, 사설)



90년대부터 정치나 언론이 주도하는 형태로 개헌론은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정치가 착수해야할 과제를 여론조사로 물으면 경기나 연금 등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가 상위에 올라 개헌의 우선순위는 높아지지 않았다.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실패 등을 배경으로 정치에 대한 열이 식으면서 자연히 관심도 낮아진 것이겠다.

물론 정계 재편 등을 통해 9조 개헌이 재부상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세상의 흐름을 보는 한 일방적인 개헌론, 특히 자위대를 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호소력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9조를 둘러싸고 떠들썩한 논란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켠에서 실은 헌법을 둘러싸고 보다 심각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은 외면당하기 십상이었다. 무서운 기세로 진행되는 경제의 세계화나 인터넷, 휴대전화의 확산은 일본의 사회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종래의 헌법논의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워킹 푸어(일하는 빈곤층)’라는 말이 상징하는 새로운 빈곤 문제. 국경을 넘은 경쟁의 격화로 기업은 인건비 삭감에 매진한다. 시간직이나 파견직 비정규 노동자가 비약적으로 늘어 이제는 일하는 이들의 3분의1을 점하고 있다. 일이 있다 없다하는 불안정함과 저임금으로 생활보호 대상이 되는 수준의 수입밖에 없는 이들이 생겨났다.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과의 연결이 희박해진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은 모래알과 같이 뿔뿔이 흩어져 작은 충격으로 빈곤으로 떨어지게 되면 다시 올라올 수가 없다. 전후의 일본은 윤택한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 겨우 그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보였을 때 실제로는 주머니 속에 새로운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러한 상황이 아닐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해야만 한다. 헌법은 그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군국주의 과거를 가진 나라로서 이것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누구나가 여기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주머니에도 실은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갖게 하는 사건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지혜나 수단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를 정한 기본법이다. 그 무게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자 한다.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아무도 위축되지 않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실과 헌법의 깊은 골에 멈칫해서는 안 된다. 헌법은 현실을 개혁하고 살기 쉬운 사회를 만드는 수단인 것이다. 그 시점에 있어야만 진정한 헌법 논의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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