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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대담]한겨레신문을 기증한 김옥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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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대담자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방학진
기증자 : 창원 창간주주 및 20년 독자 김옥남(경남 창원시 반지동 대동아파트)


 


 


1.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한겨레를 모으신 동기가 무엇인지요?


제가 1964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다.

거의 20년을 전북 고창이라는 한적한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큰 도회지인 광주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5.16혁명’을 ‘5.16군사쿠데타’라고 알게 되었다.

엄혹한 군사정권시대에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에 장준하님이 발행하던 “사상계”지를 2년정도 열심히 읽었다.

그로부터 군사독제와 직접 맛서 싸울 용기가 없고 교직을 택하여 아이들 속에 묻히다보니 용기 없는 지식인으로 객지에서 생활인이 되었다.

그러나 선각자인 장준하, 함석헌, 등으로부터 세상이 바르지 않다는 걸 배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삶이 때로는 답답하고 아이들에게도 참 미안했다. 신문을 봐도 행간에서 진실 된 역사를 읽어야하는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행동하는 지식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내가 직접 하지 못하지만 역사를 바르게 기록하고 남겨야한다는 나와의 암묵적 약속 때문일 것이다.


 







▲ 20여년간 모은 한겨레신문을 연구소에 기증하신 김옥남 씨


 


2. 20년 치를 모으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어떤 것일까요?


한겨레신문은 태생이 다르고 20년(총 6298호) 동안 지나온 길이 가시밭길이고 기사마다 기존 매체와는 차별되어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아마 창간하고 얼마 후 평양취재를 계획하다 문제가 되어 논설고문 리영희님이 구속되는 위기상황의 긴박했던 신문지면이나 밤의 대통령이라는 조선일보사장 방우영의 큰집을 특별 취재하여 처음으로 지상에 공개했던 기사 등이 기억된다.


3. 연구소에 기증하시게 된 동기도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 한겨레신문이 발행되어 송건호 사장님을 비롯하여 한겨레신문 사원들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일반 주주독자들도 마찬가지로 감동이었다. 처음 창간호를 보면 그 부피나 지면이 초라했다.

그때 잘 모아두면 사료적 가치가 높고 보관도 별문제가 없겠다 생각하고 모우기 시작했는데 지면이 늘어나고 디지털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모든 기사가 마이크로필름화 또는 D/B화됨에 보관이나 기사검색이 쉬워져 처음의 생각이 바뀌어갔다.

그래서 대학이나 소중하게 가치를 인정해 줄만한 곳이 있으면 기증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이 경남중부지부 설립협의차 방문하여 귀회에 역사관건립과 자료수집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의미가 크겠다 여겨 기증하게 됐다.


 







▲ 한겨레신문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는 김옥남 씨


 


4. 모으시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일화는 없으셨는지요?


혹 옆지기와 의견충돌이라도 있을 땐 출근 후 폐지로 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으면 꼼짝없이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찢어버리거나 초창기 배달이 자주 끊길 때는 직접 지국을 찾아 가져온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창간 후 ‘산해원한겨레주주독자모임’ 활동을 하며 지국이 어려울 때 몇 달 동안 우리 아파트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직접 배달을 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며칠 집을 비울 때는 아예 보관했다가 배달해 달라고 하면 알아서 해준다.


5. 기타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겨레신문을 창간했을 때 전국 곳곳에 한겨레 주주독자모임이 결성되어 발전을 도왔다. 그 때 이곳에서 활동했던 분들 중에 경남민주언론연합회장 강창덕, 민족문제연구소 경남지역준비모임회장 정정철, 경남대학교수 이미선씨등이 있다.

이는 이심전심으로 마음마다 이 시대에 한겨레가 존재해야한다는 필연과 살아남아야한다는 절박감에서일 것이다. 이런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는 광복 후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아 역사와 국가발전에 악으로 작용 두 번의 군사쿠데타와 두 번의 혁명을 겪으면서 민주화를 위해 많은 피를 흘렸다.

이에 역사청산을 위해 민족문제연구소가 문을 열고 민주화를 완성하기 위해 한겨레신문을 창간을 하게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민족문제연구소에 한겨레신문을 기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며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이지만 나에게는 큰 삶의 보람이라 여긴다.


6. 현재 하고 계신 일도 잠시 소개해 주십시오.


1969년부터 2007년 8월말까지 38년 동안 교직에 몸을 담았고 지금은 재직했던 진해 석동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학교지킴이’를 하며 봉사하고 있다.

늦깎이로 2003년에 시로 등단하여 문학활동을 하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풀꽃세상’회원으로 활동한다. 항상 친일청산에 고난의 행군을 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힘찬 활동을 기대하며  작은 힘이나 보태며 인명사전도 예약해둔 바 있다.

더 좀 크게 보탬이 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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