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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돈 가톨릭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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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의 저작을 읽다보면 ‘억압된 것의 귀환’이란 용어를 만나게 된다. 쉽게 정리하자면, 유년기에 받았던 정신적인 외상(外傷)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인이 돼도 그 상처는 내면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되돌아온다. 그러니 건강한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상처의 기원을 찾아 풀어줘야만 한다. 사실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행위는 단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머무르지는 않는다. 가령 친일문학을 공부해 보면, 누구누구가 이러저러한 친일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에서만 머무를 수 없게 된다. 누가 어떤 시점에서 어떤 논리로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는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는 지식인인 까닭에 나름의 논리로 스스로를 무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네들의 논리를 분석하는 행위는 앞으로 내가 선택할 방향을 가늠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그네들의 논리는 내게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작용하는 셈이며, 이를 통해 나는 제국과의 관계를 설정할 때 그러한 위험을 줄여 나가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존경할만한 인물의 내면에 한층 깊게 다가설 계기도 마련하게 된다. 흔히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다들 친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모더니즘 진영의 실력자였던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기림은 절필을 선택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입선으로 뽑혔고, 1935년에는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하였으며, 1936년에 또다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한 김동리는 당시 신세대의 대표 주자였다. 그러한 김동리도 절필을 선택하였다. 김사량은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다가와상 후보로 오른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중국으로 망명해 조선의용군에 들어갔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육사는 의열단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이밖에도 언급할 수 있는 사례는 많다. 그들의 긴박한 삶과 진지한 고민은 문학의 권위가 어떻게 확립되는가를 느끼게 한다. 과거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현재에, 그리고 미래에 개입한다. 그러니 과거를 몰각하는 이에게 미래가 있을 리 없다. 인문학에 관하여 문맹(文盲)이 아니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러한 사실조차 모르는 수준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자연 ‘인문학 위기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얼마 전 일본 문부과학성에서는 사회과목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명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교육은 진작부터 실시되었다고 한다. 그 동네에서도 인문학은 위기를 맞고 있는 모양이다.<제민일보, 08.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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