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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예고]독립협회장 이완용,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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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TV








[제45회] 독립협회장 이완용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나?


 







▣방송 : 2008. 6. 14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김정균 PD
글,구성 : 정종숙 작가


 








친일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
그는 한때 독립협회장이었다.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을까?
을사조약에 서명하는 순간,
그가 그린 조선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매국의 이름으로 남은 이완용.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한국사 傳 3부작>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제1부 내가 무너지면 조선도 무너진다 ( 4월 26일 토 20:10~21:00 KBS 1TV )
제2부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 5월 3일 토 20:10~21:00 KBS 1TV )
제3부 몸은 죽고, 나라는 살다 ( 5월 10일 토 20:10~21:00 KBS 1TV )


<한국사 傳>에서는 2008년 충무공 탄신일을 맞이하여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3부작 특집>을 마련하였다.
‘영웅’의 이름 아래 가려진 ‘인간 이순신’의 새로운 면모. 새로 발견된 32일간의 을미년일기와 친필 난중일기에 입각해 철저하게 밝혀낸다.
제 1부는 임진왜란에 나서는 인간 이순신의 기록을 담는다. 전쟁 전, 병을 자주 앓았던 이순신. 그의 건강상태는 어떠했고, 첫 출전을 계속 미룬 까닭은 무엇인지, 조선 육군이 연패하는 가운데 바다에서 전승을 올린 이순신의 승리 비법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2부에서는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의 행적을 찾아가 본다. 정유년 2월에 체포된 이순신은 백의종군하는 가운데 어머니마저 돌아가신다. 이순신이 빠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군은 커다란 패배를 겪고, 이순신이 다시 전장에 서게 된다. 거의 전멸한 조선 수군으로 다시 한 번 출사표를 던지는 이순신. 백의종군에서 명량해전을 치르기까지의 그가 겪은 고초와 고뇌의 흔적을 추적해본다.
3부에서는 명량해전 이후부터 이순신의 마지막 기록을 담는다. 조선 수군의 재건 현장과 조명연합군의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던 그의 심리는 어떠했는지 살펴본다. 또한 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문들. 자살설과 은둔설의 진위여부를 비롯, 이순신 최후의 진실은 무엇인지 가려본다.

그간 이순신의 모습은 ‘영웅’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은 지워져 버렸다. 임진왜란 7년의 기간.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과 평범한 한 인간 사이에서 고뇌했던 이순신. 그가 남긴 난중일기의 기록을 따라 진정한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복원해 본다.

이완용은 독립협회장이었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하자, 주변 열강들은 조선에서 세력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에 뜻이 있는 지식인들이 모여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알리는 독립문을 세운다. 독립문 기공식에서 이완용은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독립을 하면 미국과 같이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요.
조선인민이 합심을 못하여 서로 싸우고 해하려고 하면,
구라파에 있는 폴란드 모양으로 모두 찢겨 남의 종이 될 터이다.”


독립협회 창립 위원장이기도 했던 이완용. 그가 을사조약에 서명하고, 친일 매국노로 변신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완용의 이름이 있는 독립문 기공식 초청


▲독립신문에 실린 이완용의 이름


이완용의 변신-친미에서 친러로, 다시 친일로!










25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뒤,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익힌 이완용.
그는 첫 주미공사관팀에 발탁되어 2년간 주미공사관에서 일하며 눈을 뜬다. 조선에 돌아온 그는 친러파와 연합해 고종의 아관파천을 주도. 이후 최고의 실세로 자리 잡는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미국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용인한다. 공사관 시절부터 이완용과 친분이 있던 주미공사 알렌마저 해임되어 한국을 떠난다. 정치적 고립 상태에 빠진 이완용. 1905년 11월.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도착한다.









▲서울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


▲이완용은 이토를 스승으로 모셨다



지울 수 없는 이완용의 친일 행각들!






을사조약에 서명한 이완용. 그는 조선의 외교권은 힘을 키워 다시 찾으면 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5년 후, 그는 나라의 통치권을 일본에 완전히 넘겨주는 한일합방 문서에 서명한다.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 경찰권을 일본에 넘기고, 의병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한국인 헌병보조원 제도까지 제안하는 이완용. 3.1운동이 일어나자 세 차례나 경고문을 발표. 내선일체와 일본어 교육을 강조한다. 그는 계속해서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 협조한다.







未離海底千山暗, 及到天中萬國明
해가 아직 바다 속을 떠나지 않았을 땐 온 산이 어둡더니,
하늘로 떠오르니 온 세상이 밝아지는구나.

<이완용이 일장기에 적은 구절.
이완용은 일본을 떠오르는 해로 묘사했다.>



<한국사 傳 3부작>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제1부 내가 무너지면 조선도 무너진다 ( 4월 26일 토 20:10~21:00 KBS 1TV )
제2부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 5월 3일 토 20:10~21:00 KBS 1TV )
제3부 몸은 죽고, 나라는 살다 ( 5월 10일 토 20:10~21:00 KBS 1TV )


<한국사 傳>에서는 2008년 충무공 탄신일을 맞이하여 <난중일기. 인간 이순신의 기록 3부작 특집>을 마련하였다.
‘영웅’의 이름 아래 가려진 ‘인간 이순신’의 새로운 면모. 새로 발견된 32일간의 을미년일기와 친필 난중일기에 입각해 철저하게 밝혀낸다.
제 1부는 임진왜란에 나서는 인간 이순신의 기록을 담는다. 전쟁 전, 병을 자주 앓았던 이순신. 그의 건강상태는 어떠했고, 첫 출전을 계속 미룬 까닭은 무엇인지, 조선 육군이 연패하는 가운데 바다에서 전승을 올린 이순신의 승리 비법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2부에서는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의 행적을 찾아가 본다. 정유년 2월에 체포된 이순신은 백의종군하는 가운데 어머니마저 돌아가신다. 이순신이 빠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군은 커다란 패배를 겪고, 이순신이 다시 전장에 서게 된다. 거의 전멸한 조선 수군으로 다시 한 번 출사표를 던지는 이순신. 백의종군에서 명량해전을 치르기까지의 그가 겪은 고초와 고뇌의 흔적을 추적해본다.
3부에서는 명량해전 이후부터 이순신의 마지막 기록을 담는다. 조선 수군의 재건 현장과 조명연합군의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던 그의 심리는 어떠했는지 살펴본다. 또한 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문들. 자살설과 은둔설의 진위여부를 비롯, 이순신 최후의 진실은 무엇인지 가려본다.

그간 이순신의 모습은 ‘영웅’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은 지워져 버렸다. 임진왜란 7년의 기간.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과 평범한 한 인간 사이에서 고뇌했던 이순신. 그가 남긴 난중일기의 기록을 따라 진정한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복원해 본다.

매국의 또 다른 이름 – 경성 최고 현금 부자!





정미칠조약과 한일합방 대가로 받은 이완용의 은사금 금액은 25만원. 지금의 50억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각종 하사금 수령과 국유 임대지 무상 수령을 통해 엄청난 차익을 얻은 이완용. 1925년 당시 그의 재산은 600억원에 이른다. 그는 어떻게 이런 큰 부자가 되었을까? 경성제일의 현금 부호라 불렸던 이완용의 축재 과정을 밝혀본다.



죽는 순간까지 반성하지 않은 자의 최후!










1926년 이완용은 죽음을 맞이한다. 일본 순사들의 호위 아래 진행된 그의 장례 행렬은 호사스럽고 화려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았던 이완용. 그러나 역사의 냉혹한 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완용의 장례식 기사가 실린 매일신보


▲이완용의 이름이 지워진 우봉이씨 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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