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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기고]역사정의 세우는 법적 판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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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열 사무총장


 


우리 사회에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일간의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외교 갈등이 국제전이라면, 건국절 논쟁은 가히 내전 수준이다.
일면 생경하게 보이는 정통 논쟁은 국민의 정부 등장 이후 권력 금단 증세를 앓고 있던 일부 보수언론과 좌파에서 전향한 학자군에 의해 단서가 열렸으며, 정권교체 이후 증폭되고 노골화하고 있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폐지 구상에서 이미 예견되었지만, 이명박 정권의 역사 뒤집기는 참여정부를 부정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압권은 건국절 제정 시도이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식민지 시기와 이승만 박정희 정권기를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전파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여왔다.
이들은 일본 우익을 무색케 하는 엽기적 역사관을 서슴없이 드러내면서 한국 사학계의 정설을 뿌리째 뒤흔드는 등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금도를 넘어서는 자신감은 정권과의 유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교과서 파동에서 드러나듯이 정권교체와 더불어 정부와 재계 극우단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에 가세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친일파 후손들 줄줄이 나서

반만년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나라를 한갓 신생국가로 만들려는 저의가 무엇인가. 이는 친일·독재로 얼룩진 부인할 수 없는 과오를, 역사를 단절시킴으로써 은폐하려고 하는 악의적인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보수의 오랜 덕목인 애국주의 자유민주주의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중적 가치기준과 사고의 분열은 희극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영토문제에 열을 올리는 극우단체들이 친일청산은 앞장서 저지하려 한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인권유린을 비판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붙인다. ‘잃어버린 10년’을 훨씬 거슬러 수십년 전 냉전시대로 회귀하려하는 퇴행적 역사인식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정권의 성격과 극우세력이 득세하는 사회 분위기 탓일까. 마침내 친일파 후손들까지 나서고 있다. 재산환수 대상이 된 친일파 후손들이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이 부당하다고 강변하며 법에 호소하고 있다.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진 사안에 대한 이의신청이 80%가 넘으며 행정소송과 위헌소송까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특급 친일파 송병준을 비롯한 친일귀족들의 후손들도 포함돼 있다. 민간에서 편찬을 추진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도 친일파 유족들에 의해 제기된 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 심리를 기다리고 있다.

법률 해석에만 얽매여서야

문제는 역사정의와 법적 판단이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현실이다.
친일파 재산환수 등 과거사 관련 소송에서 헌법정신과 입법목적 그리고 역사적 의의와 공익을 중시하는 거시적 판결도 나오고 있지만, 법률의 자구 해석에만 얽매인 미시적 관점의 판결도 내려지고 있다. 실정법은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법리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역사의 무게가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역사정의의 실현은 사회의 보편적 가치 기준을 확립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유사 보수세력의 과도한 이데올로기 공세와 우리 내부의 또 다른 역사왜곡을 지켜보면서, 과연 법률적 판단이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열어 줄 것인지 우려 반 기대 반의 시선으로 지켜본다.<내일신문, 0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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