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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신문로칼럼]역사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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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식(연구소 기획이사)


 


9박10일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일행과 함께 극동시베리아를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4000여km를 열차를 타고 이동하며 일제하 항일투쟁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시베리아는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다. 조선백성들은 1860년부터 연해주로 이주 했다. 이들은 왕조의 폭정과 대기근을 피해서 국경을 넘었다.
1910년 무렵 15만 명 이상이 연해주를 비롯해 극동시베리아 일대에 살고 있었다. 큰 농장을 개척해 많은 돈을 번 사람도 나왔다. 1905년 조선왕조가 멸망했다.
애국지사들이 연해주로 건너와 국권회복운동을 벌였다. 의병장 홍범도 유인석, 헤이그 밀사 이상설, 사학자 박은식 신채호,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이동녕, 임정 국무총리 이동휘 등이 1910년을 전후해서 연해주에 머물렀다.
이들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고, 학교를 짓고, 신식무기를 살 돈을 대고, 직접 전장에 나간 사람들이 바로 조선왕조가 버렸던 고려인이다.
안중근 의사를 후원하고 그가 죽은 후 유족을 돌 본 사람도 함경도 빈농 출신의 고려인 최재형 선생이었다. 이들은 1937년 가을 스탈린의 지시로 화물열차에 실려 40일을 이동한 끝에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버려졌다. 17만여 고려인은 그곳에서 다시 삶의 터전을 일으켰다.

해외동포를 돕는 선한 사람들
1991년 소연방 해체 이후 이슬람 문화권인 중앙아시아에 민족주의 열풍이 불었다. 극동러시아 일대로 귀환한 고려인이 벌써 5만명을 넘었다. 지금도 이주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 통한의 땅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장민석씨는 1987년 경원세기 노동조합의 민주화투쟁 이후 노동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람이다.
그는 3년 전 막내아들을 데리고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왔다. 시베리아의 거친 바람과 뜨거운 햇볕은 그를 ‘흑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가 일하는 동북아평화연대는 2001년 고려인 조선족 재일동포를 돕기 위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에서 분리된 시민단체다. 김승력 김현동 장민석 세 사람은 3년에서 10년째 고려인의 연해주 농업정착을 돕고 있다.
한국에서 모금한 종자돈으로 가구당 최대 3000달러까지 영농자금을 융자해주고 기술지도를 하고 있다. 이미 300여 가구가 혜택을 받았다. 동북아평화연대라는 작은 시민단체가 7년째 이런 일을 하는 동안 대한민국 정부는 기념관 건립비용의 절반인 30억원을 지원했을 뿐이다.
얼마 전 황당한 논쟁이 벌어졌다. 건국을 강조하고 싶은 사람들은 건국과정에 대한 평가가 자학적이라는 불만을 가진 것 같다. 그러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친일파를 지지기반으로 삼았다는,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제 만주국 장교를 지냈다는 태생적 약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애국선열에 대한 배은망덕 안돼
특히 이승만 정부는 독립유공자를 철저히 외면했다. 독립유공자 발굴과 서훈은 1962년에야 시작됐다. 그 17년 동안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쳤다. 배우지 못했기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됐음을 고백해야 한다. 시베리아의 고려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은폐하는 것은 미래의 잘못을 예고할 뿐이다. 1948년 8월 15일은 1945년 8월 15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콤플렉스가 큰 사람들은 애써 이 뿌리를 외면하려고 한다. 개인의 콤플렉스로 끝나면 그만인데 역사에 대한 배은망덕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더 큰 일이다.<내일신문, 0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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