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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의 부활,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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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현재 대학 재학 중인 서문 일 씨가 연구소에 보내온 글이다. 서문 일씨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한편 문제의 이 게임은 이 달 말 출시 예정으로 최근 게임물등급위원회(www.grb.or.kr)의 심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 서문 일



학교에서 돌아온 한 아이가 저녁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넣는다. 아이는 어제 형이 사온 게임시디를 넣고 게임을 시작한다. 곧 컴퓨터 모니터에는 욱일승천기를 앞세운 일본함대가 유럽과 러시아의 군대를 쳐부수고, 천황이 나타나 명령을 내린다. 아이는 정의의(?) 일본군을 이끌고 적군을 쳐부수어 천황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다.


일본 극우파 가정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아니다. 이건 10월 31일 레드얼럿 3이란 게임이 출시되면 전 세계의 가정집, PC방에서 우리가 볼 수 있게 될 풍경이다. 심지어 한국도 그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대기업 중 하나인 EA(일렉트로닉 아츠)가 이번에 시장에 내놓을 ‘커맨드 앤 컨커 : 레드얼럿 3’(이하 레드얼럿 3)은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류의 전쟁 게임으로서, 플레이어(게임을 즐기는 사람)는 군대를 지휘하여 적을 쳐부수어야 한다. 적은 컴퓨터가 이끄는 군대도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이끄는 군대도 될 수 있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평범한 게임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른 게임과는 달리 이 게임에는 중대한 특이점 하나가 있다. 바로 ‘다이닛폰테이고꾸’(대일본제국)의 게임 속 등장이다.


첨단 기술과 거대로봇, 뛰어난 해군력으로 무장한 과거 ‘대일본제국’의 재림인 ‘욱일제국’(영문명 ‘Empire of Rising Sun’)이 게임 내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것도 소탕당하는 악당의 입장이 아니라, 선택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게임 속에서 욱일제국의 일원이 되어 적을 소탕할 수 있다는 것.


게임의 실사영상에서는 일본의 천황이 등장해 전 세계에 선전포고를 하고, 과거 ‘대일본제국’의 상징인 욱일승천기가 어깨에 새겨진 거대로보트가 서방연합군의 깃발을 불태우고 거대한 욱일승천기 깃대를 꽂으며 정복을 선포한다.




게임 속에선 욱일승천기를 든 거대한 동상 아래에서 ‘제국의 전사’들이 일본도를 높이 쳐들고 ‘반자이(만세)’공격을 하며, 정신적 학대를 동반한 끔찍한 실험으로 탄생한 ‘여고생’이 욱일승천기 형상의 정신에너지를 내뿜으며 적을 산산조각 낸다. 해상에선 ‘쇼군 전함’이 적의 함선을 들이받아 침몰시키고, 하늘에선 첨단 기술로 변신하는 뇌격기 ‘메카 텐구’가 자유자재로 적진을 유린한다. 끝내 황폐화된 적진 위에 세워지는 ‘욱일제국’의 기지 곳곳에는 욱일승천기와 함께 보란 듯이 ‘日本工業(일본공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게임을 제작한 담당자의 말인 ‘욱일제국이 일본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건 마치 태평양 전쟁 때의 일본군에다가 일본 극우파들의 소설 속에 나오는 각종 망상을 쏟아 넣어 잡탕을 만든 것 같다. 이러한 진영이 등장하는 게임이 전 세계에 팔린다는 것만 해도 끔찍한데, 더 끔찍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몇몇 청소년(혹은 성인)마저 이러한 ‘다이닛폰테이고꾸’의 재현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이 게임의 베타테스트(정식 출시 전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샘플을 무료 배포해 실시하는 테스트)가 이뤄지는 동안 인터넷의 게임을 즐기는 젊은 층 중심의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그들만의 속어로 ‘욱일제국 간지다, 멋지다’라며 감탄사를 표하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문제가 있지 않느냐라는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곧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라는 반대논리에 묻혀 잠잠해졌다.심지어는 문제를 삼은 네티즌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몰아내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들이 친일파라거나, 매국노라고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또한 그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 말대로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그러나 그 게임을 즐기는 우리는 바로 현실에 있고, 그 현실에는 이 게임에서 묘사한 부활한 ‘대일본제국’에게 부모나 자식을 잃거나, 처참한 고문을 당한 사람이 있다.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깃발을 앞세운 일본군에게 처참히 유린당한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매주 수요일마다 시위를 하시는 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반일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민주주의의 시대가 된 21세기에 제국주의의 상징을 앞세운 군대가 적을 쳐부수는 내용의 게임이 굴지의 대기업 손에서 개발되고, 그 게임이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것, 그리고 제국주의의 피해국가인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제국주의에 대한 아무런 비판 없이 이 게임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문제다. 어떠한 사람은 이 게임에서의 일본제국의 등장이 단순한 상업성과 게임의 흥미를 위해 등장한 것일 뿐이므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업성만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어떠한 고찰도 없이 이러한 내용의 게임을


만든 대기업과 그 결과물인 ‘레드얼럿 3’은 오히려 더욱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게임 속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 ‘대일본제국’, 그리고 가상 속의 세계에서 ‘대일본제국’의 사령관이 되어 적들을 쳐부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문제의식과 비판의식. 그리고 그들의 변,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이들의 모습에 나치스를 찬양하는 내용의 게임을 즐기는 유럽 젊은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내 착각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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