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민족의 자존을 위해 헌신해 오신 존경하는 여러 선생님들, 연구소를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이 시대의 독립군이라 할 수 있는 회원 여러분, 그리고 역사정의실현의 최전선에서 열성을 다하고 있는 소장님을 비롯한 연구소의 이사 운영위원 상근일꾼 여러분. 고맙습니다.
민족사정립에 앞장서 온 민족문제연구소의 제3대 이사장으로 여러분들 앞에 서게 되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회와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초대 이돈명 이사장님과 2대 조문기 이사장님께서 높이 올려놓으신 우리 연구소의 위상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18년 역사의 우리 연구소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간 민족문제연구소의 열렬한 학술운동과 실천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미처 직접 동참할 기회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님들을 통해 연구소의 고군분투를 전해 들으면서 마음으로나마 성원을 보내었습니다. 이제 연구소의 식구가 되어 민족사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나가는 길에 힘을 보태고,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전진해 나갈 것을 동지 여러분에게 약속드립니다.
저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뤄낸 업적을 돌이켜보면서 그간 연구소를 지켜온 동지 여러분들이야말로 진정 역사의 주역이라 자부할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1949년 친일경찰들의 습격으로 반민특위가 와해된 이후 친일문제는 금기의 영역이 되고 말았습니다.역대 독재정권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민족사를 바로세우는 친일청산운동을 공공연하게 용공으로 몰아붙이는 거꾸로 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친일파와 그를 비호하는 친일세력들이 독립운동가와 민족운동세력들을 박해하고 탄압하는 용납할 수 없는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 역사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입니다. 연구소 성원들의 지칠 줄 모르는 투쟁은 철옹성 같던 어둠의 역사에 상식과 정의의 숨결을 불어 넣었습니다. 이렇게 역사정의실현의 교두보는 마련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고도험해 보입니다.
민주주의가 성취된 이후 많은 이들은 이제 역사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흡하나마 과거사청산의 가능성도 엿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 같은 자만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거침없는 역사의 반동은 이 시대를 광풍 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갈구하는 절대다수 시민들은 광기와 독선이 횡행하는 오늘의 현실에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성취했던 작은 성과들은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우리가 누리고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는 쉽게 얻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현실이 이렇게 엄혹하기에 연구소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연구소가 출범과 함께 내걸었던 역점 사업인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불과 몇 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2004년 초 전개된 국민모금운동에서 보여준 뜨거운 열기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얼마나 절실한 민족적 과업인지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반민특위가 와해된 지 꼭 60년 그리고 일제의 압제에 처음으로 대반격을 가한 삼일절 90년이 되는 내년 초, 벅차오르는 감격 속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제 임기에 이러한 결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무한한 영광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친일인명사전 편찬은 거대한 역사문화운동을 전개하는 단초이며 발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적 지지 아래 달성한 소중한 성과를 어떻게 사회에 돌려 줄 것인지를 숙고하고 실천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연구소가 열어 가야할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그려봅니다.결코 쉽지 않지만 보람 있는 나날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여러 선생님들께서 지혜와 용기를 불어넣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끝으로 바쁘신 가운데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과 5천여 회원님들의 가정에 행복과 건강이 항상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