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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戊午士禍)와 근현대사 교과서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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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서지부 조왕호 회원이 최근 ‘좌편향’교과서 시비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현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보내왔다. 조왕호 회원은 현재 대일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재직 중이며 현재 일선 학교에서 사용 중인 한국 근현대사 검인정 교과서(대한교과서)의 공동 집필자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조왕호 회원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이하 교과서)를 두고 이른바 ‘좌편향’교과서라는 시비가 일고 있다. 전에도 몇몇 단체에서 서술상의 미비점 등을 지적하면서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해 오거나, 뉴라이트 등 수구세력들의 교과서에 대한 좌편향 시비에 조동이 호응하는 정도의 반응은 있어왔다. 그러던 것이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한 상공회의소, 국방부, 교육부 장관, 대통령까지 나서서 교과서의 좌편향을 시정해야 한다고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고 여기에 조동 등 일부 언론에서도 또한 대대적인 선전 공세를 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조선 최고의 폭군 연산군과 무오사화였다. 역사교사라는 직업의식이 이런 데도 작용하나 보다.








▲ 조선왕조실록


이극돈 : 전하! 신 이극돈 아뢰옵니다. 사관 김일손이 좌편향 사초를 쓰고 있사옵니다.
연산군 : 그게 무슨 말이더냐?
이극돈 : 김일손은 이미 죽은 김종직의 제자이온대, 그 자가 제 스승이 쓴 ‘조의제문’이란 글을 사초에 실었사옵니다.
연산군 : 스승의 글을 실은 것을 두고 어찌 좌편향이라 하느냐?
이극돈 : 조의제문은 바로 전하의 할바마마인 세조대왕을 비방하는 내용입니다.
연산군 : 뭐라고? 어느 놈이 감히 위대하신 할바마마 세조대왕을 비방한다는 말이냐? 할바마마가 없었다면 지금 내가 누리는 짜릿한 즐거움도 없거늘….. 여봐라! 좌편향 사초와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무오사화에 오늘날 교과서 ‘좌편향’ 시비와 비슷한 점이 있는 듯하여 좀 희화적으로 표현해 봤다. 몇 가지 비교해 보자.

첫째로 무오사화에서는 일단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지금의 교과서 시비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이승만, 박정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수구세력들은 단독 정부의 수립이나 반민주 독재 정치를 비난하는 일을 두고 마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인 냥 난리친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을 비난하는 행위는 곧 큰 죄이므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오늘날 민주 국가에서 정권이 곧 정통성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를 일삼았던 역대 대통령을 비난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전혀 손상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과거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본업에 속한다. 과거의 잘못을 비판적으로 서술한다고 해서 ‘자학사관(自虐史觀)’이 아니며, 부끄러워해야 할 일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태도가 더 부끄러운 것이다.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민주주의에 있다. 반공이나 시장 경제도 민주주의를 가꾸어가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그 자체가 목적시 되거나 마치 무슨 교조적 이념으로 떠받들어져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북한에 대한 비교 우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바르게 지켜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로 역사 서술을 정쟁화하여 지배 권력 강화에 이용하려는 점이다. 성종 조 이후 김종직을 필두로 사림 세력이 중앙 정계에 급속히 진출하였다. 학문적 기반이 약하면서도 권력을 독점하고 대농장을 소유했던 훈구 세력은 도덕 정치를 내세워 개혁을 주장하는 사림 세력의 진출에 큰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연산군도 바른말을 잘하는 사림들이 늘 껄끄러웠다. 이에 사초에 조의제문을 실은 것을 빙자하여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림 세력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감행한 것이다. 지금의 교과서 좌편향 시비도 결국은 수구 세력의 불안감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과거 독재 권력에서는 은폐되고 왜곡되었던 과거의 진실이 점차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것은 결국 친일, 친독재를 통해 구축해 온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현 정부 들어서 대내외적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모든 비난을 뒤집어쓰게 생겼다. 뾰족한 돌파구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미국산 쇠고기 문제, 종교 편향 문제 등이 겹쳐 지지 세력은 이미 대거 이탈하였다. 어떻게든 이러한 위기 국면을 돌파하고 다시 지지 세력을 결집해야 한다. 그렇다고 요즘에는 국민들이 똑똑해져 무슨 간첩단 사건 정도로는 속아 넘어가지도 않는다. 누가 하려고 했던 것처럼 북한과 짜고 판문점에 총격 사건을 일으킬 수도 없다. 그러니 수십 년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던 색깔론을 이용하려면 이제 교과서 좌편향 논란보다 더 좋은 것이 있겠는가.

셋째로, 좀 더 심각한 문제는 역사 서술을 권력의 입맛대로 하려 하는 점이다. 연산군은 왕이 관여해서는 안 되는 사초(史草) 작성에 개입하였다. 만역 조선의 모든 왕이 사초를 열람하였다고 생각해 보라. 지금 조선왕조실록이 제대로 된 역사 기록일 수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피바람이 불었겠는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역사 서술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칠 수는 없는 일이다. 현 교과서의 역사 서술은 수많은 연구 성과들이







 누적된 결과물이다. 만에 하나 현 정부가 교과서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대로 고쳤다고 치자. 정권이 다시 바뀌면 그 서술이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역사 서술은 어떤 형태로든 권력자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권력이 역사에 개입하는 순간 역사의 진실과 엄정함은 훼손되게 마련이다. 물론 교과서에 오류가 있거나 왜곡된 의미를 담고 있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도 반드시 절차적 정당성이 뒤따라야 한다. 만약 이극로가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김일손



을 연산군에게 고자질하지 않고 자신도 몸담고 있는 실록청 내부에서 의견을 서로 수렴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면 무오사화라는 피비린내는 없었을 것이고 연산군은 역사적 오점을 하나라도 덜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현 교과서의 검인정 체제에도 합당한 수정 절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교과서 좌편향 시비에는 이러한 절차는 아예 무시된 채, 애초부터 이념 논쟁으로 몰고 갔다. 마치 정권에서 멀어졌던 지난 10년간의 설움을 한꺼번에 쏟아내려는 듯이……. 이로 말미암아 시대착오적인 국민 분열만 증폭되는 느낌이다.

교과서 좌편향 문제가 이제는 이념 시비에서 본격적인 직권 수정 작업으로 들어간 것 같다. 10월 말까지는 수정 작업을 완료해야 11월 중순에 인쇄에 들어가고 내년 2월 교과서가 보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과학기술부가 직접 수정 사항을 결정하고 그저 훈시 규정으로 만들어진 장관의 수정 명령권을 발동하기로 한 듯하다. 교과서 수정 명령권은 아직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었으며, 그 자체가 검인정 교과서의 취지를 크게 훼손하는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장관 마음대로 교과서를 수정토록 한다면 그것은 이미 검인정이라고 볼 수 없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은 사라지고 오로지 국정 체제와 같은 획일화된 서술과 단 하나의 역사적 관점만이 남게 마련이다. 현 정권이 수많은 역사학자와 교사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오로지 수구 세력의 견해만을 받아들여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수정하려 한다면 역사학계의 큰 저항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한 역사를 왜곡하려 했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를 자신의 입맛대로 쓰려는 태도는 500년 전의 연산군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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