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금폭탄’으로 곤경을 치를 당시 유력한 대통령후보였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세금 이야기를 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미안한 표정으로 ‘죄송합니다, 좋은 곳에 아껴서 쓰겠습니다’ 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그걸 못한다. 세금 많이 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 누가 있느냐.”
이 말을 듣고 ‘을의 입장에 오래 서보아서 국민들 정서를 읽는 감각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건 내 착각이었다. MB 정부는 세금문제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보다 조심성이 더 없다.
MB 정부는 ‘강부자’라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출범했다. 그만큼 혼났으면 몸조심 말조심을 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종부세를 대폭 인하하겠다면서 서민들의 재산세가 인상될 가능성을 언급해서 혼쭐이 났다. 이어서 소비증가와 별 연관이 없는 상속세 인하를 꺼내들었다.
점입가경으로 실물경제를 부양한다면서 부동산투기를 부추길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세 폐지 검토를 내놓았다. 경제수장의 이런 발언은 부자들의 푸념을 대변하는 것으로 들렸다.
표현하는 방식도 매우 고약했다. 강만수 장관은 국회에 나와서 종부세를 “시대의 아픔”이라고 했다. 또 “어떤 나라가 50% 60%씩 그렇게 양도세 중과세를 하냐”고 큰소리를 쳤다.
부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항변을 하는데, 도무지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중과세 폐지는 한나라당에서도 시기가 안 좋다며 제동을 걸고있다.
부자들의 푸념 대변하는 장관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은 토목건설에 집중해서 건설을 살리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도 국가부채가 311조원인데 내년에는 사상최대 규모인 24조원의 재정수지 적자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장차 국민이 세금으로 갚아야할 빚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선심만 잔뜩 썼지 국민들에게 정확한 사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정부는 공무원들에게도 한몫 안겨줬다. 공무원연금은 지금도 국가예산에서 연간 1조2000억원 정도를 지원해준다. 10년 뒤에는 연간 6조원 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4일 국무회의는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적자는 모두 세금으로 채워줘야 한다.
정부가 이렇듯 하나라도 더 있는 사람 중심으로 세금을 쓰다 보니 지방 서민 중소기업은 온기를 느끼기 힘들다고 한다. 이럴 때 고용 늘리고, 세금 꼬박꼬박 내는 우량 중소기업에 법인세를 대폭 인하해 주어야 한다. 세금으로 건설회사 유동성을 지원해주려면 서민들이 바가지 쓰지 않고 내집을 마련할 대책을 함께 세워야 한다.
분양원가 공개가 제대로 됐다면 전국에 미분양 아파트가 16만채에 달했을까. ‘좌파정책, 시장경제 부정’이라는 주장에 밀려 죽도 밥도 안된 짝퉁 분양원가 공개 정책 때문에 분양가는 5년 사이에 두배나 올랐다. 정부의 이런 편식 편애는 당분간 고쳐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럴 때 제정신 가진 참모나 정치인들이 직언을 서슴지 말아야 한다. 국정운영에 창조성 있고 알찬 내용을 채워줘야 한다. 국민을 진짜 주인으로 섬기는 봉사정신을 보여야 한다. 부자들의 불만과 서민의 고통을 얼음장처럼 냉철하게 분석해서 균형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서민 고통, 부자 불만 같이 봐야
윗사람 눈치 보는 정치인 관료들에게 신영복 선생의 글 한구절 들려주고 싶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 30 정도의 여유, 여백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이 창조적 공간, 예술 공간이 될 수 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을 경우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거짓이나 위선, 아첨이나 함량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 곳곳에 앉아 있는 함량미달의 불량품은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제 눈에 피눈물이 나는 법이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러했다.<내일신문, 08.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