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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맘몬이 아니라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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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두 글은 김병상 연구소 이사장이 천주교 사제들의 소식지인 ‘함께하는 사목’ 제50호와 51호에 기고한 글이다.<편집자 주>


 


김병상(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함께하는 사목 제50호>
참 회….
(김병상 몬시뇰)

예수님 시대에 ‘세리’는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였다. 당시 세리는 침략자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제국에 바치고 자신의 배를 채우며 부를 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민족과 조국을 배신한 것이다.

‘친일파’란 용어를 국어사전에서 보면 ‘1945년 이전에 일제 때 반민족적 행위를 한 무리’라고 적고 있다. 조국과 민족이 침략자들에 의해 모든 것을 착취당했는데 침략자들의 힘을 등에 업고 동족을 억압하고 민족을배반했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일부 후손들은 그 배경을 바탕으로 지금도 부와 영화를 누리며 큰소리를 치며 살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 의해 4,800명의 친일 인사 명단이 발표되었다. 이 발표를 보면서 아주 늦게나마 친일파들을 공적으로 드러낸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였다.

그러나 친일 명단에 오른 그들의 후손들은 절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크게 분노하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선조가 일제시대 때 애국자로 청렴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있었는데 친일하였다는 발표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항의하러 갔다가 당시 역사 기록에 친일 흔적이 분명히 있음을 확인하고 조용히 돌아갔다고 한다.

친일 명단 중에는 일제에 협력한 천주교 측 인사도 7명이 포함되어있다. 교회가 그 동안에 보였던 태도는 당시 호교론적 입장에서 부득이한 결단이요 협력이었다고 말해왔다. 당시 교회의 친일 협력이 많았지만 특히 젊은이들이 일본의 침략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말로, 글로 강조하였다.

당시 상황에서 협력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때 군대에 끌려가 죽은 많은 젊은이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일제의 침략과 잔인한 억압 앞에서 목숨을 바쳐 저항하고 독립을 외치다 죽어간많은 선혈들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천주교회에서는 친일 명단이 발표되자 재심을 청구했다고 한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는 많은 역사 학자들, 법조인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십 년 동안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고 많은 토론을 거쳐 발표한 것이다. 일제시대에 발간한 당시 경향잡지에서도 일본에 충성을 드러낸 글들을 볼 수 있다.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최근에 출간한 ≪깨물지 못한 혀≫에도 일제시대 교회의 친일행위가 잘 나타나고 있다.

교회도 부족한 사람들의 모임이므로 잘못하고 실수를 범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가 인류 앞에 큰 잘못을 많이 저질렀다. 교황께서는 2000년대를 열면서 역사적인 많은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3월 12일 화해와 용서의 날로 선포하였다.


<함께하는사목 제51호>
친일인명사전, 맘몬이 아니라 하느님…..(김병상 몬시뇰)

다석 유영모 선생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일제 강점기에 더 많이 공부해봐야 결국 높은 자리에서 나쁜 짓하면서 살게 될 게 뻔하니 공부는 고등학교까지만 하고, 농사만이 정직한 직업이니 농사지어 먹고 살라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훌륭한 스승이 그렇듯이 다석 선생님도 자기 말을 그대로 지켜 46세부터 농사를 지으셨고, 선생 자식들을 고등학교까지만 가르치셨다.

다석 선생님은 그래도 형편이 좋아서 자식을 고등학교까지는 공부시켰지만, 대부분 독립운동가는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았다. 공부는커녕 식구가 굶어죽는지 사는지 돌볼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해방 조국에서도 별볼일 없는 신세인 건 당연하다. 어차피 독립운동가가 무슨 보상을 바라고 목숨 걸고 싸운 건 아니니,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농사를 짓든 노동을 하든 정직하게 벌어먹고 사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친일분자 후손이 대부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 거다. 조상 죄를 후손이 계속 지고 가야 한다는 게 아니다. 조상이 친일했으니 우리 사회에서 평생 죄인처럼 살아가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조상이 친일해서 얻은 재산을 바탕으로 편히 살려고 하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 만일 그런 재산이 있다면 내놓아야 마땅하다. 내놓지 않으면 나라가 빼앗아야 한다. 그런데 친일 후손은 그런 마음이 없다.

세상이 내 조상, 내 부모가 친일한 줄 모르는데, 괜히 내가 먼저 나서서 자수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친일 기준이 뭔지, 그 기준에 따르면 누가 친일했는지도 정리되고 공감되지 않고 있다. 해방 뒤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친일 역사를 씻어내는 첫 걸음은 누가 친일했는지를 밝혀 세상에 드러내는 거다.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내려는 거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실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발표하자 여기저기서 항의하고 난리가 났다. 아직 책이 나온 게 아니라 이런 사람을 친일인명사전에 넣을 거라는 발표만 했는데도, 한국천주교회도 그 가운데 하나다. 천주교 사제로서 부끄럽다. 아마도 그 명단에 오른 사람의 후손이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아주 아주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리라. 이 같은 행동이 과연 친일 조상 땅 찾겠다고 소송을 거는 파렴치한 친일 후손 행위와 다르다 할 수 있을까?

살면 살수록 세상만사가 모두 얽혀 있다는 걸 더욱 더 느낀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사회문제들이 친일 청산 문제와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뿌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하느님과 맘몬을 둘 다 섬길 수 없다고 말했다. 친일이나 오늘의 사회 문제나 다 맘몬을 선택할 결과이다. 회개해 하느님을 선택하는 길, 그게 친일 청산이고 오늘의 사회 문제에서 진짜 벗어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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