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학년이에요?” “2학년이요” “친일파가 뭔지 알아요?” “몰라요”
지난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 전체 무대의 절반을 60여명의 소규모 인원이 차지하는 작은 소극장에서, 초등학교 2학년 한 아이가 사회자의 물음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총 4,430명의 ‘친일인명’이 기록된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을 기념해 ‘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이 주최한 콘서트 현장. 20여년이란 긴 세월, 각종 소송으로 인한 법정다툼과 열악한 재정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10월 모습을 보이는 ‘친일인명사전’을 가장 먼저 반기는 자리다.
전경옥, 이지상 등 가수들의 공연과 ‘플리즈팀’의 광대극, 성미산마을어린이합창단의 합창 등으로 꾸려진 조촐한 자리였지만,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만든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의미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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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을 펴내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이 ‘친일인명사전편찬 기념 콘서트’에서 ‘친일청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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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을 가장 먼저 반긴 콘서트 현장.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10월 18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식 발간되는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아일보> 창업자인 김성수, <조선일보> 사주였던 방응모 등 보수진영의 반대와 사회적 파장이 만만찮은 인사들이 가감 없이 실렸다.
1945년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들의 방해로 와해 된 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0여년만에 ‘친일청산’을 위한 하나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사전편찬의 의미를 ‘학문적 연구의 성과’로 본다. 임 소장은 “친일인명사전은 청산이라기 보다는 학문적 연구의 성과”라며 “학문적 연구 성과로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전이 나옴으로써 친일청산을 위해서 어떤 연구와 조치를 해야 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 사전이 어떤 조치를 할 권리도 의도도 없다”며 “연구성과를 내놨으니까 이걸 바탕으로 해서 정치인, 경제인, 문화인, 학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기폭제가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일인명사전이 민간단체의 손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도 향후 친일청산 작업의 과정에 적잖은 의미를 던진다.
1999년 8월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전국 교수 일만인 선언’을 통해 2001년 구성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전문연구자 13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한 170여 명이 집필위원으로 위촉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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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리즈팀’이 ‘기억과 기록 그리고 미래’라는 콘서트 주제를 담은 광대극을 펼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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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콘서트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많았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 5,000여 명의 회원들의 후원금과 국민성금운동을 통해 모인 7억여 원의 편찬기금으로 꾸려졌다. 순수한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친일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인물을 수록하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공문서·신문·잡지 등 2,000여종의 원사료 등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100만여 건에 달하는 인물정보를 구축했다. 편찬위원회에선 이를 토대로 20여개의 전문분과위원회가 의견서를 내고, 상임위와 자문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전체회의에서 최종 수록 인물을 선정했다.
임 소장은 “내가 연구자들한테 강조하는 것은 이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 집안 어른 대하듯 하라고 했다. 절대 적대감이나 증오심을 갖지 말고 집안 어르신 대한 듯 하라고 강조했다”며 “확실하게 행동증거가 있는 자료만을 기술했지 단 한 건의 가공이나 평가도 없다”고 강조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지방편·해외편 등 4권)과, 식민지통치기구사전 1권, 자료집 4권, 백서 1권 등 총 17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를 2015년까지 완간 할 계획이다.
다음은 친일인명사전 편찬 기념콘서트 현장에서 만난 임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학문적 성과다”
□ 통일뉴스 : 박정희 전 대통령,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자, 방응모 <조선일보> 사주 등 사회적 파장이 큰인물이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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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소장은 사전 편찬의 가장 큰 의미를 ‘학문적 성과’로 짚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 임헌영 : ‘사회적 파장’이 있다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일인명사전은 철저히 식민지 때의 행동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 뒤에 어떤 활동과 기여를 했던, 식민지 시대 체제에서 활동 자체가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이익에 위배됐으면 등재 인물이 되는 것이다. 8·15 해방 이후의 공적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 인물 선정은 어떻게 했나?
■ 대단히 복잡하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짧게 말하면 그 당시 나라를 잃어버린 상태를 상상으로 생각할 때, 우리 민족과 국가의 이익, 존립에 위해를 끼친 현저한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내가 연구자들한테 강조하는 것은 이 사람들을 대할 때 내 조상, 우리 집안 어른 대하듯이 하라, 절대 적대감이나 증오심을 갖지 말고 집안 어르신을 대하듯이 하라고 강조했다. 확실하게 행동증거가 있는 자료만을 기술했지 단 한 건의 가공이나 평가도 없다. 액면 그대로다.
임동옥 선생님 메모가 기초가 되고, 계속 자료를 추적했다. 우리연구소만이 아니고 전 학계가 연구했던 게 망라된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할 것 없이, 다 취합한 것이다.
□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20여년이란 긴 시간인데,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의미는?
■ 우리 연구소가 임종국 선생의 위업을 받들어서 했는데, 임종국 선생의 목적이 인명사전편찬이다. 1991년 연구소를 만들 때 목적 자체가 인명사전이었다. 그러다가 초기에는 정비가 안 돼서 자료만 모으고 캠페인성으로 각 분야별 친일 활동에 대한 책을 내고 연구활동을 해 왔다. 어느 정도 연구가 축적이 됐을 때,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학문적 성과다. 책을 낸다고 그 사람들에게 법적 제재를 줄 권한이 없지 않나. 연구소가 하는 연구업적이기에 우리나라의 역사학의 연구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의미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침략이나 다른 나라 이해관계가 대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때가 또 오면 우리 민족이나 국가를 배신하려는 사람들을 어떤 위해와 위협 속에서도, 역사학이 이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내 행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나중에 ‘아, 친일인명사전이 나왔지. 나도 나중에 오를 것 아니야. 하지 말아야지’ 이런 마음을 만들게 하자는 것이다.
“친일청산의 시작은 인적청산부터…”
□ 현재까지 친일청산은 어디까지 왔다고 보나?
■ 청산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지금도 정부기관, 조사기관이나 이런 것도 사실은 부분적인 극히 제한적인 조치일 뿐이다. 원래 과거사 청산이라는 것은 제일 먼저 인적청산이 되어야 한다. 인적 청산이 돼서 그런 식민지 시대 때 가진 가치관으로 우리 사회에 그런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활동이 안 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금도 인적인 청산을 시도하는 기관이 전혀 없다.
두 번째는 인적인 청산에 따라서 법률적 청산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물적인 청산이 되어야 하고. 제일 마지막에 되는 것은 범국민적 교훈으로 확산이 되어야 한다. 모든 교육기관에 들어가야 되고 친일청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역사관, 박물관, 역사관을 각 시도마다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나라를 배신하는 게 얼마나 나쁘다는 것인지가 꾸준하게 확산 되어야 한다. 인간의 행위 중에서 얼마나 올바른지 않은 것이냐는 게 범국민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이것이 돼야 한다. 지금은 하나도 안 됐다.
□ 지난 정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 활동을 해 왔는데.
■ 시작은 됐지만 극히 일부이다. 그것은 다 역사적 청산에 불과한 것이지,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도 안 된 것이다.
□ 친일인명사전은 순수하게 민간의 손으로 만들었다. 민간단체의 일제청산이 가지는 의미는?
■ 친일인명사전은 청산이라기보다는 학문적 연구의 성과다. 학문적 연구 성과로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전이 나옴으로써 친일청산을 위해서 어떤 연구와 조치를 해야 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한 하나의 연구성과다. 이 사전이 어떤 조치를 할 권리도 의도도 없다. 연구성과를 내놨으니까 이걸 바탕으로 해서 정치인, 경제인, 문화인, 학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친일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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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문제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 사전 출판 후 계획은?
■ 이름이 민족문제연구소이듯이 한·일관계만이 아니고 우리 민족 내외, 외적으로는 우리 민족과 관련되는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 내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비민족적인, 반민족적인 요소를 찾는 것, 이런 것을 다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민족이 존속하는 한 연구활동이 계속될 것이다.
우선 인명사전은 나왔지만, 사실은 부속품으로 일제식민통치 사료, 관계기구, 단체연구, 각종 친일자료, 정책자료 등 이런 게 다 나오려면 아직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이 연구만 해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당장은 내년이 1910년 한일강제합병 100년이 된다. 100주년 행사를 위해서 우리 국민이 얼마나 죽었고, 얼마나 황폐화 됐고, 재산과 지하자원을 얼마나 뺐어갔는냐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돼 있다.
이것은 지금 진행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연구를 했는데 조직은 금년에 출범시켰다. 연구소와 별도로 여러 시민단체 시민연구단체들과 별도의 기구로 ‘진실과 미래 국치 100년 공동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기까지 비용문제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 우리 연구소가 시민들 참여율이 가장 높다. 앞으로도 참여해 주길 바라고. 사전 편찬은 회비가 위주가 되고 연구지원금을 받아서 했다. 정부의 공짜 돈은 하나도 안 받았다. 다 연구비를 받았다. 연구 프로젝트는 우리가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성과를 냈는데 전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연구소가 그동안 한 일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식민지 시대의 박물관 만들기 위해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연구자료는 우리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기관보다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
국회에서 연구지원금을 중단했을 때, <오마이뉴스>와 합동으로 국민성금 모금을 해서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그런 걸 보면 역시 우리 국민들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반대하는 쪽도 있다.
■ 과거 문제가 아니라 현실문제다. 사전 편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가를 가만히 보라. 국민 다수의 편을 들어주느냐, 권력자의 편을 들어주느냐, 가진 사람들 편을 들어 주느냐, 가난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느냐, 민주주의를 지지하느냐, 독재정치를 지지했느냐. 반대한 사람들의 주장을 가만히 보라. 그럼 이게 현실문제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 사전 앞에서는 다 발가벗고 겸허하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민족적 양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사전 앞에 ‘나는 잘났다’ 그런 사람은 없다. 국민 전체가 죄인이다. 우리도 죄인의식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속죄하듯이.<통일뉴스, 0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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