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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없는 친일 잔재들, 소통 안되는 괴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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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로 20돌을 맞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이 지난 17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있는 연구소 사무실에서 20돌을 맞는 감회를 털어놓고 있다. 임 소장은 “언젠가 국가와 사회가 식민 잔재 청산을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여, 더는 연구소가 필요없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당당한 풍채에 거뭇한 뿔테 안경을 목에 건 임헌영 소장은 인터뷰 내내 ‘염치’를 강조했다. 친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에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는 ‘염치없이’ 떵떵거리고 산 이들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이런 ‘염치없음’의 잔재가 후대에 고스란히 이어졌고, 이들은 더 강력한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도무지 소통이 안되는 ‘괴물’이 됐다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문학평론가로서 이름을 날렸던 임 소장이 7년이 넘도록 문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식민 잔재 청산에 매달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몸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7일 창립 20돌을 맞았다. 18년 동안 3000여종의 문헌자료를 수집·분석하고 250만명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하는 방대한 작업 끝에 내놓은 <친일인명사전>은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염치’를 되찾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20돌을 맞는 올해엔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설립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임 소장을 지난 17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가 진행된 연구소 5층 사무실에는 앞으로 역사관에 전시될 일제 시기 사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인터뷰/석진환 24시팀장 soulfat@hani.co.kr


-스무 돌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만든 뒤 소감을 묻기에, 오디세이가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죠.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20년이었습니다. 2003년부터 부소장 1년을 했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조문기 이사장, 김봉우, 한상범 전 소장 등이 어려운 시기에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기반을 잘 닦아 놓으셨죠. 일제 식민지가 시작된 뒤 9년 만에 3·1 운동이 일어났잖아요. 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도 내고 20년을 맞은 것은, 이를테면 해방 뒤 친일파가 지배했던 한국 사회에서 3·1 만세를 부른 것과 같습니다. 3·1 운동을 바탕으로 상해임시정부도 세우고 독립운동이 활발히 진행된 것처럼, 우리 연구소가 그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지금까지가 친일 청산에 초점을 뒀다면 이젠 친일 청산이 왜 필요한지 알려야 합니다. 20주년을 맞는 올해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 합니다. 친일의 실상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국민들이 직접 보고 ‘참 염치없는 인간들이 많았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야죠. 염치없는 인간들이 과거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나오는 한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리는 장이 될 겁니다.”


-친일 청산을 못한 역사 때문에 ‘염치없는’ 사람이 생겨났다는 거군요.

“‘염치 없다’는 말은 인간의 기본을 버렸다는 뜻이지요.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 이런 인간상이 등장합니다. 지옥의 맨 아래에 있는 9지옥이 제일 죄가 무거운 이들을 벌하는 곳인데, 거기가 바로 살아서 염치없이 군 인간들을 모아놓은 곳이에요. 나라와 민족과 이웃을 배신한 사람들로, 우리의 경우 친일파들이 거기 가는 거죠. 다른 지옥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이름을 말하지만 9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이름 밝히기를 꺼립니다. 9지옥에 가는 범죄는 인간의 행위 중 가장 나쁜 범죄거든요. 일제 식민통치는 이런 염치없는 인간을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그러니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것도 단순히 인적 청산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염치없는 인간 대량생산’이라는 식민통치 이데올로기를 청산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이걸 못하면 민주주의도 허상이고 경제도 항상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염치없거나 염치 불고하고 돈 벌고 권력을 추구하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고위 공직자들 임명받으면 국회에서 청문회를 하는데, 염치 있는 사람은 임명을 받아도 거절하지만 그냥 나서는 건 염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을 장관시키려는 사람과, 저런 사람을 왜 장관 안 시키느냐고 생각하는 일부 국민들도 염치가 없기는 마찬가지고요.”

 친일사전, 후손들 소송 많았지만 정당한 작업
내용 결함은 없어…추가할 인물들 찾아 보완
“20돌은 3·1 만세 부른격, 이제 독립운동 해야죠”

 -현실에서 겪는 모순을 일제 잔재와 연결시켜 생각하기가 쉽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과거사 청산이 중요하다는 걸 현실 속에서 자꾸 느끼게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청문회에서 누가 봐도 잘못됐다고 하는데 끝까지 잘못된 게 없다고 우기는 건 가치관이 전도됐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국민 생활과 동떨어진 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죠. 세월이 흐르면 문제의식이 희미해지지 않느냐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연구소가 만들어졌던 1991년에는 다들 도와주고 싶은데 회원 가입은 어렵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각종 기관이 무얼 하려고 할 때 우리 연구소에 해당 사람의 행적을 물어옵니다. 지방에서 염치없는 사람들이 모여 친일파 기념사업을 하려고 해도 이제는 제동이 걸립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한 것이죠.”

-연구소 회원들은 주로 어떤 분들입니까?

“회원이 6000여명 정도 되는데, 시민단체 중에서는 자동이체(CMS)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매년 여름 수련회를 하는데, 밤을 꼬박 새울 만큼 진정성과 열정을 가진 분들입니다. 공직에 있는 분부터 학생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다양합니다. 회원의 주축은 80년대 민주화 세대이고, 원로급은 주로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적은 편이라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낼지 고민중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발행된 지 1년이 지났는데 발간 이후 어땠습니까?

“나오기 전부터 이런저런 법적 소송이 많았습니다만 내용과 관련해서는 법원에서 정당성이 입증됐습니다. 보수언론이 사전이 나오기 전에 미리 예상해서 비판했던, 예를 들어 누구누구는 안 들어갔을 거고, 누구는 들어갔을 거라는 게 다 틀렸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과연 신문이 그래도 되는가 싶었어요. 참 염치없죠. 해방 이후 한국사 전체에서 이만한 업적의 연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야의 인물이 다 있기 때문에 어떤 학문을 하는 사람이건 사전을 안 보면 각 분야사 연구가 안 될 겁니다. 그런데 상을 주는 사람도 없고, 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업적을 내놨으면 학문하는 사람들이 보고 상을 줘야 하는데 말이죠. 다행히 국민들은 알아줬기 때문에 판매는 예상보다 많았습니다. 기증을 포함해 4000여질 가까이 됩니다.”

-사전을 수정할 계획은 있으십니까?

“오탈자를 계속 고쳐나가고 있는데, 내용적 결함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추가로 사전에 넣어야 할 사람은 계속 조사중이구요. 내용을 수정·보완한 친일인명사전 보유판과 함께 일제협력단체 사전 4권, 식민지통치기구 사전 1권, 자료집 4권 등 ‘친일문제연구총서’ 총 17권을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완간하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지난 10여년 정부가 주도했던 과거사 청산 작업을 평가해보면 어떻습니까?

“정부의 과거사 청산 작업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청산작업이 지나치게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겁니다. 광주민주화운동, 제주4·3사건, 여순사건, 대구 10월사건도 전부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보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해자입니다. 가해자 기록이 나와야 하는 데 전혀 없습니다. 가해자가 밝혀져야 아픈 역사가 재발되는 걸 막을 수 있지요. 가해자는 얼굴 없는 국가권력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기 외에도 가해자의 인명을 정리하는 연구소가 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 정부 들어 과거사 청산 작업을 하는 위원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습니다.

“과거사 청산은 어떤 정권의 문제가 아닌데, 이를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렵게 만든 과거사 청산의 기회가 미완의 상태로 끝나버린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각종 과거사 관련 특별법에 규정된 사료관이나 재단 설립 등 기타 후속조처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과거사 청산 작업이 저지되었다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상태로는 뒷날 반드시 과거사 청산 문제가 다시 거론될 것으로 봅니다.”

 지배층, 식민지배·신자유주의 사상으로 무장
국민 두려워 않고 선악 가치관 맘대로 바꿔
“현 정부서 ‘소통’ 얘기하는 자체가 우스워져”

 -현 정부도 3년이 됐는데, 최근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염치없는 사람이 사회지배층이 되어 사람들을 염치없도록 만드는 대단히 불행한 시대입니다. 군사독재 정권조차 염치가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엔 민주화운동, 독재라는 말이 통용이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염치가 없는 사회니까 그런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민주화운동’을 말하면 ‘지금 민주주의잖아’라고 말합니다. 집단적인 벌거숭이 임금님의 시대인 거죠. 염치 있는 사람이 보기엔 발가벗었는데, 자기들은 옷을 입었다고 확신을 합니다. 착각이 아닙니다. 착각이면 부끄러워하는데, 확실히 자기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거벗었다는 사람들을 심판합니다. 가치관이 아예 전도된 것이죠.”

-현 정부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어떤 말도, 어떤 국민들 의견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무오류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는 유일신앙과도 관계가 있을 겁니다. 서구가 다른 나라 쳐들어갈 때 명분이 종교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종교관이 염치없음의 이데올로기와 밀착돼 거대한 벽을 쌓아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통’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우스워졌습니다. 아무리 바른말 해도 들어야 할 사람에게 들어가지 않으니….”

-최근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형식적인 절차 등을 들어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했는데요.

“오히려 형식이 없는 게 낫습니다. 염치없는 사람들이 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할 때 무엇이 이를 통제할 수 있습니까. 서양 같으면 기독교 윤리가 자본주의의 반인륜적인 욕망을 억제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브레이크도 없습니다. 형식적으로 국회와 선거가 있지만, 복잡해지고 교묘해진 정치공학은 권력자에게 얼마든지 자신들을 유리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치를 가진 사회지배층을 창출해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입니다. 염치를 알면 설사 잘못이 있고 실수가 있더라도 선악은 바로세울 수 있잖아요.”

-가치관의 전도는 정권 때문입니까, 아니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입니까?

“합작이죠. 지배세력이나 기업, 정치인들이 그릇된 세계화 논리와 일본의 식민지배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를 합쳐 놓았어요. 그러니 얼마나 힘이 세겠어요. 모든 게 다 전도됩니다. 역사, 가치관, 교육…. 요즘 정치인들이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하잖아요. 가치가 전도된 겁니다. 못사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자기들 편한 논리대로 가치관을 바꿔놓으려고만 합니다.”

-현 정부가 교만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도무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얼마든지 자기들이 유리하게끔 만들 수 있다고 여기니, 아무리 비판을 받아도 소통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겁니다. 이런 정권도 참 드물 겁니다. 가치관을 바꿔버리는 데 너무나 당당해요. 배우지 않은 사람도 알 수 있는 선악의 판단을 배운 사람들이 안 하고, 못합니다. 오류를 저지르고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기교, 염치없는 행위도 찬양받는 재능, 대단한 권력의 마술이죠. 이들이 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현대문명을 통해 이미지 조작이 가능하다 보기 때문이에요. 인터넷부터 영상매체, 인쇄매체, 교육기관 다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나는 야당들이 자기네끼리 다투는 걸 보면 울화가 치밉니다. ‘나는 대통령 안 하고 다른 사람 대통령 되도록 돕겠다’고 힘을 모아도 될까 말까 한데….

정리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 임헌영과 문학


“문학이 내 고향인데 지금은 하숙집 신세
















“제가 농담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요. 문학이 내 ‘고향’이고, 친일 청산 등 사회문제는 ‘하숙집’이라고요. 지금은 하숙집이 고향집처럼 됐지만요.”

임헌영 소장은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뒤 <월간독서>, <한길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문예지 주간을 지내 ‘문인’이다. 1974년에는 유신 반대 투쟁에 나섰다가 옥고를 치렀다. 그는 올해부터는 자신의 본업인 문학으로 돌아가 그동안 써놓은 원고들을 정리해 책도 내고 비평활동도 재개할 생각이라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펴내면서 중요한 고비는 넘겼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학평론가로서 그는 최근 우리 문단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기도 했다. “최근 작가들은 어떻게 보면 시대를 잊어버리고 그야말로 문학을 위한 문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현학적인 것 같기도 하고. 신춘문예 소설을 보면 문단에서는 좋다고 하는데 일반 독자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독자들이 읽겠습니까?” 임 소장은 작가라면 모름지기 동시대인의 아픔을 좀더 쓰다듬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2~3년 동안 지난 시대보다 아픈 사람이 훨씬 더 늘어났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시대엔 시인과 소설가들이 가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을 텐데, 그게 없어요. 자칫 문학인들만의 문학으로 사람들에게 여겨지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 안타깝습니다.”

그는 “문학도 신자유주의 경제와 같은 논리로 그 나름의 상품유통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문학에서도 선악의 기준이 애매해져 버렸다”고 탄식했다.


 


<한겨레> , 201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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