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성지인 서울 종로 탑골공원 주변에 무허가 점집이 난립하고 있다. 관할구청은 이들을 노점상으로 보고 전기 사용을 허가하는 등 점집 운영을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
탑골공원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명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의 발원지로 평가받는 곳이다.
그러나 27일 찾아간 탑골공원에서 인사동 방향 거리 주변엔 토정비결, 사주팔자, 운세 등을 보는 포장마차형 점집 10여곳이 50m 정도 늘어서 빗속에서도 성업 중이었다. 날씨가 좋았던 지난 25일에는 탑골공원 담장을 따라 자리 잡은 점집 17곳이 손님에게 점을 봐주고 있었다. 특히 점집 12곳은 일정한 규격과 모양의 천막을 사용하며 1∼12번까지 일련번호도 붙여 놓았다. 지난해 종로구가 ‘걷고 싶은 종로거리 만들기 사업’을 실시하며 노점상을 단속한 이후 점집들이 자체적으로 붙인 번호다.
젊은 연인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손님이 점집을 찾았다. 여자친구와 점을 본 대학생 김모(23)씨는 “탑골공원 주변에 올 때마다 재미 삼아 점을 본다”면서 “공원 근처에 나란히 줄지어 있어 허가받은 곳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점집 주인들은 간이 책상 위에 전기난로를 켜 놓고 형광등까지 사용했다. 이들은 종로2가 대로변에 설치된 전선에 지름 3㎝ 정도의 간이 배전선을 연결해 전기를 끌어 썼다. 비에 젖은 채로 바닥에 깔린 전선은 행인들이 밟고 지나가 안전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있었다. 전기는 2008년 종로 노점상연합회의 요구로 구가 마련해 준 것이다. 노점상들이 하나 둘 빠진 자리에 파고든 점집이 전선까지 물려받았다.
종로구는 팔짱만 낀 채 단속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종로구 관계자는 “노상에서 점집을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전기료는 점술가들이 각자 사용한 만큼 지불하고 있다”면서 “거리에 난립됐던 점집을 탑골공원 주변으로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탑골공원 주변 점집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아 보였다. 직장인 박모(55)씨는 “점집이 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가이드인 서모(38·여)씨는 “탑골공원은 외국인이 즐겨 찾는 관광 코스”라며 “이런 곳에 점집이 늘어서 있어 점집을 우리의 전통문화로 오해하는 외국 관광객이 많다”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은 “탑골공원은 민족대표 33명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의미 있는 곳이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