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를 잊어선 안된다. 그러나 지금은 비탄에 빠진 이웃을 위로할 때다.’
일제 식민통치의 만행을 비판하고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해온 시민사회단체들도 지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6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릴 예정이던 ‘수요시위’를 일본의 도호쿠 강진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추모의 자리로 대체하기로 했다. 1992년 수요시위가 시작된 이래 집회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95년 일본의 한신 대지진 이후 16년 만이다. 수요시위는 설·추석 연휴는 물론 경찰이 서울 시내 모든 시위를 금지한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주간에도 빠짐없이 열렸다.
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14일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파렴치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그 나라 국민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데 그(대사관)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며 “이번 수요일에는 모이긴 하되 가능한 한 많은 생명이 생존하길 기원하는 묵념을 하고 마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우린 수요시위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뿐 아니라 이라크 전쟁 반대와 4대강 사업 반대 등을 외쳐왔다”며 “궁극적으로 평화와 생명존중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많은 상처를 갖고 계시지만, 생명이 귀하다는 가치는 놓지 않는다. 오늘 행사차 만나뵌 할머니들도 하나같이 일본 사람들 걱정을 하셨다”고 전했다. 그가 시위를 위로·추모 모임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하자 할머니들은 “그래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16일 열리는 집회는 일본 미야기현에 살고 있는 송신도 할머니(89)가 지진 피해를 입지 않았기를 바라는 염원도 담겨 있다. 위안부 피해자인 송 할머니는 93년부터 10년 동안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법정투쟁을 벌였다. 윤 대표는 “통신이 끊기고 할머니가 사는 마을에 구조대가 접근을 못하고 있어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독도수호대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18개 단체도 14일 공동성명을 내고 “국경과 민족을 초월해 이 참사를 동아시아의 아픔으로 인식하고 모두가 나서야 할 때”라며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시민단체들 또한 일본의 모든 분들이 이 엄청난 참사를 딛고 일어서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등 친일 잔재 청산작업을 해온 민족문제연구소도 이날 논평을 통해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일본 사회에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하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며 “동아시아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일본 사회가 용기를 가지고 비극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성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도 13일 “일본이 국가적 재앙을 조기에 수습하고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길 바란다”는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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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피해자 단체들도 “힘내라, 일본”
By 민족문제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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