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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퇴임하는 인권운동가 서승(연구소 지도위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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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하는 서승 교수 (서울=연합뉴스) 동아시아의 대표적 평화ㆍ인권운동가인 서승(66)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오는 26일 서울에서 열리는 정년퇴임 기념식과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한국, 대만, 오키나와를 돌아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려고 한국을 찾았다. 2011.03.24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동아시아의 대표적 평화ㆍ인권운동가인 서승(66)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얼굴과 손, 온몸에 화상 자국이 있다.

서울대 유학 중이던 1971년. 그해 대선을 앞두고 터진 ‘재일 한국인 유학생 간첩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19년 옥살이를 했던 인생 흔적이다.

그는 고문을 이기지 못해 없는 이야기를 할까 두려워 난로에 있는 기름을 끼얹고 분신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스무살을 넘겨 한국어를 배웠다. 뒤늦게 익힌 그의 한국어는 유창했지만 일본어 억양과 경상도 사투리가 녹아 있었다. 경상도에서 옥살이하며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배운 탓이다.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한국, 대만, 오키나와를 돌아서’ 출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24일 만났다.

그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자리는 지난 2월 일본 교토와 오키나와에서 열린데 이어 국내서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26일 남산의 옛 안기부 청사인 서울유스호스텔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서 교수는 “나 같은 사람이 살아남아 교수가 되고 정년퇴임을 맞는 게 드문 일이라서 그런지 많이들 축하해 주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번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대학생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는 기사를 봤다. 대학생 연합학술 동아리 `자본주의 연구회’관련 기사였다.

꼭 40년 전 동생 준식씨와 함께 간첩으로 몰려 보안사령부에 체포됐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서 교수는 “사상과 표현, 결사의 자유가 인권의 기본인데 그런 이유로 학생들이 탄압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인권’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는 요즘이지만 서 교수는 “인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인권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권을 ‘국가가 가진 폭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정의했다.

다른 법은 개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규정하고 있지만 헌법은 유일하게 국가에 대한 규제를 담고 있으며,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인권 보장과 국가권력의 제한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겪은 차별과 한국 유학 시절 군부독재 정권 아래서 겪은 고초로 그의 60여년 인생은 국가의 폭력에 맞서는 ‘인권’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됐다.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서 교수가 대학에서 비교인권법을 가르친 것도 그가 체험한 인권을 중심으로 강의해 달라는 대학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현실에서도 국가의 폭력은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과거와 같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폭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많은 사람이 일상적인 국가의 폭력을 내면화하고 억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 동북지역 대지진의 여파가 남은 상황에서 한국에 온 서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돕자고 나선 대대적인 운동이 놀랍고 이상하다고 했다.

그는 “천재(天災)이고 애도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북한 등 세계 곳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는 인재(人災)에는 이런 관심을 쏟은 적이 없다”며 열등감의 다른 면이 아니겠느냐고 진단했다.

또 “일본은 관동 대지진 때 6천~7천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사실을 인정한 적도, 사과도 한 적도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이 반성했으면 좋겠지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고 그것이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다.

평생을 국가의 폭력에 맞서온 서 교수는 “일본이 동아시아를 침략 전쟁으로 몰아넣고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일본과 한국의 요즘 젊은이들이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책임 방기”라며 전후 세대의 과거사 바로잡기를 당부했다.

eoyy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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