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3월 민족문제연구소 산하에서 발족한 임종국기념사업회는 ‘임종국상’을 제정했다. 이 일을 떠맡은 이는 장병화 회장이었다. 그러면 그는 누구인가? 그는 독립투사의 아들로 어릴 때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 자랐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집도 없이 떠돌다가 가락전자회사를 일으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후원자가 되었다. 장 회장은, 친일 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을 내걸고 임종국상을 제정하고서 상금과 모든 부대 경비를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심사위원으로는 이만열·이이화·조정래·주섭일·함세웅(뒤에 김삼웅 합류) 등이 맡았다. 이만한 인사들이 모인 심사위원이라면 객관성을 인정할 만할 것이다. 대상은 학술과 사회운동 부문으로 나누었는데 1차 심사에서 3배수씩 올라오면 최종 대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수상자를 결정했다. 1차나 2차 심사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려 신중을 기했다. 학술상은 단순할지 모르지만 친일청산을 다룬 저술을 골랐고, 사회운동 부문은 기자가 쓴 기사나 방송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등 대상 범위가 넓었다.
2010년 수상자를 보자. 학술부문 수상작은 문준영 교수(부산대)의 <법원과 검찰의 탄생>이었는데, 한국 사법의 관료적 폐해와 비민주성의 근원이 일제 식민지 시기에 태동했다는 점을 밝히고 오늘날의 사법 개혁과 법조 민주화 문제를 제기했다.
사회운동 부문 수상자로는 일본인 야노 히데키를 선정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전후청산운동을 벌여왔으며 이어 한국인 희생자의 위령사업과 보상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해왔다. 그리고 한-일 공동으로 강제병합 100년을 돌아보는 여러 행사를 주관하는 일본 쪽 사무국장을 맡아서 ‘야스쿠니신사 캠페인’을 벌이면서 열성으로 일을 이끌어갔다. 현재 그는 공무원 신분이면서 시간을 쪼개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가 도쿄에 있는 한국기독교청년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주선하고 승용차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그를 주저없이 수상 대상자로 내세웠다. 임종국상은 현재 4회를 치렀는데 장병화 회장은 경영의 여러 난관과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변함없이 추진하고 있다. 장 회장은 기업의 사회환원이란 뜻에서 후계 회장을 공모하기도 했는데 민주사회 또는 민족사 정립에 하나의 모범이 될 것이다.
또 하나 친일문제의 실천적 해결을 맡은 기구도 있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발족되어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을 벌였는데, 해방 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의 강압으로 해산된 지 57년 만의 일이었다. 김창국 위원장을 비롯해 이준식 상임위원, 조세열·하원호·이윤갑·이지원 위원, 장완익 사무국장이 이 기구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송병준·민영휘·이완용·이해승 등 친일파 재산을 조사하고 이를 환수하는 결정을 내렸다. 4년의 조사 끝에 친일의 대가로 취득한 1000억원(공시지가 기준) 정도를 국가에 귀속시켰다. 김 위원장은, 모든 과거사 관련 단체 가운데 우리 위원회만이 국가재정에 도움을 주었다고 농담 삼아 말했다.
내가 속한 자문위원회의 구실은 단순했지만 마지막 회의 때 중요한 제의를 했다. 자문위원들은 이 특별법의 규정에 따라, 재산을 환수한 뒤 그 재산으로 재단을 설립해 독립지사의 선양사업과 유자녀 장학금에 쓰게 해달라고 정부와 보훈처에 건의하는 형식을 빌려 연기명으로 냈다. 나는 ‘모처럼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대접 한번 받겠네’라고 여겨 흐뭇했다. 이 마무리 사업은 법무부로 이관되었다. 그런데 1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정부는 미적거리고만 있다. 친일파 청산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적반하장으로, 친일파 후손들은 너도나도 환수 취소 소송을 내고 있다.(현재 84건) 그중 가장 재산 규모가 큰 이해승 관련 사건은 대법원에서 후손에게 패했다. 대법원은 ‘이해승이 작위를 어쩔 수 없이 받았다’는 후손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 주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이해승이 일본 왕에게서 작위를 받고 선산에서 작위 봉고식까지 올린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전공자 증언도 제대로듣지않았고 조사위원회의 많은 법률가들이 오랜 기간 조사한 결과도 인정하지 않는 상식 이하의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줄초상’이 날 판이다. ‘도루묵 되고 있다’는 말이 들리는가? 대법관들이여, 제발 공부 좀 하시라!
<한겨레>, 2011.3.29
|
역사학자 이이화 |
※관련기사: ‘강제병합 100년’ 한·일 함께 과거청산 추진위 발족 (한겨레, 3.29)
- 36754893.jpg (31.69 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