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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MBC ‘친일 이원수-장지연’ 보도 외면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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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월 사이 창원MBC는 이원수와 장지연의 친일 관련 보도를 외면했다. 경남민언련이 3월 14일부터 4월 14일 사이 창원KBS·창원MBC의 이원수·장지연 친일 관련 보도를 모니터한 자료를 보면 비교가 된다.창원KBS는 이원수에 대해 총 8건 보도했다. ▲창원시, 이원수 기념사업 여론수렴 시동(3월 25일), ▲창원시, 이원수 기념사업 강행(31일), ▲이원수 기념사업 강행(4월 1일), ▲고향의 봄 잔치 강행, 시민단체 반발(2일), ▲창원시, 이원수 기념사업’보류'(4일), ▲이원수 기념사업 여론조사 반대(6일), ▲문예단체는 찬성(7일), ▲창원시 예산지원 ‘이원수 기념사업’ 중단(12일).


 장지연에 대해 창원KBS는 ▲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 등 서훈 취소, ▲독립유공자 홀대, ▲친일행적 서훈 취소 등 총 3건을 보도했다. 그런데 창원MBS는 이원수에 대해 기념사업회가 창원시로부터 받은 보조금은 반납하겠다고 밝힌 그날 ▲”보조금 반납하겠다”는 제목의 기사만 보도했다. 창원MBC는 장지연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창원MBC, 자사 간부 구하기 아니냐”


 경남민언련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언론이 보도하고 분석하지는 못할지라도 논란이 되는 문제를 성실히 취재하고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존재이유이자 맡겨진 임무이기도 하다”며 “이원수 기념사업과 관련하여 창원시를 비롯한 지역사회는 한 달 이상 논란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창원MBC가 이원수·장지연 친일 문제의 보도를 외면한 것에 대해, 경남민언련은 “사건의 보도 여부에 대한 판단은 방송사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하지만, 창원MBC가 지역의 주요한 현안에 대해 이렇게 눈과 입을 닫은데 대해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남민언련은 “대다수의 시민들은 창원MBC의 국장급 간부가 이원수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하고 의심을 하고 있다”며 “창원MBC가 이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 견지해 온 일련의 벙어리행각과 축소보도가, 작가 이원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사 간부 구하기’가 아닌지”라고 물었다.


 경남민언련은 “갑자기, 왜 창원MBC는 친일 보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는가?”라며 “이제라도 창원MBC는 이원수와 장지연의 친일 문제 보도 회피에 대해 도민에게 해명하고, 앞으로 끊임없이 제기될 친일의 논란에 대해 민족 정통성 확보와 역사 바로 세우기의 분명한 입장에 서서 보도할 것”을 요구했다.


 이원수 친일은?… 장지연 친일은?


 창원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원수는 올해 탄생 100주년인데,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와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는 창원시로부터 2억 원의 재정지원을 받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벌여 왔다. 창원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대책위를 만들어 ‘기념사업 중단’과 ‘재정지원 회수’를 요구했다.


그러다가 기념사업회는 지난 12일 아직 집행하지 않은 보조금(7000만 원)을 반납했다. 이원수는 1942년 “낙하산-방공비행대회에서”와 “지원병을 보내며” 등 친일시를 발표했고,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했다.


 장지연은 독립유공자 서훈이 취소됐다. 정부는 지난 5일 장지연을 포함해 19명에 대한 ‘영예 수여 취소안’을 의결했다. 장지연은 을사늑약 체결이 무효라고 주장했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썼고,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으며, 국가보훈처는 2004년 11월 그를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장지연은 1914년~1918년 사이 친일 경향의 시와 산문을 발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그이 이름을 올렸다. 그는 1909년 경남 진주에서 창간된 <경남일보>의 주필을 지냈고, 그의 무덤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에 있다. <오마이뉴스>.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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