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항일 언론인을 잃는 것은 인정하기 힘든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나 거짓 영웅을 물려준다면 이 또한 역사왜곡이 될 것이다 (是日也反省大哭)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지난 4월5일 열린 국무회의는 위암 장지연을 비롯한 19인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취소를 의결했다. 친일의 행적이 분명한 일부 인물들이 애국지사로 예우받았던 지금까지의 현실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제라도 전도된 가치 기준을 바로 세우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1996년 김영삼 정부 때도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서훈을 박탈한 사례가 있었으나, 이번과 같은 대대적인 조처는 전례가 없었다. 정부가 예민한 친일 문제와 관련하여 결단을 내린 것은 관련 부처인 국가보훈처의 서훈 기준이 매우 엄격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보훈처는 설령 독립운동의 공적이 있더라도 흠결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서훈 대상에서 일단 제외 또는 보류하는 신중한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자들의 친일 전력이 다수 밝혀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고, 전문가로 구성된 서훈취소심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은 마당에, 형평성의 관점에서라도 서훈 취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항일을 하다 친일로 돌아선 것을 변절 또는 훼절이라 한다. 고금을 떠나 어떤 상황논리로도 전향이 존중받는 일은 없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어찌 대의를 저버린 인물들을 추앙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상식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당연한 조처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한결같이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항일 논설로 널리 알려진 위암에 대한 서훈 취소를 두고 <조선일보>는 즉각 ‘장지연 선생이 지하에서도 시일야방성대곡할 듯…’이라는 자극적인 제목까지 뽑으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다른 보수언론들도 일제히 과격한 논조로 정부 비난에 가세했다.
그중 압권은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칼럼이었다. 그는 “보훈처의 서훈심사위가 어느 민간단체(민족문제연구소-필자 주)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훈 박탈을 의결하고 국무회의가 거수기처럼 이를 받아들인 것을 보면 이 정부는 한마디로 멍청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아니면 좌파적”이라고 원색적으로 공격하며 예의 색깔론까지 꺼내들었다. 나아가 “장지연 선생의 서훈 박탈은 이 땅에 보수정치가 마감되고 있음을 예고”한다며 “‘멍청한 정부’ 탓에 개인적으로는 가장 존경하는 언론인 대선배의 명예가 더럽혀졌지만 나는 그래도 장지연 상을 자랑으로 간직”하겠다고 강변했다. 그가 장지연 상을 간직하든 버리든 그것은 남이 참견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대 보수일간지의 고문인 거물 언론인이, 제대로 사실관계를 짚어보지도 않고 친일 문제에 대한 천박한 선입견만으로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늘어놓는 현실이야말로 ‘보수의 위기’이자 ‘언론의 위기’라 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과거 박정희 정부 시기 독립유공자 서훈 과정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학계에서 공지의 사실이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친일 인사가 심사위원이 되거나 훈장을 받는 웃지 못할 사례까지 있었다. 참으로 애국지사라는 최고의 영예를 희화화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자료의 축적이나 연구·분석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부족했던 점도 정밀한 검증을 어렵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장지연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연구가 1910년 이전의 계몽운동기만을 대상으로 하면서 이후 행적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 문제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매일신보> 기고를 비롯한 장지연의 숱한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이미 사법부의 판단까지 내려졌다. 후손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친일인명사전>의 객관성과 공공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보수언론들이 전거까지 일일이 제시된 명백한 친일행적을 애써 외면하고, 혼신을 다해 ‘위암을 위한 변명’에 나서는 이유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위암의 명성에 기대어 위선의 역사를 지키고 싶은 것인가. 속내를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친일의 원죄를 진 사주를 노골적으로 옹호함이 어떨까 한다.
어릴 때부터 배웠고 존경해온 최고의 항일 언론인을 잃는다는 것은 인정하기 힘든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나 사실을 은폐하고 거짓 영웅을 미래 세대에 물려준다면 이 또한 역사 왜곡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용기 있게 부끄러운 역사를 대면하고 진실을 기록해야만 한다. 이야말로 풍찬노숙하며 최후까지 조국 독립을 염원하다 순국한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위암이 초심을 잃고 일제에 협력한 까닭은 일제지배의 영속과 독립의 무망함을 믿었기 때문이리라. 혼백이라도 있다면 오늘 삭훈을 맞아 가슴을 치며 ‘시일야반성대곡’(是日也反省大哭)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위암과 마찬가지로 적잖은 수의 항일운동가가 만절을 지키지 못하고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찬양해, 나라와 민족 앞에 더 큰 죄를 짓고 말았다. ‘행백리자반구십리’(行百里者半九十里)라는 말이 있다. 백리를 가려는 자는 구십리를 반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 또한 일제 말 지사들의 훼절을 두고 “백리를 갈 양이면 구십리가 반이라네/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들은 그르도다/ 뉘라서 열나흘달을 온달이라 하더뇨”라고 일침을 놓았다. 참으로 두고두고 되새겨 볼 말이다.
<2011-04-29> 한겨레
☞기사원문: [왜냐면] 시일야반성(反省)대곡 / 조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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