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사 호 쓸수 없어” vs “명예훼손…소송검토”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항일운동가 단체들이 고려대 사거리~보문역 1.2㎞ 구간 길인 인촌로 명칭 폐지 운동에 나서면서 고려대와 갈등을 빚고 있다.
20일 성북구 등에 따르면 운암 김성숙선생 기념사업회 등 항일운동가 단체들은 지난 11일 ‘일본에 충성한 김성수 인촌로 지정 취소하라’ 등 규탄 문구가 적힌 현수막 24장을 고려대와 보문역 주변 등 인촌로 일대에 걸었다.
이들 단체는 앞서 개운사 진입로인 ‘개운사길’을 성북구가 도로명주소법 시행 과정에서 ‘인촌길’로 바꾸자 “항일 불교운동의 성지에 친일 인사의 호를 딴 진입로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해 명칭 환원 방침을 이끌어냈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대를 가로지르는 큰길인 인촌로까지 이름을 바꿔야 한다며 행정안전부에 민원을 냈다. 행안부는 인촌로 관리 주체가 성북구라며 사안을 성북구에 넘겼다.
그간 ‘인촌로’ 문제에 아무 반응이 없던 고려대는 현수막이 걸리고서부터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 17일 16개 항일운동가 단체 앞으로 공문을 보내 “해당 현수막은 본교 설립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19일 오후 6시까지 현수막을 자진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현수막 가운데 `친일파 김성수가 고려대 설립자인지 밝히라’ 등 문구는 학교 명예를 훼손할 소지가 있다. 철거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낼지 등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인촌로 명칭 변경 문제는 성북구 소관이므로 학교 측에서 이에 대해 할 말은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은 성북구와 동대문구에도 현수막 철거 협조 요청을 했다. 성북구는 고려대로부터 철거 요청이 거듭 들어오자 항일단체 측의 양해를 구하고서 20일 오전 현수막 24장을 모두 걷어냈다. 앞서 지난 14일에는 인촌로 일대에 설치된 현수막이 밤새 사라져 항일단체에서 현수막을 새로 다는 일이 벌어졌다. 신고를 받은 성북경찰서는 폐쇄회로(CC)TV 영상에 잡힌 용의자 3명의 신원을 파악 중이다.
항일단체들은 인촌 김성수가 친일인사로 규정된 데다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1905년 설립한 인물이 구한말 정치가인 이용익 선생이라는 점을 들어 인촌로 명칭에 역사적 정당성과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인촌기념사업회는 “김성수 선생은 학도병 행사에서 총독부가 써준 대로 원고를 읽었고 각종 기고문도 대필이거나 강압에 못 이겨 이름을 도용당한 것 뿐”이라며 친일행위자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내 재판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