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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하려면 형사처벌 결정권을 매개로 유도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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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은 한국 사회는 그만큼 청산되어야 할 어두운 과거도 많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15개 이상의 과거사 관련 특별법이 제정돼 청산 작업에 나섰고, 강제동원 피해자와 민주화 유공자 관련 위원회를 제외하고 모든 위원회가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들여서 추진한 국가기구의 과거사 청산 작업이 실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뒀는지는 미지수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일 “ ‘전환기의 정의’와 한국민주주의 : ‘과거사청산’ 재평가”라는 제목으로 그간에 진행됐던 과거사 청산 작업의 성과와 한계를 조망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발표자들은 먼저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의 태생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서울대 정근식 교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설립 당시부터 “ ‘진실정의’ 모델이 아니라 ‘진실화해모델’을 추구했고, 또한 책임의 문제를 묻는 ‘과거사 청산’이 아니라 걸림돌을 제거하자는 ‘과거사 정리’의 정신에 입각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러한 모델도 일정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진실화해 모델이 성공하려면 화해의 당사자가 확정돼야 하고, 가해자의 고백이나 사죄와 함께 피해자의 용서가 이뤄져야” 하지만, “진실화해위의 화해에 대한 입장은 모호했고 따라서 매우 소극적이거나 파편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건국대 이재승 교수 또한 의문사위·진실화해위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근본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화해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형사처벌 여부에 관한 결정권, 배상프로그램을 매개로 해서 고백과 화해를 유도할 수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관련자의 임의적 진술에 의존하게 되는 조사가 진실을 발견하게 할 것이라는 목표가 대담했던 것”이라며 “검찰·경찰·국정원·국방부에서 사건의 은폐에 관여한 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사면조치를 매개로 진실을 규명하도록 해야 했다”고 밝혔다.


과거사 청산 작업 자체에 몰두하면서 정작 진실규명된 과거사들을 널리 알리고 사회화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정근식 교수는 “조사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쟁점화를 통한 사회적 학습효과가 낮게 되었다”며 “진상규명 프로젝트의 목적이 법적·제도적 안정에 있었는가, 아니면 역사적 교훈과 사회통합에 있었는가를 묻게 만든다”고 말했다. 곧 과거사 청산이 역사적 ‘이행기’(혹은 전환기)의 ‘정의’를 세우는 데 기여해야 하지만 과거의 유물로 박제화돼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이영재 연구교수 또한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해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자체가 계속된 ‘현재적 투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양대 윤해동 교수는 위원회 활동이 종료됐지만 정부 차원의 후속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관련 위원회의 분석을 맡은 윤 교수는 “이제 친일협력자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출발선 위에 서게 되었으니 학계와 시민사회의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지원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완익 변호사 또한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작업을 평가하면서 “사할린동포 문제나 원폭피해자 문제의 경우는 피해자들을 위한 영구귀국 및 정착지원이나 피해자 2세에 대한 지원 등 별도의 추가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개인 피해를 넘어 집단적·대규모의 강제동원 피해 조사를 하지 못한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의의를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다. 아주대 이헌환 교수는 “친일 재산의 국고 환수작업은 철저히 법률의 규정에 따라 행해졌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엄격한 법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한 체제가 다른 체제로 전환하는 시기에는 그에 맞는 ‘정의’를 세우는 일이 긴요하다”며 “과거사 청산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달성해낸 성과이자 민주화를 더욱 확장해 가는 과제”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황경상 기자


▶화해하려면 형사처벌 결정권을 매개로 유도했어야(경향신문, 1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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