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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청산과 동북아 평화 문제를 위한 특별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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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전 미국의 일본 나가사키·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은 8월15일 항복했고, 그날이 우리 독립일로 정해졌다. 지금도 여전한 미국의 동북아 패권에 더해 중국이 부상하고 한·일의 각축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66번째 8·15를 맞았다. 경향신문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8·15의 동아시아적 의미, 과거 청산과 동북아 평화 문제를 짚는 특집좌담을 열었다. 좌담에는 강만길 전 상지대 총장(78),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70), 서승  일본 리쓰메이칸대 특임교수(66)가 참여했다. 좌담은 12일 오후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김학순 전 경향신문 대기자(58)의 사회로 진행됐다.

▲ 임헌영 “한국 내 과거사 청산 없인 망발 계속될 것”
▲ 서승 “종전 깨끗이 마무리 못해 한·일문제 발생”

■ 8·15의 의미


김학순 = 66번째 맞는 8·15다. 현대사에서 8·15의 의미는 무엇인가.

서승 = 8·15를 기념하는 나라는 남북한, 일본 세 나라다. 우리는 ‘광복절’, 북한은 ‘해방절’, 일본은 ‘종전일’로 부른다. 왜 많은 날들 중 8월15일인가. 일본의 포츠담선언 수락이 8월14일, 일본군이 전투정지 명령을 내린 날은 8월16일, 미 미주리호 함상에서 일본이 항복도장을 찍은 게 9월2일이다. 왜 8·15일까 생각해보니, 세계에서 ‘천황’의 8월15일 옥음방송(玉音放送)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조선인, 일본인밖에 없었다는 사정이 있는 것 같다.


▲ 강만길 전 상지대 총장



강만길 = 우리 민중이 일본의 패전을 처음 알게 된 게 8월15일이다. 일본이 망했으니 해방된 것이다. 8·15 해방이란 민족사적으로 보면 국민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이다. 근대로 오면서 각 민족사회가 국민국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불행히 일제 지배 35년이 끝난 후 만들 수 있게 됐다.

임헌영 = 8·15로 우리 의사에 따라 나라를 형성할 기회를 얻었는데 나라의 절반은 대륙세력에, 절반은 해양세력에 돌아가버린 불행한 외적 요인에 직면했다.

김학순 = 종전과 분단 과정을 봐도 8·15를 일국사로만 파악하기 어렵다. 8·15를 동아시아나 세계사적 시각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나.

서승 = 8·15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온 지역 헤게모니가 일단 좌절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돼 일본이 지배했던 지역에서 탈식민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불행이다. 지금 한·일관계에서 청산되지 않은 문제의 상당수는 일본의 패전을 깨끗이 마무리짓지 못하고 종전한 데서 비롯됐다


강만길 = 일본이 강제 지배하지 않았다면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군과 미군이 우리 땅을 점령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서 전승국 미·소가 동아시아에서 세력균형을 이루기 위해 분할한 것이다. 38선은 영구 경계선이 아니었다. 38선이 생겨도 남북 공통의 임시정부만 성립되면 그 선이 무의미해지는 거였는데, 그걸 해내지 못했다.

임헌영 = 38선이 분단경계선이 아니었는데, 점점 분할선으로 굳어진 것은 우리 민족에게 책임이 있다. 우리 내부에 방해세력이 있었으니 곧 친일세력이다. 자기들이 살기 위해 민족의 숙원을 깨뜨린 것이다.

서승 = 분단국가 성립을 기념해야 된다는 논의는 식민 지배와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한 희한한 현실을 보여준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패전 후 연합군에 의해 4분할됐는데, 왜 일본은 분할되지 않고 도리어 조선이 분할됐나.

강만길 = 소련군이 참전해 만주, 북한 땅에 내려올 때 미국이 군사력으로 막을 형편이 못됐다. 미국의 전방부대가 오키나와에 있었는데, 이미 일본과의 싸움에서 엄청난 손실을 당했다. 병력을 보충해 제주도 상륙을 하려면 11월에나 가능했다. 그때까지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으면 한반도 전체와 홋카이도 일부까지 소련 땅이 될 상황이었다. 그걸 막기 위해 미국이 38선을 제의했다. 일본을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이 분할하지 않고 미국이 단독 점령한 것은 미국이 태평양을 미국의 호수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헌영 = 2차대전 후 아시아에서 식민지가 거의 사라졌지만 우리 민족사는 인연이 없어도 될 먼 나라 미국과 깊은 촌수를 맺게 했다.

서승 = 메이지유신 이후 만들어진 일본의 야만 시스템이 8·15로 붕괴됐지만 미국 헤게모니와 접목되며 새로운 형태로 살아남았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역사청산, 역사인식의 문제로 남아 있다.

■ 한국과 일본의 과거청산

김학순 = 일본은 왜 아직 전후 청산이 되지 않았나.

서승 = 일본이 패전할 때 무조건 항복이라 했지만 조건이 있었다. 국체 보존, 즉 천황제를 남긴다는 것이었다. 이것에 미국이 야합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게 됐으니 과거청산을 할 방법이 없다. 일본의 패전과 냉전체제 유지 방식을 보면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을 이용하면서 아시아를 적대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일본은 냉전 동안 동아시아에 등 돌리고 미국 얼굴만 보고 살았다


 


임헌영 = 한국에서 본 일본은 지구상에서 보기 드문 우익국가다. 마치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나라처럼.

서승 =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은 지극히 평화롭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평화헌법 자체가 그렇듯, 일본이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일본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일본 사이에 괴리가 있다. 일본은 미·일 안보조약 안에서 반공의 최전선에서 온갖 역할을 다했고, 독재국가를 가장 열심히 지원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아베 신조 등 일본 내 핵무장론자들이 있고 국회의원 100명이 찬성할 거다. 그러면 미국이 일본 핵무장을 허용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레이건 행정부 국무장관 조지 슐츠는 일본이 핵무장하는 순간 도쿄를 핵미사일로 때리겠다고 했다. 다만 요즘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하며 자위대가 움직일 범위가 좀 커졌고, 북한을 구실로 그 범위를 확장하려 한다.

김학순 = 한국에서도 친일 청산은커녕 친일 부활의 노래가 들려온다.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 백선엽을 6·25 영웅으로 묘사하고 국립묘지에 묻겠다고 한다.

강만길 = 남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일을 겪고 난 뒤 과거청산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문화민족 여부가 결정된다. 첫 (이승만)정권이 무너지고, 두번째 (장면)정권이 시민 힘으로 성립됐지만 못했다. 세번째 (박정희)정권은 쿠데타로 했는데 친일정권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의회 과반이 군사독재 세력이어서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 탄핵 파동 덕분에 의회권력까지 잡아서 비로소 그 일을 시작했다.

임헌영 =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한국 내 과거사가 청산돼야 한다. 우리 자신이 먼저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일본의 독도, 교과서, 정신대 망발은 계속된다. 친일세력이 8·15 이후 주축이 돼 살길을 찾다보니 분단이 됐다. 그 와중에 권력을 유지해오다 민주정부의 위기를 넘기고 최근 다시 친일파를 건국의 영웅으로 추대하려고 한다.



▲임헌영 연구소 소장



서승 = 친일인명사전 출판 계기로 조갑제씨가 친일파가 일제시대에 군대, 경찰, 기업에서 노하우를 배우지 않았으면 어찌 북한 공산주의자와 싸워서 대한민국을 만들었겠느냐며 친일파는 애국자라고 했던 발언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 내에서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해도 되는 분위기인지 궁금하다.

임헌영 = 그런 말을 하면 국민들이 믿어줄 것이라 보는 모양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그런 말을 하면 국민들이 어떤 지도자를 선택하는지 한 번 지켜본 뒤에 다시 얘기하자.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한국 내에서 친일파 비판 목소리는 70%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 동아시아 공동체

강만길 = 최근 일본에도 계속 미국에 의존해 살아야 되느냐는 인식이 생겨나는 것 같다. 이는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로도 이어진다.


서승 = 일본의 저명한 보수 오피니언 리더 데라시마 지쓰로는 2012년 오사카에 아시아태평양 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그는 미쓰이 상사의 미국 지사장 출신 비즈니스맨인데, 미국과만 살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와 연계해야 일본의 전망이 있다는 취지다.



▲서승 리츠메이칸 대학 특임교수



강만길 = 3차대전이 일어나리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인류사회가 가진 평화 의지 덕분이 아닌가 한다. 전쟁을 가장 많이 겪은 유럽에서 지역공동체 논의가 일어났고 동남아와 남미에서도 잇달았다. 세계사가 민족국가 중심으로 싸우던 단계를 넘어 다른 방향을 찾기 시작한 거다. 그런데 동북아 3국만 그런 논의가 미약하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로 남길 원하는 미국의 영향력을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


 


김학순 = 동아시아에서 한·일 역사분쟁, 중·일 영토분쟁, 남북분단이 계속되는데 공동체가 가능할까.

서승 = 영토 문제로 다투는 건 백해무익이다. 현상유지하면 된다. 한국에서 독도 문제로 흥분해서 독도가 커진다면 얼마든 해도 좋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흥분해야 할 다른 일이 많지 않나.

강만길 = 덩샤오핑이 1970년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기자가 센카쿠열도에 대해 물었다. 덩샤오핑은 “우리 세대는 일본인이건 중국인이건 머리가 나빠 해결하지 못하는 것 같다. 후세에 넘기자”고 대답했다.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서승 = 중화 제국주의는 서구 제국주의와 다른 것인가. 중화질서의 나쁜 점을 빼고 중국을 바른 길로 인도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강만길 = 공동체로 가면 모두 동등해야 한다.

임헌영 = 남북한, 중국, 일본이 공동체가 되면 중국 같은 나라도 있어야 세계 전체적으로 위상이 살아난다.

서승 = 중국이 미국의 대항 권력으로 있으니까 들어와야 한다는 말 아닌가.

강만길 = 공동체 내에서도 힘의 문제는 있겠지. 중국이 횡포를 부리면 한·일이 연합하고, 일본이 횡포를 부리면 한·중이 연합할 것이다. 공동체를 위해 우리는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동아시아 공동체가 가능하다.

임헌영 = 남북한이 다시 전쟁한다면 그 끔찍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 전쟁하자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지금 시대에는 미국이 조그마한 나라도 점령해서 지배할 수 없는 세상임을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서승 = 정부 차원에선 6자회담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동북아 비핵지대 조약을 거쳐 동북아 안전보장과 동북아 전체의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민간 차원에서는 동북아에서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사를 공통 관심으로 교과서를 만드는 거다. 이것을 유엔 속에서 인정받으면 역사인식을 논쟁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내년 한국에서 핵안보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에 맞춰 민간 차원에서 합천에서 대규모 비핵집회를 준비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강만길 = 현 정부의 통일정책은 이해가 안된다. 북한을 흡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인적왕래나 교류협력은 하지 않겠단다. 천안함·연평도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했다가 다시 사과해야 한다고 한다. 국민 앞에 ‘우리 통일정책은 무엇이다’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민족 입장에서 보면 우리 문제를 6자회담으로 풀어가는 게 창피한 일이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것이 사실이나 우리 같은 문화민족이 남의 식민지가 된 것도 창피한데 해방 66년이 지나도 우리 문제를 강대국을 거쳐서 풀어 나가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왜 그런 것에 대한 수치심, 민족적 자각이 일어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 강만길(78)은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역사학자로 고려대 교수, 상지대 총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공저) <고쳐쓴 한국현대사>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 등의 저서가 있다.

▲ 임헌영(70)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문학평론가로 경향신문 기자, 중앙대 교수를 지낸 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분단시대의 문학> <한·중·일 3국의 8·15 기억>, 리영희 선생과의 대담을 담은 <대화>가 있다.

▲ 서승(66)은 1945년 4월 일본 교토에서 출생해 1965년 처음 조국 땅을 밟은 ‘해방둥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후 보안사에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연행돼 19년간 비전향정치범으로 옥살이를 했다. 작년에 리쓰메이칸대 교수를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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