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죠.
여성의 몸으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 선
이병희 여사를 이번 주 뉴스 인에서 만났습니다.
오승재 기자입니다.
[리포트]
광야, 절정, 청포도 등
나라를 잃은 울분을 저항시로 토해낸 시인 이육사.
일제의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중국 베이징의 차디찬 감옥에서
숨졌습니다.
그런 이육사와 독립운동을 같이 하고 시신까지 손수 수습한 주인공.
바로 여성독립운동가 이병희 여사입니다.
인터뷰 : 이윤옥 부위원장 / 민족문제연구소
“육사 선생님의 시신을 거두고 우리가 보는 ‘광야’라는 시 등
유품을 정리하시고, 이병희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육사 선생님의
유품은 지금 전해지지 않았을 겁니다.”
인천 부평의 한 노인 요양원.
올해 94살의 이병희 할머니는 2년 전부터 부쩍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할머니가 독립운동을 시작한 때는 겨우 16살.
한창 꿈 많은 소녀 시절에 방적 공장에서 파업을 주도하다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5년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인터뷰 : 이병희 여사 / 독립운동가
“우리는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면서도 나라를 지키지 않는가.
자기 몸만 하나 희생하지 절대로 동지를 살해하지 말자.”
감옥을 출소한 뒤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친척인 이육사와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일본 고관 암살과 관공서 테러에 앞장섰던 의열단에 가입해
비밀문서를 전달하는 연락책을 맡았습니다.
인터뷰 : 이병희 여사 / 독립운동가
“저녁에 육사의 시체를 만났는데 뚜껑을 딱 여니까 얼굴이 하얗게
변해있고, 코에서 피고름이 막 쏟아져 나오면서…”
하지만, 할머니는 광복 이후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50년이 넘는 세월을 침묵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지난 1996년에서야 비로소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광복 66주년.
2011년의 대한민국은 이들의 희생정신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인터뷰 : 이병희 여사 / 독립운동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 우리 후손의 의무다.”
EBS 뉴스 오승재입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죠.
여성의 몸으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 선
이병희 여사를 이번 주 뉴스 인에서 만났습니다.
오승재 기자입니다.
[리포트]
광야, 절정, 청포도 등
나라를 잃은 울분을 저항시로 토해낸 시인 이육사.
일제의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중국 베이징의 차디찬 감옥에서
숨졌습니다.
그런 이육사와 독립운동을 같이 하고 시신까지 손수 수습한 주인공.
바로 여성독립운동가 이병희 여사입니다.
인터뷰 : 이윤옥 부위원장 / 민족문제연구소
“육사 선생님의 시신을 거두고 우리가 보는 ‘광야’라는 시 등
유품을 정리하시고, 이병희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육사 선생님의
유품은 지금 전해지지 않았을 겁니다.”
인천 부평의 한 노인 요양원.
올해 94살의 이병희 할머니는 2년 전부터 부쩍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할머니가 독립운동을 시작한 때는 겨우 16살.
한창 꿈 많은 소녀 시절에 방적 공장에서 파업을 주도하다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5년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인터뷰 : 이병희 여사 / 독립운동가
“우리는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면서도 나라를 지키지 않는가.
자기 몸만 하나 희생하지 절대로 동지를 살해하지 말자.”
감옥을 출소한 뒤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친척인 이육사와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일본 고관 암살과 관공서 테러에 앞장섰던 의열단에 가입해
비밀문서를 전달하는 연락책을 맡았습니다.
인터뷰 : 이병희 여사 / 독립운동가
“저녁에 육사의 시체를 만났는데 뚜껑을 딱 여니까 얼굴이 하얗게
변해있고, 코에서 피고름이 막 쏟아져 나오면서…”
하지만, 할머니는 광복 이후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50년이 넘는 세월을 침묵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지난 1996년에서야 비로소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광복 66주년.
2011년의 대한민국은 이들의 희생정신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인터뷰 : 이병희 여사 / 독립운동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 우리 후손의 의무다.”
EBS 뉴스 오승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