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고(故) 안현태씨가 국립 대전현충원에 기습적으로 안장됐다. 안씨의 안장을 계기로 12·12 사태 관련자 등 이른바 ‘반민주 인사’와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인사 상당수가 국립묘지에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회적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국가 발전을 위해 공헌한 이들이 명예롭게 잠들어야 할 국립묘지에 이들이 함께 묻힌 것은 과거사 청산과 국기 확립을 위해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12·12 관련자 추가 가능성…친일인사 21명 안장 = 5·18 기념재단은 12·12 사태 관련자 가운데 안현태ㆍ유학성ㆍ정도영ㆍ정동호ㆍ김호영씨 등 최소 5명이 이미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처럼 12·12 사태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 관련해 유죄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관련 인사들은 현행법상 국립묘지에 안장될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유죄가 확정된 내란ㆍ외환 범죄자도 안장 배제 사유에서는 제외돼 있다.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현행 국립묘지법에 따르면 내란범죄자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는데 이런 법은 빨리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현재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16명 중 14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각에서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후 안장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전현충원 관계자는 “독립유공자 서훈이 취소된 인사 중 이장 권고를 한 사례는 있지만 군인에 대해 이장 권고를 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한 14명과 친일 행위로 인해 서훈이 취소된 인사 10명(중복 3명) 등 21명도 서울과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서울에는 연희대학 총장을 지낸 백낙준씨(반민족행위자) 등 11명, 대전에는 10명이 묻혀 있는 것으로 연구소는 집계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사들을 합치면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안장자는 총 76명으로 늘어난다. 연구소 측은 “(76명 중) 일제 강점기 일본군 또는 만주군 장교 출신자가 압도적 다수인 50명을 차지한다”며 “(이중에는) 특히 만주국 간도특설대 출신 장교가 가장 많다”고 밝혔다.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는 1930년대 후반 조선인 항일세력을 가장 강력하게 탄압한 조직 중 하나로, 이들이 살해한 항일운동가와 민간인 등이 172명에 달한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5共 경호실장 고 안현태씨 안장 (대전=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지난 8월 6일 대전국립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안장된 고(故) 안현태씨. 5공화국 때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안씨는 육군사관학교(17기)를 졸업한 ‘하나회’ 출신으로 수경사 30경비단장과 공수여단장, 청와대 경호실 차장 등을 거쳤다. 2011.8.6 walden@yna.co.kr |
◇”역사 미청산ㆍ법 미비 원인” = 친일ㆍ반민주 인사의 국립묘지 안장 논란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것은 결국 과거사 청산이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12 사태 및 5·18 관련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기에 사법처리를 하면서 제한된 인사만 처벌하고 주요 공범이나 방조범은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친일 인사들에 대해서도 이들의 기득권이 해방 이후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 문제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 이상의 기득권을 유지한 이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게 한 것이 문제”라며 “독립유공자와 친일파가 동일한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모욕이자 무원칙의 표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립묘지 안장자 심사 기준을 엄격히 하고, 나아가 행적이 인정된 친일인사들에 대해서는 강제 이장까지 가능하도록 특별법 제정 등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내란범죄자나 사면ㆍ복권자를 안장에서 배제하는 내용으로 민주당 조영택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된 상태다.
이민석 변호사는 친일인사 강제 이장과 관련해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의 강제 이장은 재산권 박탈이라기보다는 무상으로 국유지를 사용해 왔던 부당 이익을 향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고 이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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