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역사교육의 뜻’ 대통령에 공개질의 추진
이재훈 박태우 기자
교육과학기술부가 8일 독재와 민주화 관련 문구 등을 삭제한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발표를 강행하면서, 역사학계와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역사학계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역사교육에 대한 뜻을 묻는 공개 질의서를 보내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5일 11개 역사학회의 ‘민주주의 문구 자유민주주의 변경 반대’ 공동 성명서 발표를 추진했던 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은 9일 “학계의 의견을 수렴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발표 과정의 절차적 문제에 대해 묻는 공개 질의서를 보내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제까지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 장관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에 여러차례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이 장관은 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정치적으로 역사교과서 문제를 검토해 미래 세대에게 적합하지 않은 역사교육을 전수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권태억 한국사연구회 회장(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은 “자유민주주의를 추진한다는 사람들이 남북간의 체제 대결과 같은 냉전 구도만 머리에 두고 비민주적인 일 처리로 민주화 성과를 무력화시켰다”며 “앞으로 고등학교 교과서 집필기준 개발도 남아 있기 때문에 학술적인 방법으로 여론을 환기하는 대토론회 등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돈 역사교육연구회 회장(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분히 냉전 시대의 이념 논리로 교과서를 바꾸는 선례를 남기고 있는데, 학회도 아닌 학회(한국현대사학회)의 말만 듣고 이렇게 바꾸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교육과정의 변경 자체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점부터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 등 40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14일 ‘친일독재 미화 저지, 역사교과서 개악 저지’를 공동 가치로 하는 ‘역사정의시민행동’을 발족하고, 법 개정 운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우영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번처럼 교과부 장관이 위원회의 기능을 무시하고 직접 지휘해 교과서 편찬 과정을 휘두른 일은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년 총선에 관련 법을 개정하는 운동을 벌이고, 총선 후보자들에게 의견을 묻는 문답지를 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명운동도 벌일 예정이다. 이신철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8월 발표된 2009 개정 교육과정 고시 철회나 수정, 지난 8일 발표된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발표 철회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일본에서도 교과서 문제로 논란이 일면 현행 교과서를 1년 정도 더 쓰고, 추가로 의견을 수렴한다”고 말했다. (한겨레,11.11.09)
[관련기사]
▶역사학계 “교육부 장관 고시권한 견제장치 필요”(경향신문, 11.09)
- 89033366.jpg (16.82 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