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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 훈장 받은 ‘거물’ 친일파, 동상 세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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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전북 군산시는 근대인물 5명을 선정해 조각상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군산시가 선정한 근대인물 5명은 임병찬 장군, 이영춘 박사, 채금석 선생, 문학가 채만식,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 등이다. 군산시는 2월 말에 구체적인 건립 계획을 결정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 인물들의 속을 들여다 보니 가히 충격적이다. 채만식의 경우 알려진 대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이다. 또한,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은 ‘거물급 친일파’로 분류될 만큼 친일행적이 뚜렷하게 드러난 인물이다.


군산시는 친일행적이 있는 이들을 5대 근대인물로 선정했고, 이들을 기념하는 인물 조각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문화경관사업을 통해 근대 문화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군산시가 역사적 정체성을 망각하고, 친일파의 인물상을 세우려는 반역사적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경성고무 이만수 사장. 사진 옆에 대평만수(大平晩秀)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창씨개명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이만수


군산시 근대인물 이만수, 문제가 많다


기자는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 사라졌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피의자 명단’에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이 포함된 사실을 파악한 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한 친일인명사전등재 여부를 확인해 봤다. 하지만 이만수 사장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에 그의 과거 행적과 추가 등재 가능성을 물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지방과 해외 친일 인물은 행적에 대한 추가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누락된 자가 많다”며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은 친일행적이 뚜렷하고, 중대성이 심각해 친일인명사전 개정판에 등재될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고 밝혔다. 또한 “지금 확인된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친일인사로 분류되는데, 반민특위에 기소될 정도면 굉장한 거물급 친일인사”라며 현재 진행하려는 군산 근대인물 조각상 건립에 우려를 표했다.


 이어 조 사무총장은 “추가 조사하면 더 많은 행적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 정도면 과거 청산은 고사하고 역사의식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법하다.


군산시 “논란 있겠지만, 별 문제 없다”


한편, 군산시는 이 사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군산시 문화체육과 근대문화시설계 김석근 계장은 “논란이 예상되지만, (채만식과 이만수가) 군산의 지역사회의 경제와 문학에 일조했기 때문에 포함시켰다”며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계장은 “근대에 친일파든 아니든 군산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인물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며 “군산 사람치고 이만수가 사는 밥 한번 안 먹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역 내 활동이 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물상을 세울 때 친일행적을 상세히 설명하는 안내문도 같이 설치할 예정이라 큰 문제는 없다”며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개인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가 주장하는 ‘상세한 설명’이 어느 정도까지 상세히 기록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애초에 이런 논란이 생기는 사업은 추진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군산시는 올해 안으로 조각상 건립을 완공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성고무 대리점 ‘형제 고무신 방’.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내 당시 가게를 재현해 놓은 모습.
ⓒ 조종안



고무신가게


반대 의사 적극적으로 전달했지만 막무가내


조세열 사무총장은 “군산시가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이고 있다”며 “군산에 다른 훌륭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굳이 친일행적을 남긴 사람의 인물상을 세워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조 사무총장은 “반민특위 명단에 포함돼 체포될 정도면 대단한 친일파”라며 “일본에 침략무기를 사라며 사재를 퍼준 인물인데, 그의 인물상을 세우는 것은 친일행위를 옹호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조 사무총장은 채만식에 대한 의견도 내세웠다. 그는 “문학계에서는 채만식을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그의 친일행위도 만만치 않다”며 “군산시에서 이미 채만식 문학관을 지어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논란이 될 인물상을 세우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사업이 철회되게끔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군산대 교수들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김종수 군산대 사학과 교수는 “조각상 건립은 말도 안 되는 사업”이라며 “과거청산을 해도 모자를 판국에 친일파를 찬양하는 꼴”이고 꼬집었다. 이어 “학계의 주장을 무시한 채 논란이 되는 인물의 동상을 세우려는 목적이 궁금하다”며 “사업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산대 구희진 사학과 교수도 “군산시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길 바란다”며 “굳이 동상을 세운다면, 인물을 다시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 12.01.10)


 







일왕의 ‘공로훈장’ 받은 친일인사, 이만수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에 대한 일반적 시각은 ‘조선 시민들을 위해 짚신보다 오래가는 고무신을 만들어 판매한 사람’이다. 해당 공장에서 만든 ‘만월표’고무신은 날개 달린 듯 팔려, 당시 군산시민들 사이에서 이 고무신을 신는 것이 부의 상징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친일행적에 대해서 크게 알려진 바가 없는데, 이유는 친일인명사전에 미등재됐기 때문이다. 이만수 사장에 대한 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 큰 이유로 분석된다.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를 통해 받은 자료를 참고한 결과, 그의 친일행적은 매우 심각했다.


이만수는 1891년 7월 10일 생으로 서울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군산 출신이다. 그는 중학교 졸업 후 조선총독부 소속 토지측량과 기수로 일했다. 이후 사업에 눈을 뜬 그는 고향인 군산으로 내려와 1924년 11월 경성고무공업소 대주주 겸 사장으로 취임해 고무신 사업에 뛰어든다. 알려진 대로 많은 사람이 이 고무신을 신었고, 그는 기업가로서 승승장구 했다. 1930년 6월 그는 군산상공회의소 평의원을 맡고, 후에 부회장까지 맡는다. 당시에 군산상공회의소 의원은 대부분 일본인으로, 조선인이 의원을 맡은 일은 이만수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친일단체를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그는 조선임전보국단(朝蘚臨戰報國團)이라는 단체의 발기인으로서 일제 치하 전시 사상통일의 구체적 방침과 군수자재 헌납운동을 결의했다. 당시 이 단체로 인해 무고한 양민 수백만 명이 강제징용·노역, 총알받이, 위안부로 끌려가 타지에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됐다.


또한 그는 당시 일본이 진행했던 사업에 자금을 댔다. 군산신사 개축비로 천 원을 헌납했고(1939년 8월) 전북 군산향군분회 사격장 건설비 명목으로 1700원을 헌납했다(1940년 5월). 특히 1944년 3월 중일전쟁과 관련해 일본 육군성에 국방비 1만6천 원을 헌납한 공로로 감수포장(紺綬褒章, 일왕이 수여한 훈장)을 받았다. 이 감수포장은 연예인 이지아의 조부가 받아 논란이 된 훈장과 같은 것이다. 경제적으로 일본을 지원하는 행위는 김구 선생이 친일파 숙청 대상 1호로 지정할 만큼 큰 반민족행위에 해당됐다.


또한 그는 해방 이후 반민특위 피의자 명단에 포함되어 체포되지만(1949년 3월 9일), 5개월 만에 질병을 이유로 보석신청이 허가됐다.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 반미특위가 강제해산 되자 대한고무공업협회 부이사장, 대한아연필협회 이사장, 조선화학비료주식회사 사장, 한국고무주식회사 사장, 대한비료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해방 후에도 기득권을 유지했던 인물이다(민족문제연구소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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