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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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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2004년 초, 시민운동사에 길이 남을 누리꾼 참여운동이 <오마이뉴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해방이 되고도 60년간이나 미뤄져 왔던 친일파 청산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국민적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2003년 12월 말 국회는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한 정부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온갖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으면서도 용케 마음에 들지 않는 미세한 예산을 찾아내 도려낸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 심의의 철저함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언론들도 한 목소리로 정치권의 몰염치를 비난했습니다. 


2004년 1월 7일 국회의 반역사적 망동을 신랄하게 비판한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의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란 기사에 어느 누리꾼(현재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김호룡 선생)이 격동의 심경을 담아 댓글을 달았습니다. “민족사의 과제를 국가가 정녕 외면한다면 이제 우리가 나서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비용을 모읍시다.” 그렇게 거대한 저항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죽비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해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공동캠페인 조인식을 가지고 모금운동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관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다만 캠페인을 통해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겠다는 기대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3·1절까지 1억 원, 8·15까지 5억 원을 모금한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이조차도 우리의 의지를 넘어서는 어려운 과제라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고 지금에 와서야 고백합니다. 


2003년 친일인명사전 예산 전액 삭감… 모금운동 11일만에 ‘5억 원 달성’

▲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한 캠페인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에는 3만 2000여 명이 참여해 모두 7억 5000여 원이 모금됐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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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드라마 같은 감동적인 파노라마가 펼쳐진 것입니다. 모금 시작 하루만에 4000만 원이 모이더니 나흘 만에 1억 원, 엿새 만에 2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뜨거운 모금 열기에 예산 삭감을 진행한 계수조정소위의 위원장인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까지 성금을 보내왔으나 누리꾼들의 반대로 반환하는 해프닝마저 일어났습니다. 전임 대통령도 참여의 뜻을 전해왔으며 여야 의원들과 정당들도 뒤늦게 자성하며 이구동성으로 동참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타오르는 불꽃에 기름을 붓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월 15일 오후 6시 행정자치부가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모금 즉시 중지 결정’ 공문을 연구소로 보내온 것입니다. 그날 오후 9시 방송사들은 일제히 톱뉴스로 이 기막힌 사태를 보도했습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를 뿌리다니” “열받아서 사망 일보 직전이다. 낼 눈뜨자마자 바로 은행 가야지” 여론이 들끓어 올랐습니다. 이에 허성관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이 “나도 성금을 냈다”고 공개하면서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 여론의 뭇매를 맡게 됩니다. 


이제 누리꾼 모금운동에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모금은 오히려 가속화돼 다음날인 16일 4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18일 밤늦게까지 온라인 입금이 계속되더니 19일 새벽 3시 드디어 목표를 넘어섰습니다. 불과 11일만에 2만5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기금목표 5억 원을 단숨에 달성해 낸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믿기 힘들었던 이 순간을 ‘5억 돌파! 물방울이 바위 뚫었다… 명동에 울려퍼진 “친일청산 만세!”‘라는 감격어린 제목을 달아 전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눈물나네…나만 그런 건가요?…사랑하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소감을 붙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벅차오르는 자부심에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절망을 접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긍정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메이저 언론이 대대적으로 모금하는 수재의연금도 아니고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아닌 역사운동에, 성인 인구 1000명당 1명이 참여하고 평균 2만 원의 소액 성금으로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기금목표를 이뤄낸 것입니다. 누리꾼들이 스스로 ‘독립군 진공작전’이라 이름하였듯, 민초들이 이제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주역으로서, 거짓된 역사를 거부하고 진실한 역사를 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것입니다. 


기금목표를 달성한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누리꾼 모금 공동캠페인을 일단 정리하고 민족문제연구소 주관 아래 국민모금으로 전환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이날 저녁 명동의 반민특위 터에서는 누리꾼들과 연구소 식구들이 운집한 가운데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드리고 친일청산을 다짐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모두 한마음이 되어 ‘압록강 행진곡’을 드높이 외치며 제2의 독립군이 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경이로운 순간들과 북받치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오마이뉴스>와 연구소 누리집에 올라왔던 숱한 사연들을. “우리 네 딸들이 아름답고 정의롭게 커가길 바란다”며 정의의 대열에 가족 여섯 명의 이름을 모두 올려달라던 다둥이 아빠(한걸음), “반민특위 위원이 된 기분”이라던 일산 비둘기님, “제2의 독립군 군자금을 낸다”던 이석님, “태어날 아기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선물하고 싶다”던 새신랑(nagne1120).

“훌륭한 유산은 바로 정의롭고 반듯한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라며 가족의 이름으로 동참해 주셨던 가장(cjseodls),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자랑스러운 민족이 될 수 있겠다”면서 이역만리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성원을 보내주신 범부(bigground)님, 연금의 일부를 보낸다던 지체장애인, 하루 날품삯을 아들 명의로 보내온 막노동자, 면접비를 성금으로 냈던 ‘청년백수'(rock7896), “비록 사오정이지만 두 아이와 만 원씩 쏜다”던 조기 퇴직자(team), 기름때 묻은 지폐를 모금함에 넣고 돌아서던 호떡 노점상 아저씨, 선대의 친일 행적을 대속한다며 성금을 보내온 수많은 후손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또 멀리 해외에서까지 수많은 이들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조국의 미래상을 그리며 고귀한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부족한 생활비를 쪼갠 분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정성이 담긴 소중한 물품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기의 돌반지, 어린이들의 돼지저금통, 신혼부부의 예물시계. 간절한 사연 속에 진실한 역사와 건강한 사회를 향한 아름다운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차마 기금으로 처리하지 못했지만, 곧 만들어질 시민역사관에 누리꾼 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증언하는 역사자료로 전시하려 합니다. 


아이들 돼지저금통, 예물시계… 국민이 만든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은 참여인원과 열기, 모금속도 등 여러 면에서 화제를 뿌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도 배로 증가하였습니다. 이 캠페인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인터넷 역사문화운동이 만개하는 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수구세력들에게는 역사를 움직이는 참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여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민중이 역사의 주역임을 입증해낸 것입니다.

친일청산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확인되면서 한나라당의 책동으로 누더기가 되다시피 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도 2004년 12월 부족한대로 개정하는 의미있는 성과도 얻어냈습니다. 2005년 12월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도 그 연장선상에서 쟁취한 역사적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값진 소득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이었습니다. 국민모금에서 나타난 많은 이들의 절절한 염원이 밑거름이 되어 2009년 11월 8일 드디어 친일인명사전이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온갖 방해와 역경을 딛고 18년간의 대장정 끝에 이뤄낸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수 있었던 힘은 오로지 누리꾼 여러분들을 비롯한 국민 다수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  2004년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금모금 공동캠페인 협약식을 가진후 양 기관의 대표자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조문기 이사장,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정운현 편집국장.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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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 모금 8주년을 맞아 이제 참 역사를 지켜낸 그때의 ‘당신’을 찾습니다.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친일인명사전,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에 호응하여 들불처럼 일어났던 역사정의실현의 열망을 떠올리면서, 그날의 감격을 오롯이 담아 당시 모금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다큐멘터리 DVD를 보내드립니다.

☞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 페이지 바로가기

친일·독재 미화와 역사교과서 개악으로 들끓고 있는 우리 현실은 상식과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힘들이 모여 역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이미 친일인명사전에서 확인했습니다. 다함께 뭉치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함으로써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이제 보내주신 신뢰와 그간의 축적된 힘을 기반삼아, 다시 역사전쟁의 최일선에 서고자 합니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적에 이어 두 번째 과제로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관을 중심으로 친일·독재를 찬양하는 온갖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겠습니다.


☞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영상 보러가기

앞으로도 계속 성원 보내주시고 지켜봐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참 역사의 진정한 주역 ‘당신’과 함께 민족문제연구소가 정직한 역사의 지킴이가 되겠습니다. 

모금일지


2003년 12월 29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전액 삭감

2003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 2004년도 정부예산안 통과

2004년 01월 07일 친일인명사전 편찬기금 네티즌 모금 발의

2004년 01월 08일 <오마이뉴스>·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

                           로’ 캠페인 협약 체결

2004년 01월 09일 모금 4000만 원 돌파

2004년 01월 12일 모금 1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4일 모금 2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5일 행정자치부 ‘모금 즉시 중지 결정’ 연구소에 공문으로 통보

                           모금 3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6일 모금 4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9일 기금 목표 5억원 달성, 명동 반민특위 터에서 결의대회

                           네티즌모금을 국민모금으로 전환

2004년 01월 27일 국무회의 ‘2006년까지 35억 원 모금’ 승인 의결

2004년 02월 19일 모금 7억 원 돌파

2004년 03월 15일 참여인원 약 3만 2000여 명, 총모금액 7억 5000만 원


▲  2004년 1월 19일 엄마 손을 잡고 <친일인명사전> 편찬 성금 5억 달성 기념 행사에 참가한 8살 우빈군. 우빈군 어머니는 이번 모금상황을 보면서 우빈이와 함께 역사책을 찾아가며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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