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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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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친일인명사전,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을 통해 지난 2009년 11월 9일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습니다.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 없이는 이룰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2004년 모금 8주년을 맞아 당시 모금에 참여해주셨던 그날의 ‘당신’을 찾고자 합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이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의 연원을 이야기하자면 반드시 짚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둘 있습니다. 1949년 6월 6일 백주대낮에 친일경찰들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던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바로 20일 뒤에 일어난 ‘백범 암살사건’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친일세력이 민족주의세력을 국가운영에서 배제하고 일제시기의 기득권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땅에서 ‘친일청산’은 더 이상 민족적 과제가 아니라 ‘빨갱이의 농간’이요 ‘국론분열 행위’로 간주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친일청산을 외치는 일은 가시밭길을 넘어 목숨을 거는 위험천만한 체제도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종국 선생은 그때 모든 사회진출이 차단되어 천안에서 밥을 굶듯이 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해방 이후 모든 지식인이 친일파에 대한 연구나 언급을 철저하게 기피하고 있을 때 오직 혼자서 펜을 들었고,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복은 가혹하고 잔혹했습니다. 친일파가 모든 분야에서 득세하는 세상에서 그분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사회 진출을 차단 당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분의 비참한 모습은 친일파에게 도전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 케이스이기도 했습니다. 그 공포에 질렸음인지 친일파를 문제 삼는 지식인은 그 후로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사지경에 빠진 고난 속에서도 친일파 연구를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범위를 문학에서 벗어나 전 친일파로 넓혀서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조정래, <황홀한 글 감옥> 중에서)



 



2003년 12월 30일,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한 것은 조정래 선생이 말한 또 하나의 ‘모델 케이스’였습니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역사청산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논리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깨어 있었고 양심들은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예산 삭감 9일 만에 통쾌한 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 첫날인 2004년 1월 8일. 이날은 꼭 55년 전 반민특위가 당시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체포하면서 본격적인 친일파 청산 작업에 착수한 날이었습니다.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지 5년 10개월 만인 2009년 11월 8일, 숱한 방해와 위협을 뚫고 마침내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무게 7.42㎏의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조이며, 애태우고 때론 분노했던가요. 


 


금서 아닌 금서 <친일인명사전>… 공공도서관 보급률 32%



사전을 발간하고 2년이 지난 지금, 사전은 얼마만큼 사회 속에 뿌리내리고 있을까요. 2012년 1월 현재, 약 4700여 질(기증 포함)이 보급되었습니다. 출판계가 불황인 점, 전문서적인 점, 30만 원으로 가격이 높다는 점, 상업 광고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친일인명사전>은 보급 면에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는 것이 출판계의 평입니다. 특히 발간 초기 온라인 모임인 ‘세계아고라정의포럼’과 ‘대한불교청년회’의 보급운동이 눈에 띕니다.


 


‘세계아고라정의포럼’은 2010년 초 회원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고, 적게는 3만 원부터 많게는 240만 원을 낸 분들도 있었습니다. 회원들은 이 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해 노들장애인야학, 지리산고등학교, 설천재가노인복지센터 등 국내 10곳과 한국학연구소가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 7개 외국 대학교에 기증했습니다. 기증된 사전에는 “친일의 역사는 결코 잊거나 방치해서는 안 될 우리가 극복해야 할 유산이기에 이 책을 나눕니다”라는 문구도 새겨 넣었습니다. 대한불교청년회는 1920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든 조선불교청년회에서 시작한 단체로 2010년 창립 90주년을 맞아 사전 보급 운동을 1년 내내 벌여나갔습니다.


 


그러나 사전 발간을 염원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보기에 사전의 보급은 아직도 더디기만 합니다. 공공도서관의 경우 전국 687개 도서관에 223질 밖에 보급되지 않아 보급률이 32% 선에 그치고 있습니다. 어느 공공도서관 관계자는 왜 사전이 없는지를 묻는 <경향신문> 기자에게 “적은 예산으로 구입하기에는 <친일인명사전>이 너무 고가인 데다 희망도서신청도 없어 구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전이 비싸기 때문에 더더욱 공공도서관이 시민들을 위해 사전을 비치해 놓아야 하는데 이토록 소극적이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도서관 사정에 밝은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보통 공공도서관들은 도서관 장서 규모를 키우기 위해 고가의 사전류보다는 1만~2만 원 대의 단행본을 주로 구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민 다수가 지속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구매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사전 구입 거부하는 학교들… ‘친일인명사전’을 허하라



 



사전 보급이 더딘 이유 중에는 일선 초중고 학교의 현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다음 사례들은 학교 현장에서 사전 보급 자체가 차단되고 있는 사실을 폭로한 <오마이뉴스> 김행수 시민기자의 2010년 9월 9일자 기사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관련 기사: 교장샘, <친일인명사전> 구입하지 말라고요?)


 


① 서울 강서구 ㄷ고 ㅈ교사는 한일병탄 100년을 맞아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4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신청하였다. 얼마 뒤 도서관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찾아봐도 <친일인명사전>을 찾을 수가 없어 확인해 보니 교장 선생님이 <친일인명사전>의 내용을 문제 삼아 도서관에 비치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 교장 선생님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따져 물으니 “(친일파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고, 역사적 판단이 서로 달라 아직 분란의 소지가 있어서 학생들이 그런 책을 보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② 사립학교인 종로구 ㅅ고 역사 교사인 ㄱ씨는 2009년 11월 수업 참고용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신청했는데 5개월이 지난 2010년 4월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사서 교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도서선정위원회의 구입 결의가 없어 살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③ 2010년 4월 서울교육청은 서울 소재 모든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의 도서관 비치 여부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대표적인 반전교조 인사로 알려진 당시 교육위원 이상진씨(전 한국 국공사립 초중고 교장협의회장)가 이를 문제 삼으며 현황 파악에 나선 것이다. 각 학교에서는 이 공문을 ‘<친일인명사전>을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이 책의 구입을 주저하였다. 실제로 ㄷ고의 사서 교사는 <친일인명사전> 구입 여부를 묻는 교사에게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다”며 “학교가 부담스러워한다”고 일러주기도 했다. 결국 이 학교 도서관에는 지금도 <친일인명사전>이 없다.


 


처음 이 공문의 존재를 제보한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오히려 이 공문을 보고 더욱 친일인명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학교에 사전 구입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학교 현장에서는 교장 또는 상급 관청의 지시와 감독으로 인해 사전이 비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사립학교들에서는 ‘우리 학교 설립자와 관련이 있다’, ‘친일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학생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교사들의 학사참여가 활발한 것으로 평가되는 광주광역시 초중고 학교의 경우를 봐도, 아직도 <친일인명사전>이 학교 담을 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8월 29일 광주광역시의회 김선호 교육의원은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광주시내 일선 학교의 <친일인명사전> 비치 현황을 공개했습니다. 그 결과 시내 147개 초등학교는 단 1곳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며 중학교는 86개교 중 24개교(27.91%), 고등학교는 66개교 중 28개 학교(42.42%)가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의원은 “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이 그 책 구석구석에 알알이 박혀 있는데도 공공기관은 <친일인명사전> 비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친일인명사전>의 국내 보급이 저조한 가운데, 이 사전의 보급을 꺼려할 만한 일본에서는 오히려 판매가 활기를 띤다고 합니다. 국내 도서의 해외 유통을 주로 하는 어느 업체 대표는 일본의 각 대학으로 <친일인명사전>이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제 집에서 구박받는 자식, 집 밖에서 대접받는 형국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금서 아닌 금서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나 언젠가는 전국 방방곡곡 모든 도서관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직접 책장을 넘기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사전을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 낸 역사가 있으니까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판매 수익금 전부를 시민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만큼 그 과실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학문적 기록이라면 시민역사관은 이를 풀어내 생생한 자료로 진실한 역사를 증거할 것입니다. [글쓴이 방학진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입니다] (오마이뉴스, 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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