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위원장, ‘독재자 박정희’ 맞습니까?
김익한 시민역사관 건립위원회 기획단장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친일인명사전,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을 통해 지난 2009년 11월 9일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습니다.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 없이는 이룰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2004년 모금 8주년을 맞아 당시 모금에 참여해주셨던 그날의 ‘당신’을 찾고자 합니다 .
개발과 독재의 시대에 대한 일방적인 미화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기념관이나 동상 건립 등 노골적인 우상화에서부터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방영 등 우회적인 이미지 조작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시각에 따라 한 시대에 대한 해석과 평가에 차이가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 최소한의 합리성은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세력과 어용언론, 그리고 현 정권이 합작하여 추진하고 있는 대대적인 ‘근현대사 다시쓰기’는 역사왜곡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정도가 지나칩니다.
그들은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는 등 독립운동세력을 비하합니다. 일제가 한국근대화의 초석을 놓았다고 강변합니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를 민족중흥의 지도자로 떠받들면서 친일·독재의 과오는 애써 감추려합니다.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흔적조차 지우려 합니다. 심지어 민주주의 말살, 인권탄압, 장기집권으로 불행한 최후를 맞은 독재자들을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인양 포장하기까지 합니다.
긴말이 필요 없습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역사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반공만 외치면 만사형통이던 냉전시대, 친미만 외치면 되던 사대굴종의 시대,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었던 부정부패의 시대, 그들이 마음 놓고 기득권을 향유했던 그때 그 시절을.
수구세력은 소멸되어가는 ‘특권의 시대’를 연장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선 올해 치러지는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장기집권을 재현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인줄 알면서도 원대한 포부 아래 역사전쟁을 도발한 것입니다. 건국절 제정 시도, 역사교과서 개악,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개관은 친일·독재·재벌독점을 합리화하여 특권세력의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이데올로기 공세의 일환입니다. 그들은 역사적 정통성을 자신들의 존폐가 걸린 사활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온몸으로 정치적 목적이 선연한 외눈박이 역사해석의 전파를 막아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 친일파 면죄부… 수구세력의 ’21세기 역사쿠데타’
역사학자들이 우려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앞에서 말한 역사조작의 총본산이 될 전망입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 건국60주년 기념물 건립방안에 대한 검토를 지시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작성한 기본계획안은 ‘식민지시기와 산업화에 대한 편향적·자학적 관점의 극복’과 ‘국론분열의 소모적 논쟁을 극복’하기 위한 국민통합을 기본 관점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식민지시기에 대한 편향적·자학적 관점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일본의 우익들과 한국의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장하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담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일제시기 조선총독부 관리나 판검사 군·경찰로 부역한 친일파들은 ‘건국’의 주역이자 ‘근대화’의 공로자가 되어 확실한 면죄부를 받게 됩니다.
‘산업화에 대한 편향적·자학적 관점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시기를 눈부신 산업화의 역사로 각인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타도 대상이었던 독재정권과 개혁 대상인 독점재벌을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구국의 주체로 만들어 국민들이 영원히 기념하고 존경할 대상으로 삼겠다는 심산입니다.
‘국론 분열의 소모적 논쟁을 극복’하겠다는 건 독재정권이 반대세력을 탄압할 때 내세우는 전가의 보도였습니다. 정권이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소모적인 국론 분열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나왔음이 분명합니다. 유신시대 병영국가체제를 겪었던 국민들은 한결같이 기억할 것입니다. 어용언론들이 오로지 정권의 지시에 따라 앵무새처럼 되뇌던 단골 메뉴가 ‘국론 분열’ 운운이었습니다.
정권이 권력을 앞세워 역사를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무개념의 극치라 할 만 합니다. 독재정권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과거청산이 진행되고 있는 초현대의 시대에 어느 나라가 이런 개념 없는 일들을 벌일 수 있단 말입니까.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의 혈세를 들여 파시즘의 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역사 선동’을 하다니 그야말로 국격을 의심받지 않으면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신사 경내에는 유슈칸(遊就館)이라는 전쟁박물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평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기실은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군국주의의 성지입니다. 우리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있을 때마다 과거사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을 경멸하며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판 유슈칸이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이렇게 우리 내부의 역사조작을 방치한다면 더 이상 일본정부와 우익들의 망동을 비판할 자격도 근거도 사라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 우리 사회의 유사 보수세력은 자기혁신의 의지가 없이 퇴행을 일삼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건전보수로 거듭날 생각은 없이 왜 이승만 박정희 찬양, 재벌 미화에만 골몰할까요. 왜 반공·친미 철지난 레코드만 돌려대는 걸까요.
이쯤해서 보수진영의 유력한 대선주자이자 우상화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아버지의 친일·독재·인권유린·축재 등 치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합니까. 업적만 후광으로 삼고 책임은 회피하고 싶은 건가요. 친일과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쇄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닌가요. 스스로 먼저 점검하지 않는 진정성 없는 쇄신을 국민들이 믿어 줄까요.
지도자가 되는 전제 조건의 하나가 올바른 역사인식이라면 박근혜 위원장은 치열한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연적·정신적 승계자이자 수혜자이며, 동시에 유신체제의 비중 있는 책임자 중 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이라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말끝마다 아버지를 들먹이는 딸에게 다시 묻습니다. 아버지의 부일협력과 독재, 특히 유신시대에 대한 당신의 솔직한 견해가 무엇입니까.
어쩌면 답변은 이미 나와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 위원장은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단체가 만든 후쇼사 역사교과서보다 더 고약하다는 평을 받은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이제 걱정을 덜었다”고 진심어린 축사를 남겼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일제식민지배는 축복이며 친일도 독재도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역사 왜곡 후대까지 피해… ‘정직한 역사’ 시민만이 지킬 수 있어
항간에는 이런 말들이 돌고 있습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나”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지금 한나라당의 쇄신은 과거로부터의 단절도, 과오에 대한 반성도 없는 사상누각이라는 뼈아픈 질책일 것입니다. 즉 역사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세력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생래적 한계를 원죄처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려스런 점은 개발독재의 수혜자가 아닌 상당수의 국민들이 아직도 이승만·박정희를 맹목적으로 숭앙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여기에 더해 교과서 대개편, 각종 기념관과 동상 건립 등 숱한 역사파괴가 이미 기정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역사를 날조·왜곡하는 행위는 그 폐해가 당대에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통시적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확산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시민들은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그리고 독재의 수난 속에서도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취하였으며 평화통일의 길을 닦아온 자랑스런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위대한 역사의 주역들은 60년이 넘도록 국가가 외면해온 친일청산이라는 민족사의 과제까지 스스로 정성을 모아 해결해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사전을 펴낸 지 2년이 갓 지난 지금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반동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민적 지지와 성원 아래 진행되었던 진실한 역사 찾기가 또다시 실종될 위기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만들고 신화를 창조하며 시민들이 애써 복원한 진실한 역사를 지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전면적인 역사전쟁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민 여러분! 시민이 쟁취한 정직한 역사는 시민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올바른 기억을 위한 투쟁에 다시 나서 주십시오. 여러분께서 역사 지킴이가 되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현 정권과 보수세력이 정권 재창출과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이를 선거에 악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수밖에 없는 한판 역사전쟁에서 진실이 거짓에게 더 이상 우롱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역사청산을 완성해가기 위해서입니다. 시민의 힘으로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고 민주정부 10년간 과거사청산도 일정하게 이끌어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시민 주도의 역사문화운동이었습니다. 부일협력자, 권력기관의 친일잔재, 국가폭력과 비민주적 행태들을 함께 청산해 가는 대장정에 올랐다고 많은 이들이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당위로만 여겨졌던 국가의 역사반성은 정권교체와 함께 급속히 퇴색하고 말았습니다. 겪고도 믿기 힘들지만 오히려 권위주의 정권 시대보다 더한 역사의 암흑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커다란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강력한 역사전쟁의 기지로서 (가칭)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을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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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역사관은 민초들의 이야기가 담긴 살아있는 역사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부정한 권력에 아부했던 지배층의 역사가 아니라 자유와 정의를 위해 피흘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입니다. 일제식민지배의 혹독한 현실과 친일파들의 무도한 반민족행위들을 낱낱이 증거할 것입니다. 또 신판 식민사관인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를 당대 민중의 삶과 생생한 자료를 통해 여지없이 분쇄할 것입니다. 더하여 시민사회가 이룩한 위대한 친일청산의 역사 또한 상설 전시함으로써 그 역사적 의미를 미래세대에까지 전하고자 합니다.
독재정권과 독점재벌을 미화하는 역사 대신 한강의 기적에서 소외되었던 ‘난장이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이야기를. 계급과 인종, 성, 국경을 넘어 평화를 꿈꾸며 연대의 손을 잡았던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줄 희망의 이야기도 담아낼 것입니다.
또 시민역사관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역사, 그것이 비록 작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큰 이야기를 만들고 마침내 세상을 바꾸는 선언이 되는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화석화된 유물 전시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모여서 함께 가꾸고 서로 소통하며 실천하는 역사문화공동체를 바라봅니다.
시민이 주인되어 지켜가는, 어떤 권력 그 어떤 정부도 넘볼 수 없는 든든한 역사의 요새를 그려봅니다. 위대한 역사는 바로 진실한 역사입니다.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갈 시민역사관 건립에 함께해 주십시오.(오마이뉴스, 1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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