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공개 주한미대사관의 비밀전문
한국의 과거청산에 부정적 시각 드러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민간 활동까지 정보 보고
박한용 연구실장
해직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출발하여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저항방송 ‘뉴스타파’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비밀전문 중 한국의 과거사청산과 관련한 주한미대사관의 정보보고를 분석 조명했다. 2월 17일 방영된 뉴스타파의 4회차 보도에 의하면, 미대사관은 한국의 과거사청산이 한일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매우 우려하고 있었으며, 이명박 정부의 친일노선에 대해 노골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가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비밀전문에는 미대사관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대해서 미 본국정부에 보고한 사실도 담겨있어 민간의 과거사청산운동 동향까지 파악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비밀전문은 전체적으로 한국의 과거사청산에 대한 미국의 예민하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미 대사관은 이명박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 취임식 이래 “일관되게 한일관계를 미래에 초점을” 맞추겠으며, “(한일)과거사문제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미대사관은 일련의 보고서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이 시종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즉 이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임기를 시작하기 전에도” 자신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특사로 일본에 파견하고 당시 주일 유명환 대사를 외교장관으로 임명한 사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첫 해외 순방지로 일본을 찾은 것에 대해 후쿠다 수상이 ‘이대통령의 정책이 일본과 관계를 우선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감사를 표한 사실, 이에 대해 이대통령이 후쿠다 일본 수상에게 “역사적 진실이 무시되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 대한 분쟁 때문에 미래 관계를 더 이상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 내용 등 이른바 일련의 ‘일본프렌들리 정책’이 그것이다.
▲지난 2008년 4월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도쿄 왕궁을 방문, 마중 나온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 왕비의 영접을 받고 있다. (한겨레신문) |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이 외교통상부의 대일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사실도 새삼 확인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가 이명박의 일본 접근법을 “일본과의 대립을 피하고 대중들의 감정을 ‘진정시키는’ 방식의 하나”로 해석하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안정화시키는 방안” 즉 “상호관심사 가운데 덜 민감한 부분에서 일본과 협력하는 방식”을 대일 외교 기조로 취하고 있다고 미 대사관 관계자에게 설명한 사실도 공개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젊은이 교환 방문, 경제협력, 에너지 협력 등과 같은 민감하지 않은 부분에서 일본과 협력하고, 야스쿠니신사참배, 리앙쿠르분쟁(독도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민감한 문제는 피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외교노선이었다. 한마디로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역사마저도 내팽개치겠다는 현 정부의 몰역사성과 무책임성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라 하겠다. 한일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나 피해자와 유족들이 왜 외교통상부를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고 비난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된다. 이에 대해 미 대사관은 “(한국의) 외교부가 일본문제를 외교부 고위차원에서 열린 마음을 갖고 의제로 삼게 될 것”이라고 기대어린 전망을 하고 있다.
전문에는 주한일본대사관 참사관의 코멘트도 담겨 있는데, 그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과거 역사나 영토문제에 대한 논의는 회피하고 경제관계를 강화하겠다는 데 초점”을 둔 것으로 평가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보다 ‘사소한 트러블을 견디는 두꺼운 피부’를 가져 불가피하게 한일 관계에서 마찰이 일어나도(즉 한국 내에서 한일과거사 청산문제가 제기되어도) 한국 내의 반발 움직임을 잘 무마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외교관으로서 도가 지나친 언급이지만 실상에 부합하는 분석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특기할 점은 동북아역사재단이나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구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있는 민간 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은 과거청산 관련 싱크탱크가 “일본과 좀 더 가까운 관계를 바라는 이대통령의 포부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분석한 대목이다. 특히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한 2008년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2차발표에 대해 독자적인 제목을 뽑아(JAPANESE COLLABORATORS LISTED) 본국에 보낸 정보 보고 내용도 매우 주목된다.
<위키리크스 공개 한일문제 관련 주한미대사관 비밀전문>(민족문제연구소 부분) 제 목: 한일 정상회담 후속 조치: 미래를 내다보지만 발을 내디디지는 않아 ○ 친일파 명단(JAPANESE COLLABORATORS LISTED) 2008년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는 1910~1945년 일제 식민통치 기간 동안 일제에 협력한 조선인 고위 인사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연구소는 서울에 본부를 둔 민간 연구단체이다. 연구소는 8월 말 공개될 3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할 4,776명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전은 2005년 발표한 3,096명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개정판이 될 것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2001년 170명의 연구자들과 집필진 등으로 구성됐다.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연구소는 2004년 사전 편찬 성금 모금을 시작한 지 10일 만에 미화 50만 달러를 모았다고 밝혔다. 진보적 정치인들과 학자, 시민단체들은 <친일인명사전> 출판에 대해 지지 성명을 발표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식민지 시절의 논쟁을 재개하는데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인사들로 구성되었으며 지난 시기의 과오를 조사,규명하기 위해 설립된,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존치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재확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 29일 종교 지도자들과 모임에서 “친일에 대한 공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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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내용이 실제 사실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점은 있지만,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민간 모금 현황이나 ‘진보파 정치인과 학자, 시민단체’들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지지 성명 사실들을 보고하는 한편, 이대통령이 “식민지시대의 논쟁을 재개하는 데 유감”을 나타내었으며, 4월 29일 종교지도자들과의 모임에서 “식민지시대 친일에 대한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고 한 발언도 아울러 소개했다.
보고서 말미에는 이명박 정부를 중심으로 한 한일과거사에 대한 전망과 평가가 실려있어 미국의 동아시아관을 엿보게 해준다. 미 대사관은 한일과거사문제를 청산하려는 한국인들의 노력을 결코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러한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가 이것들을 잘 관리하고 “일본과 더 성숙한 관계”를 이루기를 바라고 있음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미 대사관은 “이대통령이 일본과 접근하고 양국 관계를 진전시키고 구축하기 위해 신뢰를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대통령이 몇몇 보수주의자들을 싱크탱크(동북아역사재단이나 진실화해위원회를 말함)에 박아넣는데 성공할지라도 이 사람들이 이 기관들을 일본과 한일 과거사에 대한 사고를 바꾸게 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때까지 “이명박 정부는 이들 그룹으로부터 반대에 부딪칠 것으로 전망하는 한편, 이들 그룹(과거사 관련 기관)들은 일본이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그들이 다시 한 번 그들 존재를 정당화시킬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악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미 대사관은 교착 상태에 처해있는 한일관계의 현실 앞에서 “이명박 정부 아래서 좀 더 조용하고 성숙한 관계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로 “과거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이명박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기대를 하고, 또 “한국 국민들로 하여금 이것이 한국인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이 대통령의 역량에 좌우된다”고 해, 이대통령이 한일 과거사문제를 잘 덮어주고 이른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만들어가길 희망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은 한국인이 겪은 식민지배의 고통과 해결되지 않은 한일과거사 현안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한,미,일 삼각동맹을 공고히 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고 인식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러한 ‘난관을 뚫고’ 해결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위키리크스 비밀전문은 첫째, 이명박 대통령이 왜 뼛속까지 친일주의자이자 친미주의자인지를 객관적 관점에서 재확인해 주고 있으며 둘째, 미국이 결코 친일문제를 비롯한 한일과거사 청산이나 분단과 독재 상황에서 빚어진 반인도적 국가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인들의 노력을 지지하지 않음을 입증해 주었으며 셋째, 일본이 전쟁 책임이나 과거사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묵인하거나 오히려 편향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가 일본 편중의 비대칭적 시각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문건에 나타난 미국의 인식은 거의 냉전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국의 보수세력과 그 원뿌리인 친일세력에 강력한 동질감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된다. 질곡의 한국현대사에 미국 또한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역사적 사실도 전혀 사고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이러한 친일-반공-독재로 이어진 한국의 수구세력들을 자신의 우호적 동반자로 삼고 한일과거사 문제나 분단과 독재시기에 발생한 반인도적 사건들을 이들이 덮어서 해결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이 오늘날 한,미,일 관계의 본질이며 실상이다.
*글쓴이 박한용은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다.
(위키리크스 관련 영상은 17분 부터 시작됩니다. 출처:뉴스타파 홈페이지 http://www.newstap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