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시평]우리 동네 ‘박정희기념도서관’ (이현 | 동화작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했다. 내 깐에는 재고 따지고, 머리깨나 굴렸다. 부동산 아주머니들의 동네자랑을 듣자니 과연 나의 선택이 그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삿짐을 다 들여놓고 보니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건물이 창밖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박정희기념도서관.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펄럭거리는 개관 축하 현수막의 글자까지 또렷하게 보였다. 심지어 우리 동네로 오는 어느 버스에는 앞유리에 커다랗게 안내판까지 붙여 두었다. 박정희기념도서관행.
어쨌거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났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가을, 국민학교 소풍 날이었다. 그런데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밥과 과자가 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더니 가을 소풍이 취소되어 버린 것이었다. 울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자 손꼽아 기다리던 텔레비전 만화 프로그램마저 결방되었다. 오호, 통재라! 열 살 난 아이에게 그건 인생 최악의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날의 일이다.
바로 그날을 나와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맞이한 사람도 있었다.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힐링 캠프> 박근혜 편을 보니, 그녀의 심정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다니, 차마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는 참담한 고통이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더욱 이해가지 않았다. 그녀는 10·26 사태를 가을 소풍의 상실감으로 기억하는 나 같은 사람과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비뚤어진 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부모를 총탄에 잃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잘못된 역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무엇으로부터 그런 비극이 초래된 것인지, 어째서 따져보지 않을까. 자신처럼 아프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째서 깊은 공감을 할 수 없는 걸까.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시기에 고문과 수배와 투옥으로 고통받은 사람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 총탄이 서서히 심장을 후비는 것과 같은 노동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 보다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마침내 아들의 곁으로 떠나신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 전태일 열사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에 스스로 몸에 불을 살랐다. 아니, 박정희 정권의 비인간적인 노동정책이 그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박근혜씨는 아버지가 집권한 약 20년 동안 참혹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공감할 수 없는 모양이다. 숱한 주검이 묻힌 이 땅 위에 박정희기념도서관이라는 게 버젓이 문을 열었고, 박근혜씨는 그 개관식에서 활짝 웃었다.
도서관의 속사정도 기막히기 그지없다. 마포구의 유일한 구립도서관인 서강도서관은 주민자치센터 2개 층을 쓰고 있고,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마포평생학습관은 서가가 텅텅 비어 있다. 그런데 박정희기념도서관은 국고를 200억원이나 들여 1600여평에 달하는 3층짜리 대리석 건물로 지어졌다. 그나마 주민을 위한 도서관이 아니라 박정희 관련 서적만 취급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우리 동네 국회의원은 대체 이런 상황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좀 투덜거려 볼까 했더니 또 한번 아뿔싸! 우리 동네 국회의원은 워낙 예민한 분이라 그 이름도 함부로 들먹일 수 없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고소라도 당했다가는 큰일이 아닌가.
아무래도 이사를 잘못 온 모양이다. 그렇다고 다른 데로 피해갈 생각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나로 말하자면 10원 한 장 떼먹지 않고 세금 따박따박 내는 주인이 아닌가 말이다. 살고 있는 집은 세를 낸 것이지만, 마포구와 서울시와 대한민국으로 말하자면 나도 엄연한 주인이다. 절이 싫으면 뜯어고쳐 가며 살아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대공사가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일단 다가오는 4월11일, 총선부터 두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