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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어도 신화”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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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연구소 연구위원인 주강현 제주대학교 석좌교수가 이어도와 그 담론들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유토피아의 탄생≫(돌베개)을 출간했다. 이어도는  최근 중국과의 해상 관할권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곳이어서 눈길을 끈다. -편집자 주-


이어도 신화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
-민중의 심성사心性史로 본 ‘섬―이상향’의 탄생-


최근 중국과의 해상 관할권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어도를 20세기에 만들어진 신新전통으로 새롭게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 출간되어 주목된다. 이 책의 저자는 제주대 석좌교수이자 민속학자, 해양문명사가인 주강현 교수. 전작 『마을로 간 미륵』을 통해 미륵정토를 통한 민중의 대망待望 체계를 얘기했던 저자는, 이번에는 “바다의 심장”인 섬으로 눈을 돌려 우리식 ‘섬-이상향’의 특질과 그 속에 담긴 민중의 대망체계를 탐구한다.


이 책은 인류의 신화와 민담 속 가장 매혹적인 주제의 하나인 유토피아 이야기를, 그 무대가 되는 ‘섬’과 유토피아 담론의 생산,확산 주체인 ‘민중’의 심성사心性史 측면에서 읽어내고 있다. 여기서 논란이 예상되는 이어도 연구는, 저자가 직접 제주 도민을 중심으로 한 현지조사와 관련 문헌연구를 병행하여 쓴 표본연구로 이 책의 보론에 담겼다. “이어도 고고학”이라고 명명한 이 연구에서 저자는, “유토피아 세계의 기본 축은 섬을 중심으로 움직여왔고 그러한 세계사적 전통에서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며,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희망의 출구를 찾고자 했던 민중들의 심성구조가 ‘섬-이상향’ 담론을 지속시켜온 동력이었고, ‘이어도-이상향’ 담론의 형성과정에서도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이어도 신화의 탄생 원인을 제주민의 심성구조와 인류 문명의 오랜 연원을 지닌 ‘섬-이상향’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형식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고대 아틀란티스부터 조선시대 삼봉도, 해랑도, 무릉도(울릉도)까지 동서고금의 ‘섬-이상향’ 담론의 궤적을 살피는 것이 본론, 오늘날 우리의 대표적인 ‘섬-이상향’으로 자리매김한 이어도를 그 탄생부터 전면적으로 재검토한 연구가 보론이다. 저자는 실체가 불분명했던 전설 속 이어도가 어떻게 20세기 지식인들의 손을 거쳐 우리 시대 대표적인 ‘섬-이상향’ 아이콘으로 부상했는지, ‘섬-이상향’ 서사가 탄생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이어도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산물

이어도가 20세기에 만들어진 산물이라고 한다면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기존 전설 속 섬으로 알려진 이어도가 예부터 구전되어 온 제주도의 이상향이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저자 역시 이어도 연구를 진행하기 전까지는 “환상의 섬 이어도의 상징적 징표가 너무 강렬하여 감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고 고백했을 정도. 그럼 저자가 “학문적 도발”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이어도를 20세기의 산물로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저자의 일차적인 의심은 제주의 토박이들인 노년층과 해녀집단에서 이어도 전설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는 데서 비롯한다.

누군가 ‘어부 하나가 죽으면 적어도 100년의 역사가 사라진다’는 말을 한다. (……) 그런데 그 제주 노인들의 ‘기억창고’에서 이어도라는 이상향 담론이 보편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다시 말하여 현지조사방법론에 기초하여 수행된 개별 및 집단 면담에서도 이어도가 비상식적일 만큼 드러나지 않고, 더군다나 이어도 담론의 주체여야 할 해녀집단에서도 이어도가 간과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 「보론」, 207쪽

또 저자는 이어도를 기록한 고문헌이 전무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오래전부터 전승되어왔다는 통설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현재와 가까운 시점인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조차 이어도에 대한 관련 기록을 문헌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는 고문헌 『남사록』과 『표해록』에 각각 등장하는 제여도와 초란도를 이어도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는 입증이 불가능하거니와 해당 문헌 기록에 비추어 추정되는 섬의 위치가 현재 이어도의 위치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신뢰성을 갖기 힘들다”고 역설한다. 심지어 제주 무가巫歌는 물론 제주 속담사전에조차 이어도에 대한 한 줄 언급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이어도가 근래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저자는 이어도의 최초 유포자인 일본인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를 주목한다. 다카하시는 1926년 조선총독부 법문학부 교수로, 1929년부터 1935년까지 한국의 민요를 조사한 인물이다. 저자는 다카하시가 제주 민요에서 채록한 후렴구 가운데 ‘이어도사나’ 등에서 이어도를 즉자적으로 ‘이어島’라고 섬으로 설정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다카하시의 ‘해석’이었을 뿐인 그 표현을, 이후 학자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논문에 가져다 쓰고, 잘못된 그 논문이 신화가 되어 고정관념으로 귀착되었다는 것이다(「보론」, 219~223쪽).

‘이어도’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마라도 남서쪽 152킬로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곧 오늘날 우리가 ‘이어도’라고 호명하는 암초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암초는 최초로 1900년 영국 상선에 의해 보고되어 ‘소코트라 암초’로 해도에 등재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암초를 다시 파랑도로 명명되고, 일제는 일본 본토와 중국 대륙을 잇는 해저케이블 설치를 위해 이곳에 육상구조물 설치 계획을 세운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1984년 제주도 KBS팀과 제주대학의 공동탐사로 최초로 이 암초의 실체가 확인되었다. 그때부터 이곳을 전설의 섬 이어도와 연결 짓는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며, 1987년 제주지방해양수산청에서 파랑도를 공식적으로 이어도로 해도에 기재하기에 이른다. 다카하시 이후로 민속학계·문학계 등에서 주장하던 ‘상상의 섬 이어도’가 파랑도 그곳임을 국가적으로 명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연구처럼 ‘이어도’가 그 이름의 기원은 물론이거니와 그 전설의 존재 여부조차 불명확한 20세기의 작품이라면 문제는 좀 복잡해진다. 현재의 이어도를 그 이름을 호칭할 만한 마땅한 역사적·신화적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 이런 도발적인 내용을 담아야 했기에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조심스럽게 ‘불온한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인다. 자신의 연구에 불편함을 느낄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함이다.

이어도를 심성지도에 등재시킨 제주민

그럼에도 저자는 정작 “이어도 전설이 오랜 구전의 습득물인가 아닌가 하는 진실게임”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보다는 해도에는 존재하는 않는 이어도란 섬을 자신들의 심성지도에 등재시킨 “제주민의 망탈리테(심성구조)”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어도 연구는 민중의 심성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소한 오류나 착시”에서 출발한 이어도 담론을, 왜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접수했는가”하는 저자의 물음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일차적으로 제주민이 경험한 역사적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제주도는 삼다三多에 더하여 삼재三災의 섬이다. 수재·한재·풍재가 겹쳐서 흉년이 연이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은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중앙정부에 보내야 했던 각종 세금과 관리의 횡포였다. 대책 없는 착취는 제주도에 민란이 그치지 않게 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착취가 극심하였으니 제주민의 역사적 DNA 안에는 본능적으로 중앙의 몰염치에 가까운 수탈을 저어하는 그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 그 본능적 저항은 ‘육지것’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 「보론」, 279쪽

제주는 한때 독립왕국이었으나 육지 복속 이후 오랫동안 역사적 소외를 겪어왔고, 권좌에서 밀려난 정치인들의 유배지 또는 대규모 민중반란의 무대로도 종종 등장하였다. 20세기까지 이어진 제주민의 고난으로 점철된 삶과 역사적 트라우마가 ‘이어도-이상향’ 담론의 증폭과 확산에 일조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이어도-이상향’ 담론이 세계 보편적으로 등장했던 ‘섬-이상향’ 담론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주민들의 역사적 상흔과는 무관하게, “미궁의 섬을 이상향으로 설계해나가는 심성사적 운동”이 담론의 주체자들 사이에서 집단적으로 수행되었다는 것. 이 같은 해석을 통해 저자는 ‘이어도-이상향’을 20세기에 한국에서 펼쳐진 ‘섬-이상향’ 담론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으며, ‘섬-이상향’의 장기지속성을 확인시켜주는 귀중한 표본으로 자리매김한다. 이처럼 이어도 탄생의 저변에 고대 아틀란티스를 꿈꿨던 인류의 ‘섬-이상향’의 DNA가 그대로 흐르고 있다는 주장은 오늘날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조선시대, 섬은 왜 반란의 무대가 되었나

『홍길동전』의 율도국, 『허생전』의 무인도 개척에서 보듯 우리 고전소설 속에는 종종 ‘허구의 섬’들이 등장하며, 그 섬들은 대개 역모의 장소로 간주된다. 섬이 반란의 무대로 여겨졌던 것은 나름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저자는 당시 조선에서 관의 감시를 피해 “양병하고 기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서남해안의 목장으로 이용되던 해도”였으며, “해도에는 많은 유민이 몰려 군사력을 가진 저항집단을 형성”했음을 지적한다. 게다가 섬은 정치적 실권을 잃은 권력자들의 유배공간이기도 했다. 18~19세기 조선에 널리 퍼진 ‘진인 해도기병설’(진인이 해도에서 거병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 것)도 그런 역사적 맥락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저자는 이런 역사풀이에만 만족하지는 못한다. 실제 이런 와언이 그렇게 급속히 퍼져나가고 조선사회가 경기를 일으킬 만큼 반응했던 것은 또 다른 설명이 요구된다고 본다. 곧 와언의 폭발적인 확산 배경에는, 그 신빙성과는 무관하게 ‘어떤 이상향에서 진인이 나타나 그들을 고통 속의 현실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민중의 기대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양반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벗어나 낙토에서 살고픈 민중들의 대망이 ‘섬-이상향’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고문헌에 이따금 도깨비처럼 등장하는 괴섬[怪島]들에 주목한다. 세종조에 함길도 연해민들 사이에서 동해상에 나타났다는 요도蓼島, 시간을 건너뛰어 성종조에 강릉 부근 동해에 나타났다는 삼봉도三峯島 등, 수세기에 걸쳐 동해에서는 새로운 섬이 발견되었다는 와언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조정은 모란을 꾀할지도 모를 그 미지의 섬을 찾기 위해 수색작전을 펼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한다(125~140쪽). 이처럼 저자는 조선시대에 신출귀몰 등장했던 괴섬은 누군가의 착시와 착각으로 간주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비옥한 토지에 세금 걱정이 없는 낙토”를 꿈꾸었던 당대 민중들의 심성구조를 이해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역설한다.

■ 지은이

주강현 :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지식노마드’ 인. 해양사·문화사·생활사·생태학·민속학·고고학·미술사·신화학 등에 관심을 두고 ‘분과학문’이라는 이름의 지적·제도적 장벽을 무력화하며 전방위적 학제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경희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문화재학 협동과정에서 두 번째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국역사민속학회장을 지냈고 제주대 석좌교수, 해양문화재단 <해양과 문화> 편집주간, 해양문화연구원장, 이어도연구회 해양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2012 여수세계박람회 해양수산자문위원으로 해양문명도시관과 주제관을 자문하고 있다.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전 2권),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관해기》(전 3권), 《독도견문록》, 《적도의 침묵》, 《돌살―신이 내린 황금그물》, 《두레―농민의 역사》 《왼손과 오른손》 ,《북한의 우리식 문화》, 《굿의 사회사》 《등대》 《마을로 간 미륵》 《조기에 관한 명상》 《黃金の海 ·イシモチの海》 등과 어린이를 위해 쓴 《강치야 독도야 동해바다야》 《등대와 괭이갈매기의 꿈》 등 40여 권에 달하는 저서가 있다. 번역서로 《인디언의 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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