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무영기념사업폐지를위한음성군대책위원회(대표 차흥도 목사, 이하 이무영대책위)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파 찬양은 안 된다고 날을 세웠다.이무영대책위는 이날 오후 3시, 충북 음성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친일파 이무영(1908~1960)의 기념사업은 폐지돼야 한다”며 지방 신문 ‘동양일보’의 기념사업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또한, 음성군에서 향토민속자료전시관에 전시한 이무영 관련 자료 철거와 음성문화원이 건립한 설성공원 내 이무영 시비, 이무영 생가 안내판 철거 등을 군에 요구했다.
이무영대책위는 기자회견문에서 “오늘 우리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이무영은 일급친일파로 더 이상 음성의 자랑이 아니라, 음성의 수치이기에 이무영 기념사업은 더 이상 이뤄져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대책위는 이어 “이무영는 일제가 요청하는 문학작품을 생산수량전임제를 통해 생산하자고 주장했다”며 “무적황군의 활약상을 일본어를 해독하지 못하는 조선인에게 널리 알리려 대동아전기를 집필했던 사람”이라고 고발했다.대책위는 “일제수탈정책인 자작농 창설과 일본어 습득이란 주제를 문학작품마다 반복했다”고 덧붙였다.
|
차 위원장은 이어 “일부 농민문학이란 성과만 보고 농민문학을 통한 일제의 농민수탈을 묵인하는 것은 앞으로 이 나라를 책임 질 후손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도 지난 17일부터 이무영 추모행사인 ‘무영제’를 사실상 주관해 온 ‘동양일보’ 앞에서 폐지시위를 벌였다.
이무영의 친일 행적 살펴보니
이무영의 친일행각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와 친일인명사전에 낱낱이 드러나 있다.진상보고서에는 48쪽, 친일인명사전에는 7쪽에 걸쳐 이무영의 친일활동상과 친일문학의 구체적 내용이 적시돼 있다.
1908년 음성에서 태어난 이무영은 1920년까지 충주에서 자라며 학교를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가 가토 다케오로부터 문학수업을 받는다. 1929년 귀국 후 교사, 출판사 직원을 거쳐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며 소설가로 활동했다. 동아일보를 그만둔 1939년 경기도 시흥에 정착한 뒤에는 농민문학 창작에 열중했다.
그의 작품에 친일이란 먹구름이 드리운 건 이때부터였다. 그는 1942년 조선총독부 관변단체인 조선문인협회의 소설·희곡회 상임간사를 맡았으며 같은 해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일본어 신문 ‘부산일보’에 일문 장편소설 ‘청기와집’을 연재했다. 이 작품은 조선인 작가가 일본어로 쓴 최초의 연재소설이다. 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홍콩을 점령할 때까지를 시대배경으로 하는데 청기와집이라 불리는 양반 권씨 집안은 ‘조선’을 상징한다. 청기와집의 가장 권 대감은 ‘사대주의 구사상’, 아들 권수봉은 ‘영미 제일주의 사상’, 손자 권인철은 ‘일본의 신사상’을 대변한다. 권 대감이 세상을 뜨고 수봉도 마음을 바꾸어 조선신궁을 참배하게 됐으며, 인철은 젊은 일본인으로서 개간사업에 몰두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무영은 같은 시기 간도의 조선인 개척촌을 돌아보고 온 뒤 좌담회와 집필활동 등을 통해 “일본의 분촌이 조선에서도 시행됐으면 좋겠다”는 주장을 펼친다. 친일인명사전은 이에 대해 “일제가 조선에서 행한 정책적 농업식민을 조선인이 만주에서 재현하기를 기대한 아류제국주의”라고 비난했다.
해방 후 대학에 출강하다 6·25 전쟁 당시 군에 입대한 이무영은 1955년 국방부 정훈국장(해군대령)으로 예편한 후 1960년 작고 전까지 친일파 청산을 폄훼하거나 친일파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묘사한 다수의 글을 남겼다.
이무영 기념사업 해마다 열려…”기념사업비 없애야”
|
충북 음성에서는 이무영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사망 일을 즈음해 해마다 열리고 있다. 음성군은 일제강점기 농민문학의 대부로 추앙받았던 이무영의 삶을 조명하는 행사를 후원하고 있으며, ‘동양일보’는 이무영의 이름을 딴 ‘무영제’를 12년째 사실상 주관하고 있다.1985년 음성 설성공원에 이무영 문학비가 건립됐으며, 1994년부터는 해마다 4월이면 무영제가 열린다. 그의 문학비가 있는 설성공원 앞길은 ‘무영로’로 명명됐으며, 생가엔 흉상과 표지, 표석, 정자 등이 설치됐다.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 2층 한 켠에는 이무영의 작품을 비롯해 친필·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1998년부터 무영문학상이 제정돼 무영제 때 시상하고 있으며,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500만 원의 시상금이 주어지고 있다. 1회 무영문학상은 이무영씨의 제자인 이동희씨(땅과 흙)가 수상했으며, 2회 김주영씨(아리랑 난장), 3회 김원일씨(슬픈 시간의 기억), 4회 이현수씨(토란), 5회 한만수씨(하루)가 수상했다.
또한 6회 심윤경씨(달의 제단), 7회 조용호씨(왈릴리 고양이 나무), 8회 김영현씨(낯선 사람들), 9회 이동하씨(우렁각시는 알까?), 10회 김형경씨(꽃피는 고래), 11회 전성태씨(늑대), 12회 김도연씨(이별 전후사의 재인식)가 문학상을 받았다. 대책위 이상정 집행위원장(48·음성농민회장)은 “이무영은 마지못해 한 친일이라기보다 신념을 가지고 민족을 배신한 일급 친일파”라며 “무영문학상 수상자들도 상을 자진 반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04.18)
|
|
|
- 82079891.JPG (27.83 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