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소장이 18년 만에 평론집 “불확실 시대의 문학”을 펴냈다. ‘문학의 길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오랜 기간 저자가 기고해 온 글 가운데 거대담론만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21세기 한국 민족문학의 방향, 20세기 민족문학사 방법론, 친일문학, 분단문학 등 한국문학 전반에 걸친 점검과 평가가 담겨 있다. 도서출판 한길사 (회원할인 구입문의: 02-969-0226) -편집자-
문학평론가 임헌영, 민족문제 연구에서 문학으로 18년 만의 귀향
-불확실 시대, 한국문학 전반에 대한 거대담론을 제기한다-
변함없는 문학의 화두, 인간의 문제, 역사의 문제, 민족의 문제
하늘의 별들이 총총하여 가야 할 길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 첫 문장에서 말한 이 화려한 별의 수사는 21세기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시대의 이정표가 되어줄 별 하나를 희구하지 않았던 때가 있을까. 지금 우리는 별이 없는 시대의 고뇌가 아니라 도리어 별이 너무 많아 그 진위조차 판별하기 어려운 ‘불확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갤브레이스가 국민복지 확대와 공익경제 강화를 실현하지 않으면 경제의 앞날을 전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을 때와는 사뭇 달리, 급속한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 이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예측 불가능함은 인간의 운명이 되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미한 세상의 변화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의 제 문제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시대의 방향타 역할을 해주어야 할 문학은 목소리가 작아졌거나 자신조차 길을 잃고 말았다. 문학의 위기가 진작부터 거론되었던 이유다. 원래 문학이란 다른 예술분야 전반에 걸쳐 그 선도성과 진보성을 가지고, 가장 자유분방하게 부조리한 권력과 야만의 성채를 부수고, 모순과 편견, 허위를 고발하며 우리 사회에 맑은 숨을 불어넣으려 분투해왔다. 인간의 문제, 역사의 문제, 민족의 문제를 붙잡고 고민했던 지난 시대의 문학은 빛이 바랜 담론이 돼버린 듯하다. 유행처럼 번진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 아래 눈앞의 작은 현상, 미시담론에만 매달려왔다. 더불어 이런 문학의 위기는 비평의 위기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18년만에 선보이는 평론집
원로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그동안 구시대의 유물처럼 내치고 외면했던 ‘거대담론’을 들고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문학의 집으로 귀향했다. 지난 해 20돌을 맞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직을 9년간 맡아오며 친일청산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민족사적 문제,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문학의 길을 다시 생각한다’는 부제가 달린 이번 평론집 『불확실 시대의 문학』은 저서 출간으로만 보면 『우리시대의 소설읽기』 이후 18년 만의 문학으로 귀환인 셈이다. 그런 만큼 “세월이 갈수록 우리의 현실 전체가, 사소한 삶 낱낱이 역사와 정치권력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을 절감하고, 미학과 진리조차도 정치권력에 의해 날조되는 시대”에 대한 원로 비평가의 선 굵고 힘 있는 문학적 진단이 담겨 있다.
불확실한 시대에 더욱 요청되는 거대담론의 제 문제
스마트폰 2000만 시대의 돌파로 상징되는 눈부신 지식정보 소통의 소셜네트워크 사회에 살고 있다지만, 오늘날 우리 삶은, 여전히 지난 세기에 그래왔던 것처럼, 많은 부분이 고삐 풀린 정치와 경제의 폭군적 횡포 앞에 너무나 쉽게 휘둘리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어떤 공고한 민주주의와 번영, 평화도 한 고약한 정치가에 의하여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고,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으로도 예기치 못한 상황을 유럽이나 미국의 예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한” 경제위기는 우리 안에서도 절감하는 현실이다. 이런 현상 앞에 ‘불확실’에 대한 저자의 명칭 규정과 애착은 단순한 노파심이 아니다.
거대담론에 대한 환기는, 뉴밀레니엄이라 환호작약했던 21세기라는 것이 별난 세기가 아니라 “결국 20세기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아니 그 이전 시대의 모든 미해결 과제(혁명, 자본, 제국주의)들이 동시에 작동되는 혼란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비평가의 눈에는 “오늘의 시대란 곧 혁명의 시대인가 하면 자본의 시대이기도 하고, 제국주의의 시대인가 하면 극단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불확실 시대’란 경고성 술어이자 바람직한 역사 창출을 위한 각성제로서 호명해내고 있다.
폭넓은 인문학을 배경으로 하는 임헌영 문학비평
평론가 임헌영은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뒤, 『월간독서』『한길문학』『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주간을 지냈고,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한국현대문학사상사』『문학과 이데올로기』『분단시대의 문학』 등 평론집을 펴내며 문학활동을 펼쳐왔다. 엄혹한 시절, 1974년 긴급조치 시기에 문학인사건으로, 또 1979년부터 1983년까지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현재까지 몸담아 오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일 역시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문학인이자 지식인인 그에게 막중한 소임이었다. 문학에서 오래 떠나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문학을 열심히 해왔다. 이번 평론집에 묶인 논문만 해도 2000년대 이후 지난 10년간 꾸준히 발표한 글들이며, 일반인들을 위한 문학관련 강좌를 20년간 해오고 있으며, 매년 두 차례 인문학기행도 주선해오고 있다. 폭넓은 인문학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비평은 근대문학, 해외동포문학, 북한문학 등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이번 책을 시작으로 수필, 사회비평집, 역사기행집 등 그동안 미뤄 놓았던 원고들이 책으로 속속 엮이고, 하반기에는 문학사의 한 단면이 될 『금서와 필화의 문화사』가 출간될 예정이다.
비평의 위기, 평론가의 역할을 묻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비평은 어느 위치쯤 와 있을까. 한때 성행하던 월평조차 사라진 지금, 비평가가 대중적인 언론매체에 등장할 구실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문지상에 등장하는 도서 광고서평에서조차 비평가의 평보다는 독자의 리뷰가 더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비평이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평론가 임헌영은 비평계가 1970년대를 기점으로 현장비평보다는 이론에 치중하면서 대중의 외면을 자초했다고 비판하며 비평 본연의 임무를 재점검하며 독자에게 다가갈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비평가의 역할을 확장시켜 해석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첫째, 과잉공급되고 있는 연구식 비평보다 성실한 현장비평이 중요함을 일깨워야 한다. 둘째, 시대적인 변모에 따라 대중문화·예술 영역에서 비평가들이 활동해야 한다. 셋째, 총체적인 전방위 지식인으로서 활동해야 한다. 넷째, 문학평론만 아니라 부단히 잡지를 발간하고 동인이나 단체를 결성·운영하며 등단부터 포상에 이르는 문학 재생산에 일조해야 한다. 다섯째, 당대의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민족사적 안목으로 역사적인 평가를 내려 후세에 남을 작품을 걸러주고 그 재능을 이어줄 문학교육에 힘써야 한다. 독자의 언저리에서, 독자들이 양질의 책을 선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비평가의 기본 역할이라는 의미이다. 『불확실 시대의 문학』은 이런 평론가의 역할에 충실한 문학비평서이다.
민족문학에서 세계화 문제까지, 문학의 역활을 재확인한다
제1부 「지구화와 한국문학」은 20세기가 부과한 숱한 미결과제를 안고 맞게 된 21세기의 한국문학을 민족문학적인 관점에서 검토·전망한 글을 엮었다. 동아시아와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한국의 민족문학의 향방은 어디인가를 거대담론이라는 틀 안에서 추적해보았다. 저자는 여기서 ‘민족문학’ 관점에 주목하는데, 민족문학이 결국 안으로는 다문화, 밖으로는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문학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는 입장을 취한다.
제2부 「문학사와 그 주변」은 근대 이후 1세기에 걸친 한국문학 전반에 대해 거대담론의 관점에서 재점검하고 평가한다. 20세기의 우리 민족문학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한국 현대문학사 서술방법론 고찰」, 일제 식민지 시기의 문단이 논쟁을 통해 발전·성숙되어온 과정에 대해 살펴본 「현대시 논쟁사의 비평적 성찰」, 외세의 침략 앞에서 문학이 반제국주의 의식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살펴본 「반외세 항쟁문학론 서설」, 남북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문학적 성과에 대한 점검을 다룬 「남북한 만남의 문학 변천사」, 이데올로기 시대에서 경제공동체의 시대로 넘어가는 현재 동아시아가 문학적으로 어떻게 교류하여왔는지를 살펴본 「동아시아문학의 교류와 전개과정」 등을 서술하고 있다.
제3부 「문학과 사회」는 거대담론으로서의 문학이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인 사실과 연관시켜 고찰한 글들을 담았다. 4·19혁명 세대를 재정의해보고 혁명 주도세력의 현대사를 주제로 한 문학을 살펴본 『4·19세대의 문화사적 의미』, 한국문학에 양반·민족 부르주아·재벌로 이어지는 부르주아의 실태를 추적한 『한국문학에 나타난 부르주아의 모습』, 빨갱이·좌익·종북좌파 타령에 사회 전체가 냉각화되는 한국의 현실을 ‘레드 콤플렉스’라 명명하며 이 콤플렉스의 형성 배경과 실체를 추적한 『레드 콤플렉스의 형성과정』, 통일운동 일환으로서의 실록문학의 위치를 재점검한 『통일문화 패러다임의 변모』 등, 우리 시대의 역사의 거울로서의 문학의 모습을 재확인한다.
제4부 「비평문학의 현장」은 비평문학에 관한 구체적인 글들을 모아 살펴본다. 저자는 양심적인 비평활동이 이단시되는 현실을 ‘현대 비평의 위기’라고 표현한다. “비평을 위한 비평이 아니라 창작자와 독자에게 봉사하는 비평의 진로를 모색하는 직업의식을 가진 비평, 비평활동의 직능적 기능을 회복하는 비평이 필요할 때임을 강조한다. 이의 일환으로 근현대 비평사에서 최장수했던 백철에 대한 점검을 다룬 『논쟁사로 본 백철』, 1970년대의 문학과 1980년대 유행했던 무크지 운동, 그리고 2000년대 다원화 시대를 맞이하여 비평문학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과 모색을 다룬다.
임헌영
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1974년 긴급조치 시기에 문학인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월간 독서』 『한길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주간을 지냈으며, 1979년부터 1983년까지 ‘남민전’ 사건으로 복역했다. 1998년 복권되어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장과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한길사에서 펴낸 리영희와의 대담집 『대화』와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 『한국현대문학사상사』를 비롯해 『문학과 이데올로기』 『분단시대의 문학』 『우리 시대의 소설 읽기』 등이 있다.
※관련기사
▶‘성실한 현장비평’ 역설한 임헌영, 18년 만에 새 문학평론집 (경향신문, 1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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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불확실 시대의 문학(임헌영 지음) 外 (헤럴드경제, 12.05.04)
▶[새 책] 불확실 시대의 문학(임헌영 지음) 外 (국제신문, 1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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