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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협정의 죄상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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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협정의 죄상을 묻는다


 


김삼웅 연구소 지도위원(전 독립기념관장)









 


 



 


이명박 정부는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한-일 군사협정을 비공개로 통과시켰다. 이 대통령이 외유중일 때 국무회의가 서둘러 이 협정을 처리하면서 그 이름에서 ‘군사’를 빼고 ‘한-일 정보보호협정’으로 협정 성격을 감추려고 한 것이나, 통상 국무회의 사흘 전에 보고되는 일반안건과 달리 즉석안건으로 올린 사실, 그리고 비밀리에 국무회의에서 처리했다가 하루가 지난 다음날에야 공개한 점 등은 국민을 속이는 꼼수다.


정부 대변인인 김용환 문화부 2차관이 “중요성을 몰라서” 이 안건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고, 국무회의가 끝난 뒤에도 설명하지 못했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국무위원들은 국정을 맡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고, 알고도 숨겼다면 대국민 사기다.


국무회의에서 누가 반대하고 찬성했는지를 밝혀서 국민과 역사 앞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토론 없이 전원이 찬성했다면 찬성 논리를 밝혀야 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총리 한규설과 법부대신 이하영은 끝까지 반대했다. 그리고 병탄 조약은 1910년 8월22일 창덕궁에서 강제 체결하고도 국민의 봉기가 두려워 숨겼다가 1주일 뒤인 8월29일 조선총독부 관보 제1호로 공표하는 꼼수를 두었다.


한-일 군사협정이 정당하다면 정부는 왜 꼼수를 부리는가. 왜 공청회를 열어 국민의 뜻을 모으려 하지 않는가, 어째서 국회의 논의를 들으려 하지 않는가, 이 대통령은 왜 당당하게 국무회의를 주재하지 못하는가.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역시 꼼수다. 꼼수로 국가 대사를 결정하려는 것은 공화제의 역행이다.



한-일 군사협정은 서둘 일이 아니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나 독도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왜곡 등도 그렇지만, 현실은 물론 미래의 영역에서도 살펴야 한다. 한-일 군사협정이 미국의 작품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3국의 군사동맹이 북-중-러 군사동맹의 빌미가 되고, 중국의 대북 결착, 대한 적대정책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미 대중국 통상 교역량이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합친 규모를 넘어선 지 오래됐다는 사실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미·일과 군사협정 동맹을 강행해 서해를 신냉전의 화약고로 만들려고 하는가? 왜 중국을 적대하여 우리 경제의 활로를 막으려 하는가? 조선조 광해군의 명·청 등거리 외교를 뒤엎고 집권한 친명사대주의 세력(인조반정)이 불러온 정묘·병자호란의 교훈을 이명박을 정점으로 하는 친미·친일 사대세력은 왜 외면하려 하는가?



명분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등을 내세운다. 세계사의 조류에 역행하는 북한의 3대 세습이나 핵미사일은 봉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의 국력과 군사력은 북한을 수십배로 압도한다. 여기에 주한미군까지 버티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군을 끌어들이려는 속셈은 무엇인가? 한반도 분단의 원죄인 일본의 죄상을 묻기는커녕 우리의 안보를 일본군에 의존하겠다는 발상의 근원은 어디인가?


고구려 연개소문이 오랜 독재 끝에 사망하자 삼형제의 권력다툼에서 밀린 장남 남생은 당에 항복하고 그 향도가 되어 고국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3남 남산이 물었다. “형님, 아무리 권력이 탐나기로 어찌 적군을 끌어와 동족을 멸하려 하십니까.” 사가는 말한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당이 아니라 남생이었다고. (한겨레, 1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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