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씨, 치밀하게 계획된 5.16이 불가피했다고?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제헌절을 하루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경선후보의 발언이 거의 역사 반동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2007년 대권 도전 때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규정하더니, 7월 15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에서는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며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오늘에 이른 데는 5·16이 초석을 만들었다’고 해괴 발언을 했다. 그리고 유신독재에 대해서는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슬그머니 말꼬리를 내렸다.
ⓒ민중의소리 만주 군관학교 졸업식에서의 박정희
만주 군관학교에서 싹튼 5.16 군사쿠데타
기가 막힌 일이다.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 전혀 아니었다. 4·19혁명 이전부터 박정희가 쿠데타를 준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4·19혁명이 일어나 쿠데타를 할 명분과 조건이 사라지자 4·19혁명 1주년이 될 때 혼란을 더욱 일으켜 쿠데타의 명분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민주당 정권이 박정희 일파의 군부쿠데타를 감지하고 이를 제어하려 하자 쿠데타를 예정 일자보다 앞당겨 일으킨 것이다.
한마디로 5·16은 권력에 눈 먼 정치군인들의 계획된 군사반란이었다. 미국 또한 1950년대 이미 박정희를 ‘정치적 지향과 야심이 강한 인물’로 주목하고 있었으며, 조갑제의 책에 따르자면 이용문 장군과 함께 정치적 야심을 키우던 인물이었다.
박정희의 정치권력 지향성은 일제강점기 그의 만주군 시절에 배태되어 있었다. 박정희의 학생 시절 일본의 관동군 참모부와 본토의 우익 장교들이 연계해 1931년 만주를 침략하고 1932년 만주국을 세웠다. 만주국은 형식적으로는 독립국이었지만 실제로는 관동군이 만주국을 통제하고 있었다. 또 1930년대 일본 본토에서는 ‘국가 개조’와 ‘소화유신昭和維新’을 내세우며 극우 군인들이 수 차례 유혈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박정희는 1940년부터 만주 신경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대망의 황군(皇軍) 장교가 되었다. 박정희는 군부가 정치를 장악한 만주국과 일본군국주의 시대에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군부의 정치 개입을 극히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가 훗날 10월유신을 내세운 것도 일본의 명치유신과 소화유신을 본뜬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는 1930년대 이래 소화군부파시즘의 아들이다. 박정희의 내면 세계나 당시 4·19혁명 이후 상황을 볼 때 5·16은 구국의 일념과 전혀 무관했다. 권력에 눈먼 일군의 정치군인들이 쿠데타를 통해 헌법을 유린한 반역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교과서에도 쿠데타로 규정한 것을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를 위해 헌법 파괴마저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국가가 혼란하다고, 빈곤에 허덕인다고 쿠데타가 정당화된다면 이 세상에 어떤 쿠데타라도 정당화할 수 있다. 사실 박근혜 후보의 발언은 불가피한 국면에서는 쿠데타도 용인할 수 있다는 민주헌정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위험한 역사인식을 깔고 있다.
ⓒ민중의소리 박정희
5.16이 있어, 유신이 있어 대한민국 있다?
박근혜 후보는 여기서 더 나아가 5·16쿠데타가 있었기에 오늘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가 있다는 주장이다. 원인과 결과를 이렇게 단순하게 연결하는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의 단순 무지함에 놀랄 따름이다. 차라리 박정희가 태어났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말하는 게 속이나 편하겠다. 박정희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몇 가지 수치로만 보자.
18년 6개월, 6738일. 1961년 5월 16일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박정희가 집권한 기간이다. 대한민국 64년 가운데 무려 18년 이상을 혼자 국정을 농단한 것이다. 그리고 집권 6738일 가운데 군정이 945일이었다. 전체 집권기간 중 14퍼센트에 해당한다. 유신시대 박정희가 발동한 긴급조치 가운데 제9호는 그 기간이 무려 1669일 9시간이었다. 4년 6개월 이상 온 국민이 감옥 아닌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기소된 민주 인사들의 선고 총량 합계는 1650년이었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한일회담을 진행하면서 쿠데타세력은 아예 일본 기업으로부터 6천 6백만 달러를 받았다. 과거 적성국가인 일본과 한일회담을 진행하면서 뒷돈을 받아먹은 것도 총살감이거니와, 당시 민주공화당 총 예산의 3분의 2를 받아먹었으니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은 사실상 대한민국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이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1년 대통령선거 때 야당의 김대중을 꺾고자 무려 600억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그 해 국가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거액이 방방곡곡에 뿌려진 것이다. 어디 이 뿐인가. 박정희 정권은 대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칼텍스사로부터 4백만 달러, 걸프사로부터 3백만 달러의 정치헌금을 받고 한국의 석유산업을 이들 기업들에게 내어 주었다. 1973년 외화벌이 수단으로 ‘기생관광도 일종의 애국’(당시 문화공보부 총무과장 발언)이라며 국가 차원의 국제매춘산업을 벌여 국제사회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생산직 월 노동시간은 1978년의 경우 260시간 주당 65시간이나 되었다. 일요일을 제외하자면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중노동에 노동자들이 시달렸다. 여름방학 때가 되면 청량리역이나 서울역에서는 교외로 놀러가는 청년들의 기타를 압수했다. 기타를 치는 것 마저 퇴폐향락으로 규정한 것이다.
머리가 귀를 덮으면 장발이라고 해서 파출소에 끌려가 강제로 머리를 잘렸다. 여성들이 치마를 입으면 경찰이 줄자로 재서 무릎에서 일정 길이 이상 허벅지가 드러나면 즉각 미니스커트 단속에 걸려 길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대학가에서는 사복 경찰이 상주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경찰이 교실에 들어와 앉아서 강의 내용을 현장 검열했다. 히틀러 시대에 있었던 일들이 박정희 시대에 재현된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국가인가. 박근혜 후보는 이것이 정상적인 나라라고 보이는가?
박근혜 후보는 도덕성에서도 문제가 많다. 박 후보는 얼마 전 유신 때 본의 아니게 피해를 받은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박정희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혔다는 것인지 피해자들이 본의아니게 피해를 당했다는 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이런 모호한 발언으로 책임을 살짝 빠져나가는 태도는 공인으로서 책임성도, 도덕성도 결여한 것이다.
박정희 집권기에 민주화 운동을 목숨을 걸어야 했다. 붙잡히면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감옥을 나와도 먹고 살 길마저 막아버렸다. 감옥을 살고 나와도 보복이 지속되었다. 잔인함 그 자체였다. 이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가.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죽여 놓고 ‘본의 아니게’라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린 아이도 그렇게 사과는 하지 않는다.
쿠데타 미화하고 유신독재 평가는 후대에 맡기자?
ⓒ뉴시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 후보는 유신은 역사나 국민이 판단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역사가 판단하기 이전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게 도리일 것이다. 왜? 첫째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의 역사적 식견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게 당연하다. 어떤 역사인식을 가졌는지 유권자들은 알 권리가 있다.
두 번째로 박근혜 후보는 유신시대에 박정희의 딸로만 존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후보는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피격 사망한 이후 5년 이상 청와대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 유신독재 7년 가운데 5년 동안 그녀는 외국 사절을 접견하고 다양한 정치지도자를 만났다. 1976년에는 항간에 많은 의혹과 물의를 빚었던 최태민 목사와 함께 ‘새마음봉사단‘이란 것을 만들어 대외 활동을 전개했다. 봉사라는 외양을 띠었지만 새마을운동과 함께 정권의 외곽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냥 후대의 역사 평가에 맡기자고? 본인 스스로 5·16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미화하고 오늘날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박정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하면서 그 가운데 특히 혹심했던 유신시대에 대해서는 왜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며 발뺌을 하는가. 유신체제는 유례없는 1인 종신독재채제라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상식이다.
오로지 박근혜는 아버지를 감싸고 아버지를 찬양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을 자신의 역사관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 20대까지 거의 전 시기를 청와대에서 보낸 박근혜는 어쩌면 박정희를 대한민국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은 아버지가 만든 나라, 그리고 그 딸이 박정희의 유업을 계승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발언이 제헌절 전날 박근혜 후보가 국민에게 던진 메시지이다. 요컨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의 기본 정신마저 부정하는 발언을 제헌절을 앞두고 국민에게 선사한 것이다. (민중의 소리,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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