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은(41·여) 민족문제연구소 자료팀장은 어두컴컴한 역사관에 전등을 켜며 취재진을 맞았다. 김 팀장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지금은 관람객이 있을 경우에만 불을 켜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귀중한 일제시대 사료들, 창고에 그대로 ‘방치’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은 ‘3.1 독립선언서’ 원본 등 일제시대 귀중한 유물과 서적 6만여점을 소장하고 있지만 이곳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지 않아보였다.
식민지 시대의 실상과 친일 행적에 대한 세세한 자료를 수십년간 모아 전시하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교실 안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교육하는 장’으로서의 역사관의 의미가 무색해질 수 밖에 없기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귀중한 6만여점의 자료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사관에 전시된 것 외에도 수만점의 유물들이 역사관 지하실과 빈방 한켠에 보관돼 있다. 귀중한 사료들을 보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열악한 환경인 것이다.
서늘한 기온이 유지돼야 하는 유물보관실은 에어컨마저 고장나 후텁지근했고, 대부분의 고서가 비닐봉투 안에 넣어져 책장 안에 꽂혀있는 상황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실에도 유물들이 종이박스에 넣어져 쌓여있거나 바닥에 그냥 놓여있었다. 사람 한명 지나다니기에도 좁아 수만여점의 유물들이 어디 있는지도 찾기 어려워 보였다.
김 팀장은 “대개 박물관에서는 온도도 세밀하게 맞추고 보관할 때는 유물이 상하지 않도록 중성 비닐을 사용하거나 한지를 쓰지만 공간과 인력, 예산이 부족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시민역사관, 독립선언서 원본부터 일제 침략 정당화 ‘주사위놀이판’까지 소장
시민역사관은 겉으로 보기엔 허름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소장 자료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만만치 않은’ 역사관임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역사관 유물을 안내하던 김 팀장은 ‘3.1 독립선언서’ 원본을 역사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유물로 꼽았다. 3.1 독립선언서 원본은 함경도에 근무하던 일본인 검사의독립운동가 기소 자료에서 발견됐다.
독립운동 당시 뿌려졌던 선언서를 일본인 검사가독립운동가의 죄를 입증하는 증거자료로 압수한 것이었다. 현재 독립기념관과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에 각각 1점만이 보관돼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다.
김 팀장은 “3.1운동이 유인물의 형태로 점차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파가 됐으며 목숨을 건 적극적인 운동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의미를 설명했다.
역사관에는 강제병합 전후 시기의 훈장자료들도 남아있다. ‘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에 대한 자료들로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도운 주요 근거가 됐다.
역사관 한쪽 벽에 걸린 일제시대 신문 부록으로 발간된 주사위 놀이판은 놀이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일본을 제외한 동양의 여러나라들을 비하하고 침략을 정당화하도록 구성돼 있었다.
이밖에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그려진 위안소의 모습이나 이제는 백발이 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그린 그림 등은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다.
◈ ‘일희일비’ 아닌 국민들의 진지한 역사적 고민 필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올림픽 축구에서 ‘독도는 우리땅’ 세리모니, 위안부 소녀상 말뚝 테러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최근 한일 역사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매우 커지고 있다.
하지만 텅빈 역사관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 일제시대 우리 역사를 깊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김 팀장은 “왜 그런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나를 제대로 알아야 겠다는 자발적인 생각이 우리 국민들에게 부족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단순히 분노나 호기심 차원을 넘어서서 그 다음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
김 팀장은 “이런 자료를 보며 역사를 공부하고 지금 우리가 어디 서 있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역사를 바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며 “감정적이고 일시적인 대응은 일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오히려 양국 관계만 나쁘게 만들 뿐”이라고 조언했다. (노컷뉴스, 12.08.16)
식민지 시대의 실상과 친일 행적에 대한 세세한 자료를 수십년간 모아 전시하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교실 안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교육하는 장’으로서의 역사관의 의미가 무색해질 수 밖에 없기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귀중한 6만여점의 자료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사관에 전시된 것 외에도 수만점의 유물들이 역사관 지하실과 빈방 한켠에 보관돼 있다. 귀중한 사료들을 보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열악한 환경인 것이다.
서늘한 기온이 유지돼야 하는 유물보관실은 에어컨마저 고장나 후텁지근했고, 대부분의 고서가 비닐봉투 안에 넣어져 책장 안에 꽂혀있는 상황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실에도 유물들이 종이박스에 넣어져 쌓여있거나 바닥에 그냥 놓여있었다. 사람 한명 지나다니기에도 좁아 수만여점의 유물들이 어디 있는지도 찾기 어려워 보였다.
김 팀장은 “대개 박물관에서는 온도도 세밀하게 맞추고 보관할 때는 유물이 상하지 않도록 중성 비닐을 사용하거나 한지를 쓰지만 공간과 인력, 예산이 부족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시민역사관, 독립선언서 원본부터 일제 침략 정당화 ‘주사위놀이판’까지 소장
시민역사관은 겉으로 보기엔 허름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소장 자료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만만치 않은’ 역사관임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역사관 유물을 안내하던 김 팀장은 ‘3.1 독립선언서’ 원본을 역사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유물로 꼽았다. 3.1 독립선언서 원본은 함경도에 근무하던 일본인 검사의독립운동가 기소 자료에서 발견됐다.
독립운동 당시 뿌려졌던 선언서를 일본인 검사가독립운동가의 죄를 입증하는 증거자료로 압수한 것이었다. 현재 독립기념관과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에 각각 1점만이 보관돼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다.
김 팀장은 “3.1운동이 유인물의 형태로 점차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파가 됐으며 목숨을 건 적극적인 운동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의미를 설명했다.
역사관에는 강제병합 전후 시기의 훈장자료들도 남아있다. ‘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에 대한 자료들로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도운 주요 근거가 됐다.
역사관 한쪽 벽에 걸린 일제시대 신문 부록으로 발간된 주사위 놀이판은 놀이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일본을 제외한 동양의 여러나라들을 비하하고 침략을 정당화하도록 구성돼 있었다.
이밖에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그려진 위안소의 모습이나 이제는 백발이 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그린 그림 등은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다.
◈ ‘일희일비’ 아닌 국민들의 진지한 역사적 고민 필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올림픽 축구에서 ‘독도는 우리땅’ 세리모니, 위안부 소녀상 말뚝 테러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최근 한일 역사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매우 커지고 있다.
하지만 텅빈 역사관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 일제시대 우리 역사를 깊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김 팀장은 “왜 그런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나를 제대로 알아야 겠다는 자발적인 생각이 우리 국민들에게 부족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단순히 분노나 호기심 차원을 넘어서서 그 다음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
김 팀장은 “이런 자료를 보며 역사를 공부하고 지금 우리가 어디 서 있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역사를 바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며 “감정적이고 일시적인 대응은 일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오히려 양국 관계만 나쁘게 만들 뿐”이라고 조언했다. (노컷뉴스, 12.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