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일제 특수광물 약탈 현황 드러나…정부 조사결과공개

533

[서울=뉴시스]이재우 기자 = 일제 강점기 일본이 특수광물을 약탈하기 위해 자행했던 광산 개발 실태를 알아볼 수 있는 정부 조사결과가 나왔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일제가 알루미늄 제련 원료인 명반석(明礬石)을 생산하기 위해 전남 해남군 옥매산 광산에서 자행한 강제동원 실태 조사 결과 보고서를 19일 공개했다.

옥매광산 명반석 채취 허가는 일본인 니시자키 쓰루타로(西崎鶴太郞)가 1916년 받았다. 이후 시카마(飾磨)화학공업, 아사다(淺田)화학공업 등으로 광업권자가 바뀌었고 1924년 본격 채굴이 시작됐다.

조선광상조사요보 등에 따르면 1917~1931년까지 매년 5000~1만t이 채굴돼 일본으로 보내졌다. 만주사변 이후인 1932년부터 수탈량이 급증, 1935년과 1936년에는 연평균 생산량의 8~10배 를웃도는 8만1500t과 11만4500t이 채굴됐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부터 생산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미발견 상태지만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더 많은 명반석이 약탈됐을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했다.

실제 조선총독부는 1938년 ‘조선중요광산물증산령’을 통해 명반석 등 25종을 국방산업상 중요성을 가지고 있어 급속도로 증산할 필요가 있는 중요광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명반석은 중요광물로 지정되면서 일제 필요에 의해 국가관리하에 있는 공출품목이 됐다. 아사다화학은 1944년 지정 군수회사로 지정됐고 사업장과 노무자 모두 사실상 무기한 징용됐다.

일본으로 보내진 명반석은 알루미늄 제조 등에 사용됐다. 당시 일본 신문 등에는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알루미늄 확보에 힘쓰던 일본이 조선에 풍부하게 매장된 명반석에 들떠하는 장면이 수차례 묘사된다.

조선총독부광산요보 등에 따르면 1929년과 1932년 옥매광산 광부는 선광부와 운반부, 잡부 등 각각 92명과 95명이다. 

이후 관련 자료는 없지만 전시 알루미늄 수요 확대에 맞춰 일시 징용자를 합쳐 300~4500명이 일했다고 당시 노무자들은 진술하고 있다.

노무자들은 1945년 초반 제주도 군사기지 건설에 강제징용됐고 해방 후 귀향 과정에서 수상사고로 대량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일제는 자국민만 우선 구조한 후 조선인은 구조하기 않았다고 피해자들은 진술하고 있다.

보고서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연구나 관심은 대부분 국외 동원자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과거 옥매광산 관련 연구도 제주도 군사기지 건설을 위해 강제징용된 광산 노동자와 이후 귀국시 해상사고에 대한 연구는 수차례 이뤄졌으나 옥매광산 자체에 대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 보고서는 국외 뿐만 아니라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도 지원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 않는 아사다화학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과 전범기업 지정 등도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ironn108@newsis.com


<뉴시스>2012-11-19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