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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박정희의 민낯, 줄서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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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다큐 <백년전쟁> 관람기


<오마이뉴스> 2012-11-26 | 강성률 교수


 










  300석 규모의 <백년전쟁> 시사회 좌석이 부족해 많은 시민들이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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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영화계에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두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영화 총관객이 1억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다큐 <두 개의 문>이 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이다. 우리에게 다큐는 영원히 변방의 장르였다. 게다가 정치적인 다큐는 변방 중의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산 참사의 비극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하면서 파헤친 <두 개의 문>이 엄청난 흥행을 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두 개의 문> 때문인지, 정치적인 영향 때문인지 이후 <맥코리아> <MB의 추억> <유신의 추억> 같은 정치적 다큐가 대중들의 기대를 받았다. 여기에 <남영동 1985> <26년>까지 보태면 하나의 자장을 만나게 된다. 이 자장 안에는 다큐에서 극영화까지 폭넓게 포진하는데, 이를 ‘영화 저널리즘’ 또는 ‘무비 저널리즘’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저널이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가 나서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이슈를 제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유독 올해 이런 현상이 심했던 것은 지난 5년 동안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관객들의 진실을 향한 욕구가 강하기도 하며, 대선을 앞두고 진실을 알려는 욕망이 팽창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백년전쟁> 시사회에 앞서 김지영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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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목록에 새로운 영화 한 편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다큐 <백년전쟁>. 제목만 봐서는 전쟁을 다룬 다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다큐는 두 개의 다큐로 구성된 옴니버스이다. <두 얼굴의 이승만> <프레이저 보고서>라는 두 개의 다큐. 앞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승만의 행적을 추적해 그의 독립운동이 어떠했는지, 그가 얼마나 출세 지향적이고 사적 이익만 추구하는 인물인지 독립운동가 김구와 대비해 추적하고, 뒷 작품은 박정희 경제 개발 정책으로 지금 우리나라가 잘 살고 있다는 신화를 신랄하게 파헤치며 뒤집는다. ‘근현대사 진실 찾기 프로젝트’라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신화 뒤에 가려진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 그들의 맨얼굴을 대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원론적인 질문을 해보자. 다큐란 무엇인가? 극영화와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장르를 말할 것이다. 사건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파헤쳐 실상을 이해하도록 하는 장르일 것이다. 어떤 풍경이나 원리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이제까지 잘 모르던 풍경이나 원리를 직접 촬영해 알려주는 장르일 것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다큐는 실상을 알리는 것이 그 목적이다. 진실을 바로 잡거나, 실상을 알게 하는 것. 이때 정치적 다큐는 실상을 알려 이슈를 제기하거나, 함께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안까지 촉구한다. 적어도 문제를 공유해 대안을 제시하도록 노력한다. 이해에서 공유를 넘어 감정 동일화와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백년전쟁> 중 이승만 편인 ‘ 두 얼굴의 이승만’ 포스터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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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오해를 한다. 정치적인 다큐는 특정 입장만 지지하기 때문에 왜곡되어 있다고.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다큐는 없다. 자연 다큐멘터리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가 있다. 은근히, 조용히 숨어있다(그래서 더 무섭지만). 하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다큐멘터리라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이더라도 너무 정치적이다. 때문에 이 다큐를 비판할 때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면 안 된다. 그것은 초점을 잘못 잡은 비판이며, 그런 비판도 정치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그 다큐가 다루고 있는 팩트와 해석이 정확한 것인가 아닌가, 왜곡된 것인가 아닌가 구분하는 비판이 있을 뿐이다.

<두 얼굴의 이승만>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승만의 진실을 추적한다. 감독은 하와이의 여러 신문을 구해 읽고 현대사 연구자들의 인터뷰를 경청하고 다시 사건을 재구성해 이승만의 미국 독립운동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견디기가 어렵다. 가령 하와이 이민노동자들이 최하층으로 살면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낸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자신의 출세만 지향한 삶을 보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어서 그가 한 일을 보면 한숨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은 이런 상황을 세세히 자료를 찾아 고발하듯이 전시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이승만과는 완전히 다른 이승만이 등장하는 것이다. 










  <백년전쟁> 중 박정희 편인 ‘프레이저 보고서’ 포스터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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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 보고서>의 자료도 만만치 않다.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 박정희가 세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당시 박정희가 얼마나 헛발질을 연이어 했는지 확인하게 된다. 결국 한반도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이 세운 계획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수립된 수출 주도형 국가 모델을 자신이 한 것으로 치장하는 모습에서는 쓴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쿠데타 후 일본으로 가서 그들이 제시한 대일무역 적자구조의 경제계획을 그대로 받아 오는 모습은 한심하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감독은 이런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프레이저 보고서’를 세밀히 검토하면서 당시 상황을 풍자적 시선 가득히 담아 재현한다.

때문에 <백년 전쟁>을 보는 첫 재미는 몰랐던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웬만한 교양 교과서 몇 권 분량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책에서도 찾기 어려운 소중한 팩트들이 100분 내내 흘러나온다. 이를 통해 근현대사의 여러 상황을 복합적인 시선에서 파악할 수 있는 선물이 덤으로 따라온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감독의 솜씨가 세련되었기 때문에 한 번 빠져들면 쉽게 벗어나지 못할 정도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은 단연 이것이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실상을 파악하려는 다큐의 목적이 이것이 아니면 무엇이 되겠는가?

다음으로 <백년전쟁>을 보면 풍자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팩트만 나열하면 당연히 지루한 영화가 되기 십상이다. 아무리 소중한 팩트라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이를 파악한 영리한 감독은 수많은 극영화 장면을 다큐 중간중간에 슬쩍슬쩍 삽입해 적절한 맥락에 사용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트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웃음이 의외로 중독성이 강하다. 폭소는 아니지만 은근한 미소를 연이어 머금게 만든다. 

<백년전쟁>은 근현대사의 비틀어진 진실을 바로 잡으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꾸준히 해오던 작업을 대중적인 영상 작업으로 확대했는데, 나는 이것을 민족문제연구소의 진화라고 칭하고 싶다. 다큐에서 이미 예고한 것처럼, 2편이 빨리 보고 싶다. 하와이에서 호의호식하며 기회만 노리던 이승만이 광복 후 귀국하면서 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계속 수정하면서 이끌어갔는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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