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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역사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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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역사 다큐 <백년전쟁> 관람기




이준식 연세대 교수·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오래 전에 <4억 민중>(The 400 Million)(1938년)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4억 명’이라는 숫자는 중일전쟁을 전후한 시기 중국의 인구를 가리킨다. 이 영화는 당시 세계 각지의 반파시즘 운동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벌이던 요리스 이벤스(Joris Ivens)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맞선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그리고 중국 민중의 투쟁을 영상에 담은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는 저명한 영화인이 대거 동참했다. 내레이션을 맡은 것도 할리우드의 일류 배우인 프레드릭 마치(Fredric March)였다.

민족운동사를 공부하면서 독립과 해방을 위한 운동세력의 연대와 통합 문제에 관심을 갖던 나에게 가장 감동적인 것은 영화에 담긴 중국인의 항일투쟁 모습 그 자체였다. 그래서 영화의 말미에 나오는 “(전쟁에서) 중국 민중이 이길 것인가? 이들은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10년 이상이 걸릴지 모르며 크나큰 고난을 겪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무장을 갖추었고 왜 싸워야 하는지 알고 있다. 결국 이것이야말로 승리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대사를 한동안 컴퓨터 책상 한편에 붙여 놓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화가 가장 영향력 있던 대중매체로서의 위상을 지닌 20세기를 지나 오늘날에는 새로운 대중매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영화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중매체임에 틀림없다. 특히 오로지 돈만을 추구하는 상업영화의 범람 한 가운데서도 <워낭소리>, <부러진 화살>, <도가니>, <두 개의 문>, <남영동 1985>, <MB의 추억> 같이 한국의 현실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앞의 영화들보다 더 큰 문제 곧 백년에 걸친 한국에서의 역사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가 최근에 공개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편당 2500만 원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적은 제작비를 들여 만든 <백년전쟁 본편 1부 이승만의 두 얼굴: 당신이 알지 못했던 이승만의 모든 것>(이하 <본편 1부>)과 <백년전쟁 번외편 1부 프레이저 보고서: 누가 한국경제를 성장시켰는가>(이하 <번외편 1부>)가바로 그것이다. 먼저 전제할 것이 있다. 제작비의 많고 적음이 영화의 질을 규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500만 원이라는 제작비로 과연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데 관여한 사람들의 땀과 시간을 아끼지 않은 혼신의 노력,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가능하게 만든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바로 그것이라고 짐작해본다.






▲ 댜큐 <백년전쟁> 시사회 ⓒ민족문제연구소

일본 점령 후 ‘100년 전쟁’은 현재 진행 중

‘백년전쟁’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극히 일부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8-9세기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 백년전쟁이고 이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프랑스의 잔다르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런 전쟁 저런 전쟁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았어도 백년전쟁은 금시초문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일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백년전쟁>이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을 다룰 리는 없다. 이 영화의 주제인 ‘백년전쟁’은 100년 전 한반도에서 시작되어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 곧 역사의 흐름을 둘러싼 상반된 두 세력 사이의 총칼없는 전쟁을 가리킨다.

<본편 1부>의 타이틀은 본편 4부와 번외편 2부로 짜여진 이 영화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타이틀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김구와 박정희가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끊임없이 대립한 두 세력 곧 ‘저항세력’, ‘독립운동세력’과 ‘협력세력’, ‘친일세력’을 대표한다. 전자는 나라를 일본제국주의에게 빼앗긴 다음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웠고 지금도 자주적인 통일 국가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세력이다. 반면에 후자는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 천황의 충성스런 신민으로 사는 길을 택했고 해방 이후에는 살아남기 위해 일본 대신 미국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면서 통일보다는 분단을 지향한 세력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뒤 저항세력이 승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거꾸로 가고 말았다. 친일파가 청산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을 장악하고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의열단의 지도자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부사령을 지낸 김원봉이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사실이야말로 거꾸로 간 역사의 상징적인 보기였다.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 제국주의자에 맞서 싸운 세력이 새로운 국가 권력의 주역이 되는 것은 세계사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미군정-이승만 정권-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친일파는 정치, 군·경찰, 경제, 사법, 문화, 학술, 교육 등 모든 부분에서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역사적 잘못을 감추기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이승만 정권과 군사 정권의 독재 체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리하여 친일과 독재는 한 몸이 되었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왜 21세기가 된 오늘날에도 저항이니 친일이니 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느냐고. 또 물을 것이다. ‘전쟁’이라고 하는데 무슨 싸움이 있냐고.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100년 전에 시작된 전쟁이 아직도 종식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박정희가 독립운동을?”…아직도 진행되는 ‘역사 사기극’







▲ 시사회에 앞서 발언을 하고 있는 임헌영 소장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오늘날 한국의 경제발전에 밑바탕이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앞세운 뉴라이트가 등장한지는 꽤 되었다. 이들은 친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강변한다. 뉴라이트의 주장은 간단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오직 반공과 시장경제에 있다. 여기에 이바지하지 않은 사람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배제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아예 참여할 수 없었던 경우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에서 일탈한 존재로 규정된다. 그리하여 김구나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였고 유관순은 여자 깡패였다는 식으로 비하의 대상이 된다.

거꾸로 친일파도 반공과 시장 경제에 이바지했다면 애국자로 인정된다. 실제로 얼마 전에 뉴라이트의 어떤 교수가 극단적으로는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의 장교를 지낸 친일파(곧 박정희)야말로 진정한 민족주의자이고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사악한 민족주의자도 있었다는 식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반역사적 움직임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국가 권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역사교육의 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보다는 친일을 긍정적으로 보자는 황당한 주장은 이명박 정권 이전까지만 해도 일부 정신나간 사람들의 헛소리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주장 뒤에는 국가권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조·중·동’이라는 보수언론과 한국방송공사(KBS) 같은 공영방송도 있다.

2008년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시민사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그러자 이명박 정권은 좀 더 장기적인 포석 아래 KBS를 앞세워 친일파를 미화하는 일련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그리고 자라나는 청소년의 역사의식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어 왜곡하기 위해 역사교과서에 손을 댔다. 방송을 통해 그리고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을 통해 친일은 물론 그것과 직결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독재를 미화하는 데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명박 정권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는 것을 만들어 국가의 이름으로 친일파와 독재세력에 면죄부를 주려한다.

그러다 보니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지금도 인터넷에는 박정희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조작된 이야기가 수없이 떠돌아다닌다. 얼마 전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공개한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혈서지원 보도 신문자료도 조작된 것이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공영방송까지 역사를 왜곡하는 공개적인 거대한 사기극에 나선 판이니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에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친일파가 애국자가 되고 독립운동가가 빨갱이=종북주의자=반민족주의자로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것이 21세기 초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우리가 지금도 역사전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고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승만·박정희, 우리가 아는 것은 과연 ‘사실’인가?

<백년전쟁>은 바로 이러한 역사전쟁에서 저항세력이 승리하기 위해 기획되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본편 1부>와 <번외편 1부>만 공개되었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공개된 두 편만 보더라도 기획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다큐멘터리로서의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풍부한 화면 구성이 돋보인다. 두 편이 길게는 100년 전 짧게는 50년 전의 상황을 다루기 때문에 자료 화면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놀랄 만큼 흥미로운 화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다큐멘터리는 딱딱할 것이라는 생각을 180도 뒤집을 만큼 두 편의 영화에는 재미가 넘쳐흐른다. 편집, 대사, 음악 등이 모두 젊은 세대의 감성에 맞추어져 있고 그러다 보니 50분이나 40분이라는 시간이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짐작컨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육의 교재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흥미를 불러일으킬 요소들을 가미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특히 <본편 1부>에는 이승만을 갱(gang)에 빗대기 위해 사람들에게 익숙한 <대부>를 차용한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가 하면 홍콩의 쿵푸 스타 이소룡 영화나 미국 영화 <슈퍼맨> 등의 몇 장면이 상황에 맞추어 직접 삽입되기도 했다.

물론 두 편의 영화가 갖는 가치는 형식이라는 측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는 화면 구성과 대사를 통해 두 편의 영화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되물어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승만은 노선상의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일제강점기에 독립 운동을 한 적이 있고 그러한 행적이 바탕이 되어 해방 정국기에 우익의 거두로 등장한 데 이어 끝내는 신생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편 1부>는 이승만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이승만은 강제병합 직후 미국에서의 반일 활동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서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미화하는 친일적 태도를 보였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의 원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프랑스인의 입을 통해 이승만이 미국에서 벌인 일련의 친일 활동은 프랑스라면 나치에 협력한 중대한 부역 행위로 형사 처벌감이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물론 이승만이 나중에 입장을 바꾸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맡는 등 잠깐 독립 운동에 관여한 적은 있지만 그것도 진정으로 독립운동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미국 안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권력욕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이용한 데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편 1부>는 그러한 주장의 유력한 근거로 미국의 중앙정보부(CIA) 기밀문서에 나오는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며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평가를 자료화면으로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에 이미 독립운동 진영 안에서 이승만을 제2의 이완용이라 평가할 정도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승만이 일생을 통해 매달리던 미국마저도 이승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다고 인식했다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역으로 이 점이 미국이 동아시아 반공 체제의 교두보로서의 대한민국의 권력 담당자로 이승만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이승만 자체가 ‘저항세력’이 아니라 광의의 ‘협력세력’이었다는 사실이야말로 해방 정국기에 이승만이 권력을 잡기 위해 친일파와 손을 잡고 대통령이 된 뒤에는 친일파를 정권의 핵심으로 중용한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 <백년전쟁>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 ⓒ민족문제연구소


한국 경제 망가뜨릴 뻔 한 박정희가 ‘우상’이라니?

근현대사에 대한 파격적 해석은 5.16 군사쿠데타 직후의 박정희 정권을 다룬 <번외편 1부>에도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박정희가 한국 경제성장의 주역이라고 기억하지만 그 기억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박정희가 구상한 경제성장정책이란 뜬 구름 잡기식이어서 한국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는 일련의 정책을 무모하게 밀고나갔다. 화폐개혁과 예금 인출 동결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는 심각했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나락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이 한국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미국의 판단이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박정희에게 경제정책의 일대 전환을 요구했다. 거기에는 ‘채찍과 당근’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박정희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 마지못해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박정희를 한국이 거둔 놀라운 경제성장의 주역이라고 떠받드는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번외편 1부>는 한국의 경제성장이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추진된 데 지나지 않았음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미국의 주도 아래 추진되는 한국 경제성장 정책의 한국측 파트너는 박정희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이미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박정희에 의해 쫓겨난 장면이야말로 ‘억세게 재수 없는 남자’가 되는 셈이다. 미국에게는 아시아에서의 반공 기지로 일본이 중요했고 일본의 안전을 위한 장치로 한국의 경제성장이 추진되었다. 박정희는 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의 한 고리 역할을 한 데 지나지 않았는데도 무덤 속의 박정희를 다시 끌고 나와 우상화하는 작업을 벌이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본편 1부>와 <번외편 1부>는 역사 대중화의 새로운 형태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계속될 작업을 위해 옥의 티를 지적하는 심정으로 몇 가지 고언을 하려고 한다. 먼저 재미있는 것은 좋은데 재미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느꼈다. ‘박살, 대가리, 두목’ 등의 표현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새로운 평가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만 거꾸로 냉정하고도 엄격한 평가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두 편 모두 영어가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보기를 들어 대한민국으로만 써도 될 것을 대한민국(THE REPUBLIC OF KOREA)라고 쓰는 식이다. 아마도 재외동포나 외국인까지도 고려한 것이겠지만 영어에 거부감을 느낄 관객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언급한 <4억 민중>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백년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이벤스가 중국 민중의 투쟁을 보고 승리의 가능성을 낙관했듯이 우리가 힘을 합해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과 지속적으로 싸워나간다면 우리에게도 고난 끝에 승리의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중일전쟁 당시 중국 민중이 총칼로 무장을 한 데 비해 우리에게는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 <백년전쟁>이 역사전쟁에서 승리에 이르는 길에 중요한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에게 꼭 보기를 권하고 싶다.


 


<프레시안>2012-11-29


 


[기사원문보기] 우리는 지금 ‘역사 전쟁’의 한 복판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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