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정희주의자들=대한민국 보수’? 천만에!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한국사회의 자칭 보수세력은 보수란 외피를 쓰고 있지만 한 번도 진정한 의미의 보수를 지향한 적이 없다. 보수란 보전하고 지키는 것인데 그 대상은 한 사회의 구성원 다수가 합의한 전통적 가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건전한 보수세력은 비록 변화와 개혁에는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가질지라도 통념화한 가치기준의 수호와 도덕적 책무의 이행에 있어서는 신념을 가지고 앞장서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그럴싸한 한국적 보수파의 형용은 어떠한 것일까. 첫째, 외세로부터 민족의 자존과 국가의 독립을 지켜나가는 데 뜻을 같이한다. 둘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한다. 셋째, 국가가 부과하는 납세ㆍ병역 등 공민으로서 의무를 다한다. 넷째, 무엇보다도 체제유지의 근간인 법질서를 존중한다. 다섯째, 우월한 사회적 입지에서 비롯하는 관용과 양보를 주요한 미덕으로 삼는다.
해방 이후, 우리의 ‘보수’는 거꾸로 갔다
그런데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위에 열거한 덕목 어느 하나에도 충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추구했다고 봄이 적실할 것이다.
우선 사대매국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일관되게 외세를 추종해왔다. 이들 중 다수는 일제시기 친일파 출신이거나 이들과 혈연ㆍ학연ㆍ혼맥 등으로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비호세력들이다. 이러한 원죄 때문에 지금도 ‘친일’이라는 말만 나오면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천황’의 세계지배를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귀축(鬼畜)영미타도’를 외치던 친일파들은 일제가 패망하자 표변하여 미국을 새로운 상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다시 외세의 종노릇을 자임하였으며, 대신 이 사회의 주류로 굳건히 자리 잡고 부와 권력을 유지 세습하는 대가를 지불받았다. 앞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극대화한다면 이들은 또 기민하게 친중파로 변신하여 자신들의 안녕을 도모할 것이 틀림없다. 장담하건대 이데올로기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신념을 접을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연합뉴스 |
자유민주주의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암흑기의 장본인도 그들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공공연히 부정한다는 점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등 면면히 이어져온 유사보수정권들이 공유하는 속성은 한결같다. 굵직굵직한 헌정유린의 예만 들어도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3?15부정선거, 5?16쿠데타, 삼선개헌, 10월유신, 12?12군사반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등 끝이 없이 이어진다. 폭압적인 강권정치 아래 헌법은 누더기가 되고, 사상과 양심, 언론과 표현,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은 구두선으로만 남게 되었다. 이러고서도 지금 그 상속자들은 ‘자유’가 자신들의 전매특허인양 의기양양해 하고 있다.
이른바 시장경제라는 것도 관치경제와 독점재벌에서 나타나듯 그들이 내세우기에는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다. 온갖 반칙과 불법을 매개로 급속성장한 천박한 자본가들에게 시장이란 약육강식의 정글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빵에서 순대까지 돈이 된다면 오만가지를 다 차지하고 말아야 직성이 풀린다. 오늘날 공정성을 잃어버린 시장경제는 소수의 기득권세력만 보호하는 기형적이고 불공정한 특혜경제로 전락하여 양극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
공민의 개념이 성립한 이래 납세나 병역의 의무는 항상 권리 주장의 전제조건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상층 사회에서 납세나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책임을 다하는 자는 은연 중 무능하거나 배경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이 최근까지의 세태였다고 하겠다.
최후의 냉전이 갖는 기형적 세태 타파해야
이미 도덕성이나 공공성과는 담을 쌓은 존재들인 그들에게 편법상속과 탈세, 부정부패, 병역기피,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등 모든 탈법은 일상사가 되었다. 현 정권 들어 열린 고위 공직자 청문회에서 하나같이 치부가 드러나는 꼴을 보면 후흑열전(厚黑列傳)이 따로 없을 정도이다. 위법이 마치 고위직으로 진입하는 필수 스펙이라도 되는 듯한 지금의 개탄스런 상황은 가진 자의 불법행위에 유독 관대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재벌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사면권 남발의 예가 입증하고 있듯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속설이 설이 아님은 공지의 사실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허언을 믿는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준법은 힘없는 서민들에게만 적용되는 족쇄와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 하겠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을 더욱 울컥하게 만드는 것은 이들의 후안무치함이다. 적반하장격으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훈계를 한 어떤 재벌 총수나, 한 때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아도취에 빠졌던 대통령이나 난형난제가 따로 없다. 바야흐로언어의 희롱이 절정에 이르러 ‘도덕’의 개념에 혼란을 일으킬 정도다. 개그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져 희극인들이 밥 빌어먹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지 오래지만, 국민을 우습게 아는 오만방자함과 담대함에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답답한 노릇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고삐 풀린 비상식적 상황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현실을 왜곡하는 가장 큰 요인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박정희 체제’의 존속을 들고 싶다. 10년간 취약한 민주정부 집권기가 있었다고는 하나 재벌ㆍ검찰ㆍ족벌언론 등 권력집단은 단 한 번도 민주주의를 지향한 적이 없었으며, 끊임없이 민주주의의 정착을 방해해 왔다. 그 결과 이승만을 계승하고 친일세력의 지지를 받은 박정희 체제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거쳐 이명박으로 이어졌으며 이제 그 딸에게까지 상속될 지도 모를 만큼 한국사회 저변에 공고하게 자리잡았다.
이승만 정권 이래 독재세력의 최대 무기는 한결같이 반공반북이었다. 분단에서 기인한 뿌리깊은 냉전적 사고와 대결구도는 합리적인 논쟁과 이견을 조정하는 기능을 마비시켰다. 진위와 무관하게 제기되는 냉전세력의 무차별적 이데올로기 공세는 사회적 합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인권ㆍ노동ㆍ복지 등 민생의 모든 부문에서 정상적인 발전이 유보되고 있다.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해묵은 색깔론 시비나 종북 논란은 정치세력간 또는 세대간, 이해집단간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병역기피 세력이 호전적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대결을 조장하거나, 극소수이긴 하지만 통일을 갈망해야 할 이산가족이 평화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거나,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자들이나 특수공작원들 같은 냉전의 희생자들이 성조기를 흔들며 그들을 외면해 온 세력을 맹목적으로 편들거나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역설적 현상은 최후의 냉전 지역이 갖는 기형적 특질로 보인다.
보수의 외피를 쓴 특권 세력 박정희주의자들의 실체
수십 년간에 걸친 독재체제하에서 이루어진 세뇌는 부지불식간에 많은 국민들의 균형잡힌 비판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특히 기성세대는 박정희 체제에 대한 부정을 자신들이 이뤄낸 성과를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른바 착시와 동일시 현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성장의 진정한 주역이면서도 그 과실을 독점하고 심각하게 왜곡 훼손시킨 가해자들에게 맹목적으로 경도되고 있는 것이다.
오랜 기간 지속한 박정희 체제는 건전한 보수가 자리잡을 여지를 없애 버렸다. 불공정한 경쟁 아래 보장받은 우월한 지위를 향유하면서, 권력과 부에 대한 끝없는 탐욕은 독식과 독점이라는 폐습으로 고질화하였다. 이제 고삐 풀린 기득권세력에게는 굳이 건전보수를 지향해야 할 일말의 이유도 의지도 남지 않게 되었으며, 당연히 정치적 측면에서의 정권교체나 권력분산, 경제적 측면에서 분배정의나 동반성장, 사회적 측면에서 보편적 복지나 균형발전은 안중에 없는 남의 일이 되고 말았다.
역대 독재정권하에서 정치경제적 특권을 향유하며 비대해진 기득권세력은 이제 최소한의 견제 구도마저 상실한 채 권력과 재벌 족벌언론 등이 한 덩어리로 유착하여 1% 카르텔을 형성하고 급격히 사익집단화의 길을 걷고 있다. 18대 대통령 선거는 이들의 폭주를 막고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복지사회를 정착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이제 보수의 외피를 쓴 특권세력 박정희주의자들의 실체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들의 정권연장 기도를 분쇄해야 한다.
가면을 쓴 동일한 세력에 다시 속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된다. 이름을 바꾸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외친다고 그들의 정체성이 바뀌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표를 의식해 잠시 위장술을 부리다 벌써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데서도 그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5년간 그렇게 당하고도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어떤 불만도 터뜨릴 자격조차 없는 정신적 노예와 다를 바 없다.
지금 사이비 보수를 퇴장시킬 절호의 기회
결론적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에 보수는 없다. 사이비 보수가 있을 뿐. 이제 사이비 보수를 역사의 전면에서 몰아내고 합리적 보수가 들어설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대선이야말로 1%밖에 안되는 거짓 보수세력을 퇴장시키고 우리 사회를 공정하고 상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정희 숭배자임은 당사자는 물론 국민 대다수도 알고 있는 공지의 사실이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냉전의식과 토건개발 권위주의 등 악습을 모조리 되살려 놓았으며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여기에 다시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받드는 세력에 집권연장을 허용한다면 그 결과는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박정희주의와 유신세력은 청산해야 할 대상이지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대안은 절대 될 수 없다. 반민주ㆍ반통일ㆍ반인권ㆍ반노동ㆍ반환경ㆍ반복지로 일관한 지긋지긋한 환멸스런 경험에도, 그보다 더 거꾸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면 민주주의는 허울만 남게 되고 양극화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며 가뜩이나 미흡한 사회의 자정 능력은 급속히 붕괴하고 말 것이다.
현 정권보다 더한 악정을 겪어봐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고 일부 모험주의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10년이란 기간은 그간 다져온 사회 각 부문의 개혁을 모두 도로로 만들 수도 있다는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 현안이 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도 문제이겠지만 이미 노골화한 권력과 재력 그리고 언론의 결탁이 더욱 구조화하여 수술이 불가능해지는 사태도 우려해야 할 점이다. 거기에다 역사와 교육이 무너지고 나라의 정체성마저 훼손된다면 이의 복원을 위해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은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지금 오랜 기간 존속해온 특권세력의 구체제를 용인하느냐 아니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느냐는 갈림길에 서있다. 유신선포 40년을 막 넘긴 지금 공교롭게도 우리는 박정희주의와 유신체제에 대한 평가를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부활하는 유신 망령을 잠재우고 사이비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을 막아야 할 역사적 과제가 바로 목전에 다가와 있다.
상식과 정의가 살아 숨쉬고 평화와 복지가 흘러넘치는 나라, 필부필부 선남선녀가 열심히 일하고 서로 따뜻하게 보듬는 나라, 합리적 보수와 진보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을 수 있는 나라, 그래서 모두가 함께 행복해 할 수 있는 나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상이 아닌가. 그 가능성을 여는 첫걸음이 12월 19일 우리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
<프레시안>2012-12-05
[기사원문보기] 사이비 보수세력의 장기집권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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