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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일왕에 혈서쓰고 일본군 장교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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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왼쪽부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4일 저녁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첫 텔레비전 토론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사실 검증 Fact Check | 1차 TV토론

4일 밤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지만 ‘일문일답’ 형식에 그쳐, 토론 과정에서 어떤 후보가 사실관계가 틀린 일방적 주장을 펴도, 제대로 반박할 수가 없어 그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전해지거나 누구 말이 맞는지 파악하기 힘들어 혼란만 키울 수 있다.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명확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토론이 이뤄졌던 몇 가지 쟁점을 짚어본다.


① 박정희, 일본군 장교 지원하며 일왕에 혈서 썼나?
만주신문 ‘다카키 마사오 충성 혈서’ 보도…시기 놓고 반론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때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한 뒤,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해 군관시절 촬영한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 박정희, 일왕 충성혈서 썼나?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향해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거다. 한국이름 박정희”라고 공격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40년 4월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에 2기생으로 입교한다. 이후 1944년 황군(皇軍)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 성과 이름도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했다. 박 후보 쪽도 이는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이 후보 주장처럼 일왕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했다는 부분은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조작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연령 초과로 군관학교 시험에 탈락하자, ‘혈서’와 함께 입학허가를 호소하는 편지를 지원서류에 동봉해 제출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2009년 일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혈서를 보낸 사실이 1939년 3월 <만주신문>에 실렸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민족문제연구소가 신문 원문을 찾아 이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일본 국회도서관에도 보관돼 있는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치에는 “경상북도 문경 공립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23)군의 피로 쓴 편지가 송부돼 관계자를 감격시켰다”는 기사가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편지 내용은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 한 번 죽음으로 황제에게 충성)을 위해 굳건히 결심합니다.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였다.

우익단체에서도 <만주신문>의 보도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만주신문>이 보도한 편지 내용에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박 전 대통령이 편지를 보낸 1939년에는 만주계만 모집(1940년부터 일본계로 확대)했기 때문에 해당 기사의 신뢰가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신용불량자 채권 소멸시효 사건에 직접 개입했다며 소송대리인에 문 후보가 포함된 서류 사본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뉴스1

② 문, 부산저축은 담당 금감원 국장에 압력 행사?
문 “업무상 연락” 해명불구 검찰조사 아직 안이뤄져


■ 문재인 후보는 금감원에 압력을 행사했나?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부산저축은행 조사를 담당했던 금감원 국장에게 전화를 한 의혹이 있다. 피해자들이 검찰에 문 후보를 고발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문 후보는 “압력을 행사했다면 (이명박 정부에서) 진작 밝혀졌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문 후보가 고발당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 13일 부산저축은행피해자대책위원회는 2003년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후보를 금감원 국장에게 압력성 청탁전화를 한 혐의(업무상 배임)로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유아무개 전 금감원 국장은 부산저축은행에서 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추징금 2억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유씨는 검찰 조사에서 “‘조사는 철저히 하되 대량인출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는 문 후보의 전화를 받았지만, 청탁전화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현재까지 문 후보 쪽에 출석요청 등은 하지 않았다.


③ 론스타 ISD 제기, 한-미 FTA와 무관?
한-벨기에 협정이 근거…한-미 FTA로도 소송 가능


■ 론스타 제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인가?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지난달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제기한 것이 한-미 에프티에이와 관련이 있는지를 놓고도 시비가 붙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아이에스디 제도가 있으니까, (론스타가) 한국을 국제법정에 끌고 갔다. 한-미 에프티에이의 아이에스디 규정을 없애야 하지 않느냐”고 박 후보에게 물었다. 박 후보는 “론스타 소송은 한-미 에프티에이와 관계없고, 한-벨기에 투자자보호협정(BIT)에 근거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겉으로는 두 사람 말이 다 맞다. 론스타의 제소는 1974년 체결해 2006년 개정한 ‘한-벨기에 투자자보호협정’에 근거한 것이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인수 뒤, 2008년 벨기에에 ‘LSF-KEB홀딩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외환은행 운영주체를 바꿨다. 한-벨기에 투자자보호협정이 아이에스디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소송이 가능했다. 아이에스디 문제를 지적하는 질문에 ‘한-미 에프티에이와 관계가 없다’는 박 후보 답변은 유권자들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에는 아이에스디 문제가 없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송기호 변호사는 “사법주권 침해라는 아이에스디가 갖는 위험성은 투자자보호협정이나 한-미 에프티에이나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했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가운데)이 9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 개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④ 통합진보당은 국민의례 안한다?
‘민중의례’ 탓 왜곡…창당대회때 ‘국기에 대한 맹세’ 해


■ 통합진보당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하나? 박 후보는 이 후보에게 “통합진보당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고 애국가도 안 부른다”고 몰아세웠다. 이 후보는 “국가행사에서 공식 의례에 다 했다. 정확히 알고 질문하라”고 맞받았다.

통합진보당이 공식 행사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거나, 애국가를 안 부르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다만 통합진보당은 애국가나 태극기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외부행사에 참석하면 국민의례를 하지만, 오랜 반독재투쟁 전통 때문에 주요 행사 때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유시민 대표가 ‘공당인 만큼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고 제안했고, 그 직후 창당대회 때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 뒤, 노래는 (애국가 대신) 민중의례 때 불러온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⑤ 총선 야권연대, 주한미군 철수 합의?
제주 해군기지 중단만 합의…주한미군 철수 언급없어


■ 총선 야권연대 때 주한미군 철수 합의했나? 박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연대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에프티에이 폐지, 해군기지 건설 중단, 한-미 동맹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을 합의했다”고 몇 차례 언급했다.


박 후보 발언 중 해군기지 건설 중단 외에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총선 당시 시민사회와 함께 ‘4·11총선의 국민승리를 위한 범야권 공동정책 실천 과제’에 합의한 바 있다. 여기에 (제주) 해군기지 공사 중단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해선 ‘재협상’(민주당)과 ‘폐기’(통합진보당)의 입장 차이를 합의문에 적시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동맹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은 합의문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새누리당도 이와 관련해 “박 후보가 잠시 착각한 것 같다”고 박 후보의 발언을 부인했다.


 <한겨레>2012.12.5







 


  [기사 내용 정정]


 2009년 일본에서 박정희 혈서에 관한 보도가 있었다는 한겨레신문의 보도는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지원 혈서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본국회도서관에서 발굴하여 국내외 최초로 공개한 자료입니다.


 더불어  만주신문은 당시 만주 현지에서 발행되던 일본어신문으로, 1940년 부터 군관모집을


 일본계로 확대했기 때문에 “해당기사의 신뢰가 떨어진다는 반응도 있다”는 한겨레신문의


 인용은 전혀 근거가 없음을 밝혀둡니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인 정일권 김석범이 저술한 만주국군지(41쪽-54쪽)를 보더라도 1932년에


 개설한 만주국군 중앙육군훈련처(신경군관학교 전신) 시기부터 계속 일본계 군관 후보자를


 뽑아 왔음이 명백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연구소 홈페이지 ‘종북놀음과 박정희 혈서’기사를 참고하십시오.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기사원문보기] 박정희, 일왕에 혈서쓰고 일본군 장교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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