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민족문제연구소가 내놓은 두 편의 영상물 <백년전쟁 본편1 – 두 얼굴의 이승만> <백년전쟁 번외편1-프레이저 보고서, 누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켰는가>가 화제다. 연구소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을 관람한 사람이 100만명에 육박한다. ‘진실을 알게 해줬다’ ‘감동이다’ ‘분노한다’ 등 호응도 뜨겁다.
이승만 편은 주로 1945년 해방 직전까지 그의 행적을 다루었다. 동족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재판도 서슴지 않으며 미주 한인 사회를 분열시켰던 모습이 집중 조명되었다. 일본과의 무장투쟁에 반대했던 그가 권력과 돈을 장악하기 위해 동족을 상대로 무장투쟁에 나서다니, 누구나 말문이 막힐 것이다. 박정희 편은 주로 5·16 군사쿠데타 이후 1960년대 경제정책을 다루었다. 그의 초기 정책이 한국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보여준다. 이때 미국이 동아시아의 반공 전략 차원에서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을 제시했다. 박정희는 애초부터 경제성장의 주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역사는 자주 현재의 지배관계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동원된다.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 ‘경제성장의 주역’과 같은 신화 만들기가 예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역사는 지배관계를 비판하고 변화를 꿈꾸는 무기로서도 유용하다. ‘친일파’ ‘비열하고 무능한 독재자’와 같은 신화 깨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지배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역사 공사가 하도 많아서 그런지 그에 맞서는 ‘역사바로잡기’도 바쁘다. <백년전쟁>도 지난해 KBS가 상영한 백선엽과 이승만 다큐멘터리에서 촉발된 것으로, 제작자는 ‘균형보다 진실’을 ‘공격적’으로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한국은 지금 ‘역사전쟁’ 중이다.
전쟁판에도 누군가는 기록과 사실의 간극을 얘기해야겠지만 지면이 작다. 역사를 무기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몇 가지 단상을 적어본다. 첫째, 독재의 뿌리로서 식민사학이다. 박정희가 쿠데타 이후 ‘퇴행적 민족’ 운운하는 연설을 보니 일제가 한국인의 타율과 정체를 강조하던 식민사학을 빼닮았다. 이승만이 친미에 전부를 걸었던 이유도 한국인이 독립할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족과 국민 무시가 거리낌 없이 그들이 쿠데타와 독재로 나아갔던 근원인 것 같다.
둘째, 박정희 공과론의 위험성이다. 경제성장의 주역이냐 아니냐는 물음에 갇힐 경우 긍정이든 부정이든 박정희만 중요해진다. 박정희가 아니라면 다른 주역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다큐는 의도와 달리 경제성장의 숨은 주역으로서 미국만 부각시킨다.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프레이저 보고서를 줄기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서에도 답은 있다. 경제성장의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교육받은 근면하고 훈련된 한국 사람들 자신”을 꼽았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이었다. 바꿔 말하면 경제성장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뎌낸 보통 사람들, 조금이라도 배워서 남 준 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우리의 부모님, 이웃이 경제성장의 주역인 것이다. 학계의 책임도 있다. 땀 흘려 일한 민중이 경제성장의 주역이라는 말은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을 실감나도록 연구하고 그들의 고난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재현하는 데 게을렀다.
셋째, 과거를 둘러싼 전쟁도 중요하지만 때론 현재의 싸움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노무현 정권은 이명박의 대선 승리로 이미 혹독한 평가를 받았고, 당사자는 자살했다. 이번 대선의 평가 대상은 이명박 정권이다. 최근 5년에 집중하자. 민생 파탄의 협조자인지 ‘준비된 여성’인지 따져보자. 현재 만들어지는 신화를 막는다면 과거의 신화 깨기는 훨씬 더 수월할 거다. 누가 국민을 덜 무시할지, 보통 사람들을 더 대접할지 생각해보자.
<경향신문>2012-12-14
[기사원문보기] [기고]역사전쟁, 최근 5년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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